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은 기어이 결단을 내리라”





모내기가 끝나자 이제 날은 더워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철 이른 매미가 고을의 느티나무마다 울어대고 사위에 실록이 눈부시게 푸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설화는 나비 같이 얇은 옷을 입고 드디어 임돌이 시묘살이 한다는 골짜기로 향했다. 물론 우장을 쓰지 않은 채였다.
설화의 몸은 비에 젖어 온몸의 살이 하얗게 내비쳤다. 미끈한 몸매에 볼록 솟은 젖무덤 그리고 암팡진 엉덩이가 부풀어 곧 터질듯 탱탱한 나신 그대로였다.
해질 무렵에야 설화는 임돌의 묘막 근처에 당도하였다. 임돌은 보슬비 속에서 상복을 입고 어디서 얻어 온 것 같은 밥을 차려놓고 부모님 묘소 앞에 엎드려 읍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임돌의 목소리는 낮고 애절했다. 설화는 임돌이 의식을 마치자 문득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며 그쪽으로 뛰어갔다.
“아! 아악! 사 사람 살리시오!”
그 소리를 들은 임돌이 설화를 쳐다보았다. 알몸이나 한가지인 여인네가 기겁을 하며 뛰어오자 임돌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 무슨 일이시오? 낭자!”
“길을 가는 여인네이온데 강도를 만나 다 빼앗기고 여기까지 도망 왔습니다. 나 좀 구해 주시오!”
설화는 다급하게 외쳤다.
“어서 묘막으로 드십시오.”
임돌은 마치 발가벗은 나신과 같은 젖은 설화의 알몸을 보자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설화는 못 이긴 척 묘막으로 들어가 끙끙 앓는 시늉을 했다. 얼마 후 임돌이 미음을 쑤어서 가져와 설화에게 먹여주었다.
“누추한 묘막입니다만, 잠시 몸을 보살폈다가 떠나시오.”
임돌이 수저로 설화의 입안으로 미음을 떠 넣어 주면서 말했다. 설화는 몹시 몸이 아픈 듯 신음을 하면서 미음을 받아먹었다. 그날 밤이었다. 밤이 이슥해도 임돌이 묘막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설화는 궁금하여 문을 살그머니 열고 밖을 살펴보았다. 임돌은 묘막 앞에서 거적을 깔고 누워 있었다. 설화는 임돌을 후릴 양으로 아픈 척 신음을 하며 말했다.
“어서 들어오시오. 주인과 객이 이렇게 바뀌었으니 내 마음이 언짢습니다.”
“낭자! 걱정 말고 편히 쉬시오. 감기 들면 큰일이오니 몸을 생각하십시오.”
임돌이 불쑥 거절하는 말을 했다.
‘흥! 제 녀석이 무슨 군자랍시고…. 얼마나 버티는가 어디 두고 보라지!’
설화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고 가늘게 웃음을 머금었다. 모두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진 효자들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임돌은 새벽에 일어나 부모님 묘소에 밥을 올리고, 의식을 행하고 나서 작업복으로 갈아입더니 일을 나가는 것이었다. 설화는 모른 체하며 차려준 밥을 먹고 묘막에서 뒹굴며 잠을 잤다.
얼마나 잤을까. 점심 때 쯤 임돌이 와서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더니 얻어 온 뜨건 밥을 묘소 앞에 올려놓고 다시 읍을 하고 나서 묘막 문을 열었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아이구! 너무 기겁을 하여 내빼 오다보니 지금도 사지가 쑤셔오고 죽을 지경 입니다.”
설화는 일부러 아파 죽겠다는 시늉을 했다.
“제가 밥상을 봐 놨으니 드시고 쉬시지요.”
임돌은 일 나간 집에서 얻어 온 밥과 나물을 차려주고 다시 작업복으로 갈아입더니 쏜살같이 나갔다. 설화는 얼른 일어나 밥을 먹으며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이런 궂은 밥을 먹어야 하다니…. 오늘밤은 기어이 결단을 내리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