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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주최 제5회 김대중 정신계승 글짓기대회 초등부 대상 전 대 진 (목포 북교초 6년)
2014년 12월 15일(월) 00:00

섬소년 김대중의 꿈

아름다운 남쪽 섬 하의도에서 태어난 김대중은 꿈이 많은 소년이었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공부하며 친구들과 어울려 맘껏 뛰놀며 자라다가 목포로 이사 와서는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북교초등학교를 다니셨다.
농사를 짓는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누구에게 지는 것을 싫어한 까닭에 목포로 전학을 와서도 일본 아이들에게 지지 않으려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보다 한걸음 앞서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에 일본 아이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섬마을에서 태어났지만 나라의 최고 어른인 대통령이라는 큰 꿈을 이룰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어린 묘목과 같은 우리들에게 항상 큰 꿈을 가지라고 부탁 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큰 꿈을 갖고 살아가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김대중 선배님은 꿈을 단순히 꾸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크고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꿈을 현실로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본받을 만 하였다.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해운회사에 취직해 직장인으로서 꿈을 키워 나갔고 우리나라가 36년의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해방을 맞은 1945년에는 해운업계에 진출하고 정계에까지 뛰어든 것은 민족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6·25 전쟁과 부산 정치 파동을 겪으면서 올바른 정치만이 흔들리는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처럼 보였다.
그러나 큰 뜻을 갖고 시작한 정치는 그에게 숱한 좌절과 시련을 안겨 주었다. 정치인이 되어 나라를 올바로 이끌고 싶은 꿈을 갖고 국회의원 선거에 네 번이나 도전한 끝에 목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찾으며 국민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는 의원이었지만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을 보면서 꿈을 이루기 위한 힘든 길을 엿볼 수 있었다.
6·25 전쟁 때는 공산군에 붙잡혔다가 총살 직전에 목포교도소를 탈출해 목숨을 구했고 국회의원 신민당 후보로 입후보 했을때는 지원유세차량을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가장한 테러를 당했으며 일본에서는 바다에 던져지기 직전에 극적으로 살아난 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기적과도 같았다.
이런 고생 끝에 겨울에 추위를 견디며 피어난다는 인동초처럼 1998년에 우리나라 15대 대통령이 된 김대중 선배님은 국민들 앞에서 국민의 힘으로 정치를 할 것을 약속하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분단 55년 만에 남북이 두 손을 뜨겁게 마주잡은 것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 고장 목포 삼학도에 김대중 노벨 평화상 기념관이 들어섰지만 나는 아직도 김대중 선배님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하의도라는 섬이다. 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꿈을 꾸셨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꿈을 이루는 디딤돌이 됐다.
물론 어린 시절에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이 없었을지 몰라도 정치를 통해 국민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소망을 안고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금 모으기 운동으로 IMF를 극복해 많은 국민들 가슴에 우리는 무엇이든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처럼 나도 큰 꿈을 갖고 열심히 노력해 김대중 선배님의 뒤를 이어 나가는 자랑스런 후배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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