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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루와 누정문화 (21) ‘사가정 서거정’
2016년 12월 23일(금) 00:00


여섯명 왕을 보필한 당대 최고 관료문인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 1420 ~ 1488)은 지금의 서울 강동구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말에서 조선 초기의 관학파 대표 문인인 권근의 외손자였다. 그는 이색의 손자이자 마찬가지로 권근의 외손자였던 이계전과 그의 매형인 최항에게서 학문을 익혔으며 세종 26년(1444) 25세의 나이로 문과에 을과 급제했다. 사재감(어류, 육류, 소금, 장작, 진상품 등을 관장하던 관청)직장으로 관인으로 첫 걸음 디딘 서거정은 이후 집현전 박사 에 오르면서 세종조 당대 최고 문인들이자 훗날 사육신으로 불리는 성삼문, 박팽년, 이개, 유성원 등과 교유하였다. 그러나 서거정은 이와 반대되는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와 명나라 사신으로 함께 가는 인연을 맺으면서 그때부터 그에게 신임을 얻게된다. 계유정난을 거쳐 세조가 즉위한 이후 그는 승승장구하는데 공조참의·예조참의·형조참판·예조참판·형조판서·예문관대제학에 연이어 오른다. 물론 세조의 신임뿐만 아니라 그의 문장력 또한 뛰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순조로운 관료생활이 가능했다. 실제 서거정이 현과(문과중시, 정시, 발영시, 등준시 등 현직관료를 대상으로 치뤄지는 특별과거시험을 의미)에 4번이나 급제한 것은 이러한 점을 뒷받침 한다 볼 수 있다. 성종조에는 좌참찬, 이조·병조판서를 거쳐 세자(훗날 연산군)의 스승이 되어 논어를 강의하였다. 이처럼 조정관료로서 6명의 임금을 45년 동안 모셨던 그는 성종 19년(1487) 6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서거정이 관료로 제직하며 보였던 학문적 경향은 사림파가 정권을 잡기 이전 관학파 중심의 학풍과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국통감’‘동국여지승람’‘동문선’‘경국대전’등의 집필에 참여했으며 개인 저술로 ‘역대연표’‘동인시문’‘필원잡기’‘사가집’등이 있다.
또한 문인으로서 굴곡없는 삶을 살았기에 다수의 시문학 작품을 남겼는데 현재 전해오는 시는 6,000여수에 이른다. 특히 서거정의 시문집인 ‘사가집’에 쌍계루 관련된 시가 2수가 남아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수
남국에 가장 이름난 절이 바로 백암사라
수많은 누대 사이엔 남기가 어우러졌는데
언제나 짚신 버선 차림으로 스님을 찾아
밝은 달밤 쌍계에서 종용히 담론해볼꼬

2수
목은의 큰 문장으로 사루를 잘 꾸몄는데
삼봉의 뛰어난 필치 또한 풍류가 있거니
내 졸렬한 시구를 큰 소리로 읽지 말게나
아마도 산신령이 허여해 주지 않을 걸세

이 2수의 시는 당시 서거정과 교유하던 백암사(지금의 백양사) 도암스님의 부탁으로 지은 시인데 전체적으로 2수의 시 모두 그의 관료생활에서의 여유와 삶은 안정감이 느껴진다. 제 1수에는 백암사의 명성과 쌍계루 주변의 밤풍경을 연상하게 하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짚신 버선’ 차림은 큰 역경이 없었던 당대 최고의 문인이지만 정작 자신은 소박하고 유유자적한 삶을 원하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제 2수에는 쌍계루와 목은 이색과 삼봉 정도전의 기문을 높이 치켜세우면서 이에 비해 자신이 지은 시를 졸렬하다 표현하며 한껏 낮추고 있다.
/내장산국립공원백암사무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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