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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 거짓주장·문서조작 등 사실로 확인

■ 전남경찰 5·18 보고서 발표 내용 의미
'시민군에 대한 발포는 자위권' 주장은 허위
북한군 개입 불가능·경찰 상황일지도 왜곡

2017년 10월 12일(목) 00:00
사진 왼쪽은 조작된 문서로 판단되는 '전남도경 상황일지'로, 집단 발포(1980년 5월 21일 낮 12시 59분) 전인 같은날 오전 8시 나주 반남지서에서 시민군이 총기를 탈취했다고 기록돼 있지만 수기 기록 문서인 오른쪽 '전남경찰국, 집단사태 발생 및 조치상황'과 당시 근무자 진술에 따르면 반남지서에서는 총기 탈취가 발생하지 않았다.
전남경찰이 발표한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과정 속 경찰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보고서는 시민군에 대한 집단발포를 자위권이라고 주장해온 신군부의 주장을 뒤집는 내용이었다.

특히 국가기관인 경찰이 80년 5·18 당시의 상황을 정리해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동안 왜곡돼온 5·18의 진상을 밝히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남경찰청은 11일 '5·18 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의 역할'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남경찰은 지난 4월부터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 사료 수집 및 활동조사를 위해 전담(TF)반를 구성, 관련 자료와 경찰 진술 등을 확보했다.



◇최초 발포 계엄군·상황일지 조작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을 향한 계엄군의 발포가 자위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경찰이 제시한 여러 자료에서 확인된다.

먼저 시민군의 무장 시점이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 이뤄졌다는 게 경찰의 문서에서도 확인된다. 전남경찰은 당시 문서와 기록 등을 바탕으로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30분 나주경찰서 남평지서에서 시민들의 첫 무기실탄 피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계엄군이 옛 전남도청앞 시민들에게 발포한 시점은 이날 낮 12시59분으로 무장한 시민군을 향해 자위권차원에서 집단발포했다는 그간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남경찰은 당시 상황에 대해 "21일 오전 5시13분 광주세무서에서 M1 17정을 탈취 당했지만 실탄은 가져가지 않아 '무장'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 역시 계엄군의 총격으로 최초 사망자가 발생한 20일 오후 10시 이후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국방부과거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보고서에 인용된 '전남도경 상황일지'에 기록된 '5월21일 오전 8~9시 나주 반남지서와 남평지서 무기 피탈'의 자료 역시 조작이 의심된다는 게 경찰의 견해다.

계엄군의 발포를 정당하기 위해 관련 서류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상황일지에는 경찰에 보유하지도 않은 경찰 장갑차가 탈취됐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고 표지와 본문 내용도 작성 방식이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경찰은 "시민에 대한 군의 발포가 자위권 행사 차원의 정당한 행위라는 논리를 구성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왜곡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광주교도소 습격 왜곡

경찰은 일부 문헌에서 제기된 5·18 광주 시민의 광주교도소 습격설은 '시위대의 폭도화'를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담양경찰서의 경우 5월21일 오후 3시30분, 한 차례 피습 당했을 뿐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시민군의 활동도 다른 지역보다 미미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당시 광주교도소장도 "교도소에는 3공수여단 병력이 중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습격은 불가능했다"며 "계엄군이 시 인근 지역의 시위확산을 막기위해 무차별 적으로 발포한 것으로 알고있다"고 진술했다.

교도소 공격이 없었다는 당시 교도소장 등의 증언과 담양 거주 비무장 일반 시민의 총격 피해 등도 참고했다.



◇북한군 개입 불가능·광주공동체 정신

경찰은 항간에 언급되고 있는 북한군 개입설은 신빙성 없는 주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계엄군 철수 이후 신군부가 제기한 혼란스러웠던 광주와 다르게 공동체 정신으로 평화로웠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경찰은 80년 5월 당시 광주에는 130여명의 정보·보안 형사들이 활동했고 시내 주요 지점 23개소에 정보센터를 운영했는데 북한 관련 첩보는 없었다고 밝혔다.

오히려 시민군들이 나주와 화순 등지에서 시민군들이 간첩용의자를 잡아 경찰에 신고·인계하는 등 당시 대공 용의점을 가진 사람을 내부적으로 적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신군부는 계엄군이 철수한 이후 광주 시내는 무장시민군에 의해 살인과 약탈 등 범죄가 판치는 무법천지였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경찰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는 공동체 모습을 보였다고 언급했다.

강성복 전남경찰청장은 "시민 보호의 무한 책임이 있는 경찰이 5·18 당시 군의 과격 진압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못한 점 등 경찰의 미흡한 조치에 대해서도 반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나라 기자         이나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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