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최대명절인 추석이 다가온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시기에 만나는 추석은 그 어느 명절보다 풍요롭다. 들녘에서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사과와 배 등 각종 과일을 비롯한 먹을 거리가 풍족해진 만큼 인심도 넉넉하다. 쑥이나 모싯잎을 넣어 빚은 송편은 예나 지금이나 추석을 상징한다. 하지만 올해 추석은 그 어느 해 보다 썰렁하다고 한다. 아니 최악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야할 과실들은 너무 뜨거운 태양볕에 타들어가 상품성을 잃어버리고, 바다에서는 전복과 각종 양식수산물은 집단 폐사하는 등 풍년(어)가가 울려 퍼져야할 들녘과 어촌에는 한숨 소리만 가득하다.
어디 그뿐인가. 김영란법 시행으로 백화점과 전통시장 등 유통시설들도 ‘된서리’를 맞고 있다.

김영란법, 비웃는 지방토호들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 등은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상 받지 못하도록 하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고가의 선물셋트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기다 시피했기 때문이다. 폭염속에 어렵게 키운 농수산물을 시장에 내놓아 봐야 살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김영란법은 부패의 고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사실 우리사회는 수많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있다. 특히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는 국민들을 실망케 했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일부 일선 자치단체장의 식욕(?)은 게걸스럽다고 할 정도다. 최근 전남지역 일부 단체장들은 관급자재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오랜 자금줄이었던 건설분야가 침체되면서, 관급자재가 새로운 자금줄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상하수도 관급자재에서는 거의 30%를 챙길 수 있다고 한다.
조달시스템을 통해 구매한다고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특정업체의 물품을 확정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건설분야는 준공까지 2~3년정도가 소요되는데 반해 관급자재 납품은 계약후 즉시 물품이 인도되기 때문에 빠른 정산을 바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은 먹거리일 것이다. 전남지역 일부 시군의 이런 행태는 그동안 각종 감사에서 간혹 적발됐지만 일부 공무원만 처벌받았을 뿐 은밀한 거래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김영란법이 오는 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교원의 식사비와 선물, 경조사비 등을 제한해 부정부패가 자리할 수 없는 사회적인 풍토를 만드는 것에 기대감이 크다.
벌써부터 각급 기관 단체는 김영란법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하고, 윤리강령을 재정비하는 등 나름 기민하게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힘있는 사람(?)이 얼마나 김영란법을 의식할지는 알 수 없다.
관급자재를 비롯해 각종 이권에 개입해 엄청난 돈을 챙기고도 별탈이 없었던 분들에게 김영란법은 그저 그런 구호로 정도로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소소한 것까지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은 김영란법이 기존 법을 무시하고 관급자재 납품을 통해 부를 축적한 지방자치단체 실력자들을 견제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자치단체장 비리 예방이 중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농수축산물 시장이 침체된다거나, 사회구성원간 불신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역시 크다.
문제는 이런 김영란법이 큰 물고기는 못잡고 피라미들만 잡아들이거나, 파파라치만 양산하는 부작용만 낳지 않을까 걱정이다.
부정한 청탁과 부정부패를 차단하는 김영란법도 좋지만 각종 이권에 개입해 부를 축적하는 자치단체장들의 비리를 예방하는 게 더 중요하다. 벌써 관행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 관급자재 납품비리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 박원우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