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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만나는 일제강점기 아픔과 독립정신

'귀향, 끝나지않은 이야기' 등 국권강탈 소재 영화 개봉 잇따라
김구와 백화마을·정율성과 양림동·군사시설 도심 곳곳 산재
<일제의 흔적·독립운동가를 찾아서>

2017년 09월 22일(금) 00:00
백범기념관에서 나오는 김구 선생 영상.
지난 14일 개봉한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21일 개봉한 '아이캔스피크', 10월 19일 개봉 예정인 '대장 김창수' 모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와 '아이캔스피크'는 위안부 이야기를, '대장 김창수'는 김구 선생의 이야기를 다뤘다. 최근 9~10월 사이에 개봉, 또는 개봉 예정인 3편의 일제강점기 영화에 맞춰 광주에 남아있는 일제의 흔적과 독립운동가를 찾아 나섰다.



◇광주와 김구 선생의 깊은 인연

동구 학동에 위치한 '백화마을'. 백화마을은 김구 선생이 일제강점기 이후 갈 곳이 없어진 이들을 위해 마련한 삶의 터전으로, 백 가구가 화목하게 살라는 뜻이 담겨있다.

1946년 강연 차 목포, 순천, 함평, 나주 등을 돌던 김구 선생은 광주에 방문해 대성초등학교에서 연설을 했다. 당시 서민호 광주시장은 해방 후, 갈 곳 없는 귀국 동포들이 학동에 모여 살고 있다는 말을 한다. 이에 김구 선생은 자신의 성금과 선물 등을 기증해 100여 가구가 살 수 있는 백화마을을 만들었다.

김구 선생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백화마을은 이제 마을의 흔적대신 그 이름을 딴 아파트와 2011년에 만들어진 학동 역사공원, 2015년에 설립된 광주백범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학동 역사공원에는 김구 선생이 직접 쓴 휘호와 동상이 있고, 광주백범기념관에는 김구선생의 생애와 업적, 백범일지 인영본, 영상과 함께 1016명의 광주·전남지역 독립운동가를 조명해 놨다. 광주와 인연 깊은 김구 선생과 함께 나라를 위해 힘쓴 광주·전남지역 독립운동가를 만나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양림동 출신 독립운동가 정율성

음악가로 유명한 정율성은 양림동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4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물론, 3명의 형들과 누나, 매형 모두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그들은 독립운동을 펼치다 감옥에 수감되기도 하고 목숨을 잃기도 한다. 정율성 또한 의열단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 후,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항일비밀활동을 하는 틈틈이 크리노와 교수로부터 성악을 배우게 되고, 이후 연안으로 넘어가 노신예술학원 음악학부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정율성은 작곡을 하면서도 화북조선청년연합회 섬감녕분회, 태행산의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 등에 소속돼 항일운동을 이어나갔다. 해방 후에는 조선인민군 구락부의 부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3·1행진곡', '조선해방행진곡', '조선인민군행진곡' 등을 작곡했다.

몸과 정신, 그리고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정율성을 기리기 위해 양림동의 한 아파트 외벽에는 정율성 거리 전시관이 있다. 외벽에는 그의 노래와 업적 등이 기록돼 있으며, 그의 대표곡인 '연안송'의 악보가 가사와 함께 적혀있다.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정율성 거리 전시관은 그 이름에 걸맞게 거리를 지나다니며 자연스레 마주칠 수 있다. 양림동 출신의 독립운동가라는 의미를 심어줌과 동시에 접근성을 높여 보다 많은 시민이 볼 수 있도록 설치돼있다. 거리 전시관 한켠에는 정율성 동상도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안성맞춤이다.

◇도심 곳곳 스며있는 일제의 잔재

화정동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이 곳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기리고자 세워진 곳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그 정신을 본받는 곳이다. 뜻 깊은 기념관 뒤 산책로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군이 만들어놓은 군사시설이 있다. 2013년 8월 발견된 이곳은 아치형 내부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으며, 그 길이가 50~80m나 된다. 3개의 군사 시설은 모두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큰 훼손 없이 잘 보존돼 있다.

1945년 8월 31일 일본군이 작성한 한반도의 군사시설 목록을 보면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 당시 최후 방어 차원에서 구축된 비행장 부속 시설이라는 점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전쟁당시, 일제의 식민통치로 인해 우리 마을을 일본군 부대의 막사로 내줘야 했고, 참호, 격납고와 고사포 진지, 비행장 등으로 땅은 파헤쳐졌으며, 수많은 한국인이 태평양 전쟁에 강제 동원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화정동에 위치한 군사동굴 역시 전쟁과 함께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 양림동에 위치한 최승효 가옥, 치평동에 위치한 치평리 비행장, 광주신사, 구 광주역 등 지역 곳곳에서 일제강점기의 잔재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 영화만 보고 지나치지 말고 광주를 둘러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보자.
/이보람 기자          이보람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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