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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용과 떠나는 역사여행<6> 고분 속에서 부활한 대가야

언덕위 수백여 개 반원들…유물 발굴 진행중
고령 44호분 무덤엔 40여명 순장 흔적 발견
역사여행서 지금 나 돌아보며 미래 희망 그려

2017년 09월 08일(금) 00:00
고령무덤군
대가야박물관



우륵박물관과 우륵





역사여행 안내를 하다보면 사건 연도와 인물을 엮어 풀어내는 역사적인 지식보다 예상치 않은 이야기에 참여자들은 더 관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삼국시대의 역사유적을 안내할 때는 간혹 이런 말을 꺼낼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신라초등학교가 있을까? 있지요. 그럼 어디에 있을까? 당연 경주겠지요.
백제 초등학교는? 가야 초등학교는?
신라초등학교는 경주에 있고, 백제 초등학교는 부여와 익산에 있으며, 가야초등학교는 인터넷에 검색되는 곳이 네 군데입니다. 김해, 부산, 함안, 광양.
가야는 범위가 넓습니다. 땅이 넓은 것은 아닌데 우리가 그리지 못하는 역사가 넓다는 것이지요. 가야는 이름도 많고 6가야니 12가야니 하면서 그 이름 또한 정확히 정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역사여행으로서 가야유적을 보러 가면 김해의 금관가야, 그리고 고령의 대가야를 대표로 삼고 떠납니다.
오늘은 대가야의 유적이 있는 경북 고령으로 떠나겠습니다. 고령군 고령읍이 2015년 대가야읍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고령. 호남에 사는 우리에겐 익숙한 지명은 아니지요. 고령 정보를 얻으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왼쪽 상단 타이틀로 '대가야의 도읍지-고령'이라는 상징문구가 보입니다. 지역홍보 마케팅에 관광이 최우선으로 자리매김하는 시대라 눈꼽만한 꺼리도 기어이 찾아서 연결하려 하는데, 고령은 대가야 도읍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지역홍보에 든든한 버팀목이 됩니다. 헌데 속을 들어다보면 미궁 속에서 빠져나오질 못합니다. 기록도 미미하지만, 일제 강점기 임나일본부의 사상적 바탕이 되는 바람에 우리 연구자들이 회피하는 면도 있었습니다.
역사적 지식으론 삼한의 변한 지역에 해당하는 곳에 여러 소국들이 생겨나고 연맹체로 남아 있었는데, 그중 전기 연맹은 김해를 중심으로 하는 금관가야가 주축이 되었고, 400년 고구려의 침입으로 가야연맹의 중심은 대가야로 그 축이 옮아간다는 것. 그리고 가야금과 함께 전해지는 우륵은 진흥왕때 신라로 망명하고, '독도는 우리땅' 노래 속 가사로도 유명한 이사부장군에 의해 대가야는 멸망을 하고 가야 역사는 고분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역사 가야는 고분 속에서 부활합니다.
대가야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고령에 가면 대가야 무덤들이 있습니다. 그 앞으로 대가야 박물관이 있고, 건너편엔 테마파크 식으로 공원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주차장에 내리면 제일 먼저 언덕 위에 박혀진 수백 여 개의 반원들이 보입니다. 반은 하늘에 걸려있고 반은 땅속에 들어있는 무덤에 일련번호를 매겼지요. 치열한 삶을 살았을 이름은 잃어버리고 잊혀진 채 관리 번호로 불려집니다. 발굴된 무덤에서 토기, 철기, 금동관, 장신구 등 최고급 유물들이 출토되는 걸로 봐서는 왕족과 귀족의 무덤이었을것이라 여겨지고, 그 중엔 최고 수장인 왕도 있었을 것입니다.
열 개를 발굴했었고, 현재도 여전히 발굴 진행중입니다. 발굴된 무덤중 44호분이라 이름붙여진 무덤에서 대단한 발견이 있었습니다. 발견은 있었던 것이 남겨져 보여지는 현상입니다. 44호분에서 40여명이 함께 묻힌 흔적이 보입니다. 무덤 가운데 가장 큰 돌 관을 기준으로 차곡 차곡 동심원을 그리며 묻힌 흔적입니다. 몇 곳에서는 유골도 수습되어 나이 유추도 가능한데 8살 어린이부터 50대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순장의 흔적입니다.
순장은 따라죽을 순(殉), 장사지낼 장(葬), 따라죽어서 함께 장사지내는 무덤형태를 말합니다.
순장임이 증명되려면 세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여럿이 동시에 함께 묻힌 동시성, 둘째는 타살의 흔적이 발견되는 강제성, 셋째는 각각의 묻힌 자리의 규모와 부장품의 품격으로 구분되는 계급성.
세 앞글자를 따서 '계강도(개강도)'라고 소리맞춰 다시 한번 인지시켜 보곤 합니다. 모시던(계급) 사람이 죽으면, 묻힐 때 함께(동시), 죽어(강제) 같은 무덤에 묻혔습니다. 따라 죽지 않으면, 따라 죽였을 것입니다.
지배자가 죽어 묻히는데 왜 주위 사람들까지 함께 묻혀야 했을까요? 왜? 권력자는 살아서 아랫사람을 부리고 죽어서도 그 생활은 지속되어야 하기에 주위 사람을 함께 묻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 또한 지금처럼 지속되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당연시 했을 겁니다. 어쩌면 순장 대상에 뽑힌 걸 영광스럽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순장무덤인 대가야 44호분은 지금으로부터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불과 1,500년전 이야기. 책상에 앉아 역사연표를 그리면 천년은 잣대 눈금 한 두 줄 차이입니다.
삼국시대 초기엔 한반도 북쪽 끝에서부터 이런 순장 무덤이 발굴됩니다. 당시의 유행이었다는 말이지요. 권력이 클수록 많은 사람을 함께 묻어 현세의 영광을 이어가길 바랐을 것이고, 이는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내세 개념이었을 것입니다.
44호분 순장 무덤이 있고부터 천 오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순장 무덤의 폭력성을 보면서 내세에 대한 그들의 무지와 지금 사람들의 현명함을 은근 자랑스러워할런지 모르겠습니다.
헌데 지금 우리가 종교로 혹은 철학으로 개념짓는 죽음 후에 대한 생각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로 다수를 최면에 거는 사상들이 역시 지금부터 천 오백년이 지난 후엔 '사기'로, '웃음거리'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있는 인간 주위에는 보이지 않는 힘을 빌려 인간을 옭아매는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사상들이 있습니다. 일련의 활동들이 인간을 향하지 않고 돈을 향하거나 권력자의 욕심을 향한다면 언젠가는 이 또한 우스갯거리겠지요. 그리고 '순장' 무덤 앞에서 느끼게 되는 인간 폭력의 황당함까지도 연결되지 않을까요.
역사여행은 시간을 거슬러 현장에 가서 그곳에 살았던 인간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지금 나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그려보는 희망공부입니다. 대가야의 순장 무덤이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연결되어 공동체의 삶은 적어도 어떠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듯이요.
/체험학습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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