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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사문학의 터 담양

담양 가사문화권에 스민 송강 정철의 발자취
송강 학창시절 흔적 환벽당
사촌 김윤제를 만난 곳 용소
'성산별곡' 소재 됐던 식영정

2017년 09월 22일(금) 00:00
환벽당엔 송강의 학창시절이 담겨있고, 가사 '성산별곡'의 주제와 소재가 되었던 식영정 또한 송강의 숨결이 담겨있다.
식영정






환벽당






가사문학관












답사여행사를 운영하며 또한 제가 직접 인솔하고 해설안내도 하니 '요즘엔 어디가 좋아요?' 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어디든 다 그때마다 맛이 있지요' 라는 대답을 하고 싶지만, 질문자가 요구하는 답은 아니기에 기어이 한 두 곳은 언급해 드리지요.

'요즘엔 어디가 좋을까?'

이 말 속에는 '지금쯤엔 어디에 무슨 꽃이 피어있나요' 라는 말로 상당부분 대체 가능합니다. 우린 사시사철이 뚜렷하다보니 각 계절에 맞는 자연의 변화가 유적지의 맛을 더 높여주지요.

가을로 성큼 들어선 구월 어디가 좋을까? 상사화 피는 곳이라면 한층 유적지의 맛이 더할 것이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마침 영광 불갑산엔 상사화 축제 기간이니, 상사화의 전설을 들으면서 애틋한 마음 더해보면 좋겠습니다.

혹 축제의 번잡함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무등산 넘어 담양의 가사문화권을 돌아보길 권장해 드립니다. 특히나 이맘쯤이면 푸르름을 둘렀다는 환벽당(環璧堂)은 잎을 그리워하는 꽃들로 인해 '환홍당(環紅堂)'이 되어 반겨줄 겁니다. 오늘은 무등산 넘어 담양의 가사문화권으로 떠나볼까 합니다.

무등산 넘어 담양에 들어서면 이름난 정자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정자문화권이라고 그룹지어 말하기도 하고, 정자에서 시와 노래를 짓고 불렀다고 하여 시가문화권, 그 시가중 특히 가사문학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고 해서 가사문화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광주사람들은 담양이라는 말에 광주를 기어이 한꼭지 넣고싶어 무등산권 가사문화권이라고 에둘러 말하기도 하지요.

어쨌든 무등산을 둘러싼 담양 지역엔 정자가 많습니다.

정자와 함께 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가문학의 가사.

담양엔 '한국가사문학관' 이라고 번듯한 건물도 들어서 있습니다.

먼저 '가사'가 뭘까?

노래 가사할 때의 그 가사입니다. 가사내용으로 노래를 불러요.(물론 노래가 아니래도 소리내어 읊기 위한 가사도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기 전까지 우리는 말과 글이 달랐습니다.

아버지라고 말은 하면서도, 아버지라고 쓸 수는 없었지요. 대신 '父(부)'라고 한자로 썼습니다. 우리말과는 다른 한자 한 글자 한 글자가 모여 시가 되고 문장이 되지요. 한문은 글자수가 압축되는 묘미는 있지만, 우리말을 할 때와 한자음을 읽을 때 서로 소리가 달랐던 것입니다.

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슬픔이 있었다면, 한글이 실용화되기 전까지 이 나라의 모든 이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쓸 수 없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입 말 따로 글 말 따로였으니 우리말을 한문으로 그리고 다시 한문을 우리말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글과 시가는 일부 교육을 받은 식자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고급문화로 이어졌을 뿐입니다.

우리 생각을 한시에 집어넣으려면, 한자라는 틀을 통과해야 하고, 우리 생각이 바로 시로 나타나지는 않게 되어 쓰기도 어렵거니와 이해하기도 어렵겠지요. 한자로 쓴 시를 벗어나 우리 생각을 우리 입말로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허리를 잘라내어

춘풍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시는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황진이의 시조입니다.

우리말로 생각을 참 잘나타냈습니다. 제가 해설을 하면 이정도의 시조 몇 편은 감정 넣어서 그냥 줄줄 외웁니다. 3글자 4글자 반복되며 우리말의 음률도 살아납니다.

헌데. 세 줄로 끝내려하니 쌓인 감정을 다 못 나타내는 것이예요. 그래서 네줄 다섯줄 쭉쭉 3글자 4글자 반복해서 하고 싶은 말을 쭉 이어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가사'라는 장르가 생겨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이런 가사를 통해 우리말을 가장 잘 풀어쓴 이가 송강 정철이며, 가사문화권의 답사 코스는 바로 송강 정철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코스이기도 합니다.

송강 정철.

잘 나가던 집안의 금수저 송강. 누나 둘은 왕족과 혼인을 맺고 어려서는 궁궐 출입도 잦았다고 하니 최고급 문화를 누렸겠지요. 그러다 아홉살때 중앙의 정권 교체기에 집안이 연루되어 거의 폐족수준까지 이릅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수 년이 지나 과거의 역모죄가 사면이 됩니다.

그리고 열여섯 살에 담양에서 우연히 스승 눈에 띄어 다시 빛을 보게 됩니다. 송강을 발탁한 이가 바로 무등산 환벽당 주인인 사촌 김윤제입니다. 사촌은 나주목사를 끝으로 고향에 돌아와 후학들을 교육하고 있었지요.

나주목사. 지금의 광주 시장 더하기, 경찰서장 더하기, 법원장 더하기, 향토사단장 더하기 보다도 더 높은 직급이었습니다. 지금의 자치단체장과 동급으로 보기는 어렵지요.

많은 인물을 접했을 퇴임한 고급관리는 열여섯 먹은 총기 있는 젊은이를 한 눈에 알아보지요. 송강의 열 살 전까지의 삶은 궁궐도 출입하면서 나름 그 쪽 법도도 몸에 배어있었을 것이니 자세 또한 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공부를 시킵니다.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수많은 관계가 형성되지만, 가장 끈끈한 인연은 혈연입니다. 학연이나 지연이야 후천적인 것이지만, 혈연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혈연을 억지로 맺는게 바로 결혼이지요. 결혼을 통해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사촌은 송강을 외손녀딸과 결혼시킵니다.

송강은 무등산 아래에서 훌륭한 스승 만나 공부하고 좋은 집안에 장가들어 후원 제대로 받습니다. 10년을 공부합니다. 진사시험에 장원급제, 이어 대과에 장원급제로 보답하며 중앙 관직에 진출합니다.

벼슬길 승승장구하다가 정권 주도권 싸움에 밀리면 담양으로 내려왔습니다. 열여섯부터 10년을 담양에 머물렀으니, 우리가 생각하기에 중고등과 대학 학창시절을 이곳에서 보내는 것입니다. 흉금을 털어내며 말할 수 있는 동창생들이 바로 여기에 있으니 휴양을 위해서도 재기를 준비하는 차원에서도 최고의 적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송강은 말년에 정여립 사건으로 비롯된 기축사화 처리 담당자가 되어 반대파 세력을 제거하면서 상당의 호남선비들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호남에서 자랐는데, 호남세력을 탄압했으니 그 배신감은 더 컸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철에게 핍박받았던 이 지역 한 집안은 정철 후손과는 아직도 결혼을 안한다고 하니, 400여년이 지났어도 그 여파가 남아 있는 셈이지요.

송강이 스승겸 처할아버지인 사촌을 만났다고 전해지는 곳이 바로 환벽당 아래의 용소라고 불리는 개울이고, 환벽당에서 송강은 공부를 했습니다. 환벽당엔 송강의 학창시절이 담겨있고, 가사 '성산별곡'의 주제와 소재가 되었던 식영정 또한 송강의 숨결이 담겨있습니다.

환벽당과 식영정을 오가는 길은 광주댐이 생기고,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고, 길은 자동차가 점유해버려 송강 시절과는 다른 풍경이지만, 그래도 무등산 언저리 가사문화권에 꽃들은 송강이 공부하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때맞춰 피고집니다. 그 또한 지금의 우리처럼 이맘때는 어디가 좋다는 정보를 주고받으며 세월이 지나감을 느꼈을 겁니다.

역사여행은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옛사람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그가 살았던 삶을 느껴보는 시간여행입니다. 환벽당, 식영정 등 가사문화권에서 송강의 발자취 따라 걸어보며 난 어떻게 살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9월이 가고 있음도 아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체험학습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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