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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회 김대중 정신계승 글짓기대회 입상작 연재>
2012년 11월 28일(수) 00:00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살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과 사상을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널리 알리고 계승하기 위해 마련된 ‘제3회 김대중 정신계승 글짓기 대회’에서 고등부 전세현(조대부고 2년)과 홍민우(효천고 1년)가 대상을 받는 등 총 80명이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본지는 대상작을 게재한다.

불의에 맞선 대한민국의 따스한 태양

고등부 대상 조대부고 전세현

어린 시절의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의 신념과 생각을 믿는 아이였다. 이런 성격이었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우리 학교 전교생이 축구부에 쌀을 내는 것을 부당하게 여겨서 선생님에게 그 이유를 물을 정도였다.
나는 내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시비를 구별하였다. 이런 이유로 축구부 학생에게 욕을 먹고 더럽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나는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에 저항하였기에 나의 행동과 신념은 옳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나 하나로 인해서 그 체재가 변하진 않았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진보였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나는 왕따를 당하는 친구를 보고 그 친구를 도와주었다. 나는 나 자신이 옳기에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반대로 그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괴롭힘의 대상은 나로 바뀌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나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부터 나 자신을 거대하고 투명한 벽 안에 가두고 세상을 뒤틀린 시야로 보면서 남들에게 미움 받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의 의견이 아닌 남의 의견을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 자신은 잘못이 없다’ ‘모두 내 책임이 아니다’와 같은 핑계를 만들어서 나 자신을 합리화 하였다. 그런 나에게 중학교 1학년 시절 김대중 대통령, 아니 김대중 선생님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마음은 요동쳤다. 자신이 불의에 직면하게 될지 몰라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신념과 정의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그 모습이 나에게는 지금껏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나는 선생님이 매우 존경스러워 선생님에 대해서 계속 알아보았다. 선생님에 대해 알아보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선생님께서 북한에 시도한 햇볕정책이었다. 학교에서 알려준 내용대로라면 북한은 우리의 친구이고 가족이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나는 선생님의 햇볕정책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어떤 사람은 북한이 햇볕정책 때문에 강성해져서 우리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 선생님을 비판하였다. 비판하는 내용을 많이 접한 나는 혼란스러워진 나의 의견을 잡지 못하고 더 이상 선생님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을 그만두고 원래의 부조리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런 부조리한 일상을 지내던 나에게 어느 날 선생님의 서거 소식이 들려왔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부조리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뭔가 마음속에 작은 떨림이 생겼다. 그 떨림이 신경 쓰여서일까? 나는 혼란스러움을 정리하고 다시 선생님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예전에 나 자신이 그랬듯이 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선생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였다.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불의에 저항하는 것을 포기한 겁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서거 날 울지 못하였다. 겁쟁이였던 내가 무슨 자격으로 눈물을 흘리겠는가? 마음이 울고 있기에 눈에서 눈물이 나지 않는다.
마음이 대신 울어주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를 가두어놓았던 거대한 벽을 깨서 불의에 당당히 맞서던 나의 모습을 찾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선생님은 살면서 여러 위협과 불의를 당하셨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어두운 시대를 살으시고, 공산주의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시고 고문을 당하시고,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시고, 국회위원에 출마하실 때 전라남도 출신 땅개라는 모욕적인 지역 차별주의 말을 들으시고, 망명생활을 하시면서 나라의 안보를 걱정해 글을 쓴 것에 대해서 반국가적 행동이라는 소리를 들으시고 심지어 납치까지 당하셨다.
이런 고난에도 불구하고 왜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을까?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자주 불의에 부딪쳤지만 절대 포기하시지 않고 대나무처럼 자신의 신념과 지조를 지키었다.
어떤 모진 고문을 당하셔도 대나무 같은 그 신념은 굽히지 않으셨다. 사람이 불합리한 일을 계속 당하면 무력화되고 불합리를 받아들이고 만다. 하지만 선생님은 불합리를 인정하시지 않았다. 저항하셨다! 계속되는 고난과 불합리로 정계를 은퇴하신 적이 있지만 그것은 포기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3년 만에 돌아오셨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었다.
그리고 소망하였던 대통령 취임에 성공하셨다. 남들은 비참하게 계속 매달려서 성공하였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에게 그 모습은 나비가 부화하기 이전까지 고통을 견디는 인고의 모습으로 보였다.
선생님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이다”라는 말씀을 하였다.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갈대 같은 내 마음을 잡아주는 격언이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시절의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양심이 정한대로 행동할 텐데……. 어떻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 존재하지?’라고 생각했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에게 물어보아도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비록 이해하지는 못하였어도 나는 행동하는 양심은 반드시 지키자고 생각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나의 무관심속에 중학교 3학년 가을, 행동하는 양심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쌀쌀한 가을, 친구들과 수행평가를 하기 위해서 가고 있을 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보였다. 처음에는 도와 드려야겠다고 생각하였지만 ‘친구와 가는 중이니 그냥 갈 길이나 가자’ ‘착한 척하는 것처럼 보일거야’ ‘누군가 도울 거야’라며 도와주기를 그만두고 갈 길을 갔다. 그날 밤 아까 낮의 일이 마음에 걸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 상황에서 예전에 지키기로 약속한 나의 양심을 지켰을까?
나는 나의 양심을 버리고 만 것이었다. 나는 죄송스럽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거울속의 나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거울 안에는 허영심만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의 행동하는 양심을 지킨다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을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께서 말하는 악을 행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나는 자기만족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보여서 계속 허영심이 가득 찬 거울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대화를 통한 이해를 중요하게 여겼다. 선생님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한 기자가 물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지금까지 못살게 굴던 사람들을 벌하실 생각이십니까?”
선생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말씀하셨다.
“나와 정치이념이 달랐을 뿐이지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분명 서로 대화를 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 선생님은 자신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람들을 이해하시기 위하여 대화를 나누었고, 용서하셨다. 나는 대화를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실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하는 대화는 나와 상대방을 실로 연결하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처음 연결은 힘들겠지만 연결되고 난 후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 실이 연결되어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후에 만나지 못하더라도 이미 묶인 유대라는 실은 풀리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선생님을 비판할 때 흔히 햇볕정책에 대해서 많이 비판한다. 남북공동선언을 성공시킨 계기임에도 불구하고 왜 비난받는 것일까? 그건 햇볕정책이 평화는 가져왔으나 현재까지 이어지지 않은 일시적인 평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햇볕정책에 관해서는 맨 처음 말했듯이 여러 고민을 하였다. 인터넷에서 햇볕정책에 부정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듯이
“햇볕정책은 단순이 북한에게 퍼주는 정책이다” 말을 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물론 햇볕정책이 지금까지 평화를 유지하지 못했지만 북한과의 유대감을 형성하였다. 게다가 북한과 우리나라는 언젠가는 통일을 해야 하는 한 민족이다.
하지만 북한과 우리나라는 정치체계부터 시작하여 차이점이 많다. 이런 차이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 이해하는 것이 햇볕정책의 진정한 의의라고 생각한다. 나는 선생님의 이런 따스한 면이 존경스럽다. 하지만 북한에 실행하였던 햇볕정책을 북한의 약자들만이 아닌 우리나라의 약자들도 함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선생님께서 대통령 당선이 되었을 때는 IMF가 시작되고 약 1년이 지난 후였다.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IMF시절에 선생님의 당선을 “전 국민이 외환위기로 고통 받는 상황에서 민주화운동 지도자로 뛰어난 리더십을 갖춘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한국 국민들에게 행운이다.”라고 말하였다.
선생님은 이러한 세계의 기대와 국민들의 영원인 IMF를 탈출하기 위하여 건설지원과 카드 사용 대금의 연말정산 환급 등 여러 정책을 시행하여 소비를 촉진시켜서 한국은 2000년에 보릿고개 시절과 같았던 IMF를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탈출한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과 다르게 너무 무리하게 달려서인가? 대한민국의 신용불량자 수를 급격하게 늘리고 말았고 내부수진의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대기업 위주의 지원 때문에 중소기업이 크지 못하였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IMF를 빠른 시일 안에 극복하였기 때문에 세계의 관심을 받아 한·일 월드컵을 더욱 성공적으로 개최했다고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999년 한국을 최초로 순 채권국으로 만들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햇볕정책 예산의 일부분을 돌려서 신용불량자를 줄이는 것에 힘을 사용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선생님은 문화수준 발달, 세계와의 교류를 위해서 인천공항을 건설하시고 국민의 문화수준을 발달시키기 위하여 PC와 인터넷사용유저와 이동통신가입자를 증가시켰다. 선생님은 이렇게 함으로써 세계라는 커다란 하늘을 바라보도록 하셨다.
지금 내각 살고 있는 2012년은 정보화, 세계화 시대라고 부른다. 나는 지금 세계 순위권 안에 드는 대한민국의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 언제든지 인천공항을 통해서 세계와 교류할 수 있다. 남보다 빠르게 판단하여 미래를 준비했던 이 과거의 행동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려고 노력하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 탓에 중요한 과거를 잊어버리고 만다.
과연 우리 톱니바퀴 중 몇 개의 톱니바퀴가 선생님의 교훈을 기억하고 있을까? 선생님은 55회의 가택연금을 당하시고, 6년의 감옥살이를 하시고, 다섯 번이나 죽음을 넘으셨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신념을 믿으며 불의에 저항하였다. 선생님은 톱니바퀴 살아가느라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잊었던 우리에게 다시금 말씀하셨다.
“하다못해 벽을 향해 고함을 지르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한다.”
이런 따스한 말로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우리 내면에 심어주셨다. 선생님의 서거 날 북한에서 팩스가 왔다. 팩스를 보낸 사람은 놀랍게도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일 위원장이었다. 팩스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였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여 이희호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 김대중 씨가 애석하게 서거하였지만, 그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 남긴 공적은 민족과 함께 길이 전해지게 될 것이다.”
햇볕정책은 퍼주는 정책이 아니었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이해하게 해주는 다리였던 것이다. 유대라는 실이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서로 이해할 수 있고, 희망은 존재한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글로 보이겠지만 톱니바퀴 살아가던 나에게 선생님의 포부와 신념을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 선생님의 뛰어난 연설, 불의에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옳은 일을 실천하는 자세, 언제나 웃으면서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던 산 같은 너무 큰 욕망이 나의 마음에 큰 떨림과 감동을 준다. 하지만 지금 선생님은 우리 곁에 안 계신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아도 우리 마음 내면에 존재하는 불의에 맞서는 마음과 서로를 묶어주는 대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선생님의 민주주의는 우리 곁에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 땅에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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