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피요르드 주변 풍경

거의 한달간의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후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남도의 자동차길을 주행할 때면 유럽의 자동차 길들이 한국의 길들과 오버랩 되고 있다.

유럽의 길거리 풍광과 한국의 길거리 모습들이 야릇하게 대비되면서 남도의 길들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문득문득 보곤 한다. 아예 필자는 남도의 아늑한 길들을 외국의 길이라 여기고 객관적으로 그 매력적인 요소를 발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길가에 즐비한 교통표지판의 한글을 아예 읽지 못하는 외국인이라 자신을 가정하고 제3의 시각으로 남도의 길가 풍경들을 음미하고 있다.

남도의 여름 길가엔 붉은 백일홍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으니 온 산야에 붉디붉은 사연들이 가득차 있는 듯싶다. 그 많은 사연들을 안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남도인들에겐 붉은 정열이 가슴속 깊이 자리하고 있으리라…. 그래서 역사의 질곡에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굵은 함성으로 메아리쳤으리라….

남도의 백일홍 천지는 유럽의 어느 길거리에서도 보지 못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길가에 길게 늘어진 품이 꼭 꽃뱀이 감아 돌아가는 것 같다. 산에도 붉은 백일홍이 도처에 피어 있어 한국인들이 왜 이리 정열적인가 외국인이라면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가신 임 산소에도 붉게 피어 그 인생역정을 말해 주는 듯하고, 산자락 원예용 재배단지엔 붉은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하니 곧 산 아래로 흘러내릴 태세다.
덴마크의 도로에 백수해안도로보다 더 많이, 더 붉게 피어있는 해당화를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는데 백일홍만큼 이길저길 따라 피어 환상적인 모자이크를 만들어내지는 못하였다. 세익스피어의 4대비극중 하나인 햄릿의 소재지는 덴마크의 크론보르 성(城)인데 그곳 해안에 납작하게 엎드려 피어 있는 해당화 세상을 보고 그 기이함에 햄릿의 슬픔만큼이나 핏빛을 연상했었다. 그리고 꼭 다시 와보고 싶은 곳으로 마음에 새겨 두었다.

그러나, 고국에 돌아와 뜨거운 태양아래 펼쳐진 백일홍 세상을 새삼스레 뜯어보니 그 스케일이 어찌 덴마크의 해당화와 비교하랴! 북유럽의 라일락 천지도 남의 정원의 이야기일뿐이다. 프랑스의 라벤다 고장도 향기만 넘쳐날 뿐 우리 남도의 영혼을 반영하는 백일홍의 깊은 멋에 비길 것인가. 남도에 펼쳐진 백일홍 세상은 장구한 역사속에서 남도인들의 열정과 좌절, 분투와 고통, 그리고 슬픔과 즐거움을 다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니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좋은 남도에 살면서 그 시각으로 선진국의 다양한 풍광을 소개하리라.

일단 시작한 장거리여행인데 크루즈여행만 마치고 귀국하기에는 아까운 기회라고 여겼다. 항공요금도 140만원이나 지불했으니 수차례의 미국대륙 자동차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 한번의 도전에 나서게 되었다.

처음 목표는 크루즈 기항지인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의 여러 도시들을 피해 그 나라의 내륙을 자동차를 이용하여 살펴보는 것이었는데 도중에 변경되어 12개국을 주유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즉 주안점은 유럽대륙의 최북단인 노르웨이 극북점 노르갑, 영어로는 노스케이프를 답사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38선을 두고 싸운 적이 있었는데 그 곳은 무려 북위 72도가 되니 꼭 가보고 싶었다. 우리가 한반도의 최남단인 땅끝을 곁에 두고 살아가므로 그 의미를 살려 유럽대륙의 북쪽 땅끝도 이 기회에 필히 가보아야 할 곳이었다. 코펜하겐에서 그 곳까지는 배도 서너번이나 타야하는 등 편도 3천킬로가 넘지만 한번 세운 계획은 도중에 일행이 반대해도 굽히지 않았다.

땅끝은 필자에겐 숙명과도 같이 떨쳐버릴 수 없는 느낌으로 평생 다가오고 있다. 이 곳을 죽는 날까지 떠날 수가 없을 것임을 운명적으로 직감하고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봉도 답사하지 않았던가. 하여간 남도에 사는 사람들에겐 땅끝이 주는 기운을 알게 모르게 떨쳐버릴 수 없으리라….

이번 유럽여행은 대륙을 무대로 하고 있으니 종국엔 12개국을 주유하게 되었다. 처음 북유럽 크루즈 3개국에 이어 북유럽국가 내륙탐사, 이어 프랑스, 스페인까지 연장되었다. 총 16,000km에 이른 여정을 날짜순으로 기록하면서 여러 남도인들과 공유할까 한다.

우리를 태운 루프트한자 비행기는 6월 30일 인천공항에서 독일 남동부에 위치한 세계적인 맥주축제의 고장 뮌헨까지 태워주었다. 중국, 몽고, 러시아 상공을 비행할 때 평생 처음 보는 엄청난 크기의 뭉게구름은 필자의 가슴을 심히 설레게 하였다. 새하얗게 하늘 높이 피어올라 하늘에 매달린 초거대 적운은 미지의 세상에 대한 필자의 동경처럼 송알송알 부풀었다. 뭉게구름 송이송이에 비친 햇빛은 새처럼 높은 하늘을 날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눈이 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