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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이 먼저 발포·북한군 개입도 허위"

경찰, 5·18 당시기록·증언 조사 첫 발표
"계엄군 강경 일변 작전 계속…상황 악화"

2017년 10월 12일(목) 00:00
80년 5·18 당시 계엄군이 무장한 시민군에게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라는 경찰의 보고서가 발표됐다.

또 80년 5월 당시 광주에서 130여명의 정보·보안 형사들이 활동했고 시내 주요 지점 23개소에 정보센터를 운영했지만 북한 관련 첩보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 북한군 개입설 역시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남경찰청 5·18 활동조사 TF팀은 11일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 역할'의 조사보고에서 시민을 향한 계엄군의 발포가 자위권 때문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기했다.

5·18 직전 광주는 경찰의 보호 아래 안정적인 치안이 유지되고 있었으나 18일 새벽 계엄군이 배치, 오후 4시부터 계엄군의 광주시내 진압작전이 시작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전남경찰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지역 치안을 맡았던 당시 문서와 기록 등을 바탕으로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30분 나주경찰서 남평지서에서 무기와 실탄이 처음으로 피탈됐다고 밝혔다.

이날 낮 12시59분께 전남도청 앞에서는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자행됐다.

전남경찰은 "21일 오전 5시13분 광주세무서에서 M1 17정을 탈취 당했지만 실탄은 가져가지 않아 '무장'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 역시 계엄군의 총격으로 최초 사망자가 발생한 20일 오후 10시 이후다"고 설명했다.

국방부과거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보고서에 인용된 '전남도경 상황일지'에 기록된 '5월21일 오전 8~9시 나주 반남지서와 남평지서 무기 피탈'의 자료에 대해서는 조작을 의심했다.

당시 경찰이 보유하지 않던 '경찰 장갑차 피탈' 등의 내용이 기재된 점, 표지와 본문 내용과 작성 방식이 다른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전남도경(全南道警)의 '경계할경(警)'을 '공경할 경(敬)'으로 잘못 표기한 상황일지 표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상황일지에 적힌 '도경'은 경찰 내부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닌, 외부 기관이 경찰을 표현할 때 쓰는 용어다"며 "시민에 대한 군의 발포가 자위권 행사 차원의 정당한 행위'라는 논리를 구성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왜곡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항간에 언급되고 있는 북한군 개입설 역시 신빙성 없는 주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80년 5월 당시 광주에는 130여명의 정보·보안 형사들이 활동했고 시내 주요 지점 23개소에 정보센터를 운영했는데 북한 관련 첩보는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시민군들이 나주와 화순 등지에서 시민군들이 간첩용의자를 잡아 경찰에 신고·인계하는 등 당시 대공 용의점을 가진 사람을 내부적으로 적발하기도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강성복 전남경찰청장은 "그동안 5·18 당시 경찰활동에 대한 자체 진상규명 노력이 없었고, 관련기록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생존경찰관의 증언을 확보하고 관련 자료를 보존할 필요가 있어 조사를 시작했다"며 "진상규명을 위해 수집한 자료를 영구보존하고 참여자들의 증언을 계속해서 발굴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나라 기자          이나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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