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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용과 떠나는 역사여행<8>진주성

임진왜란·정유재란·논개와 호남의병 흔적을 찾아
전라·경상도 관문…왜란 3대첩 격전지중 한 곳
우뚝 솟은 촉석루 앞 강변 의암, 논개 충절 전해
물위 흘러가는 빛나는 등 '남강유등축제' 한창

2017년 10월 13일(금) 00:00
촉석루 앞 강가에 내려오면 의암(義巖)이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다. 사람 10명 정도는 설 수 있는 넓이인데, 임진왜란 전에는 위험한 바위란 의미로 '위암(危巖)'이라고 불리다 논개의 충절을 기리면서 '의암'이라 불렸다고 한다.
역사여행길에 오르면 아이들이 흔히 접하는 사례를 들어 역사 사실들과 결부시켜 설명합니다.

"우린 5학년이지. 지금 5학년 2학기인데 1학기와 2학기 사이엔 뭐가 있었지? 그래 방학, 여름방학이 있었지. 어떤 기간을 둘로 혹은 몇 개로 나눌 때는 그 사이에 나눌 기준점이 있어야 할거야. 방학으로 1학기와 2학기를 나누는 것처럼 조선시대도 500년이 넘는 기간을 조선 전기와 후기 둘로 나눌 때 그 가운데 나누는 기준점이 있어. 조선이 잘 나가고 있었는데 나라에 큰 시련이 닥치지. 바로 임진왜란이야. 임진왜란 앞을 조선전기, 그 뒤를 조선후기라고 해."

임진왜란과 관련된 유적지를 갈 때는 이런 말로 해설을 시작합니다. 이어 관련 유적지 중 어디를 가냐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보통은 임진왜란의 3대첩을 언급합니다.

대첩이란 싸워 크게 이긴 전쟁을 말하는데, 임진왜란의 3대첩으론 통영 앞바다에서 왜 수군의 기를 완전 꺾은 한산대첩, 경상도를 넘어 전라도를 진격하려는 왜군을 육지에서 꺾은 진주대첩, 그리고 한양 수복의 전기를 이룬 행주대첩을 듭니다. 오늘은 3대첩 격전지 중 한 곳인 진주로 떠나봅니다. 때마침 진주에선 진주남강 유등축제가 한창입니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를 넘어오는 대표적인 관문인 진주. 진주남강 유등축제는 진주성을 주무대로 전시와 행사가 펼쳐집니다.

진주를 흐르는 남강을 해자삼아 방어벽을 만든 진주성에서는 임진왜란 기간 크게 두 번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진주대첩이라는 이름을 넘어서 진주혈전이라고까지 표현하는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구분 편의상 1차, 2차로 나누어 설명되어 집니다.

제1차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해인 1592년 10월 3만의 왜군 부대가 침입해 왔으나, 김시민 장군을 위시한 진주 관군 3,800명이 왜군을 물리쳐 육지 관군이 최초로 승리하게 되지요. 안타깝게도 김시민 장군은 적 탄환에 맞아 진주성 전투 승리후 투병과정에서 돌아가십니다.

진주성 북문인 공북문에 들어서면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충무공 하면 이순신 장군이 떠오르는데 우리나라에서 충무공이란 시호를 받으신 분은 총 9분이나 됩니다.)

제2차 진주성 전투는 1차 패배의 복수로 10만 대군이 다음해인 1593년 6월 진주성을 침입해 왔으나, 호남의병들의 결사항전으로 왜군은 승리는 했지만 진격을 멈추게 됩니다.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황진 등 교과서엔 안나오는 이름이라 생소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호남의병을 대표하는 분들이지요. 김시민 장군과 더불어 호남의병들은 진주성 안의 창렬사에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을 이름인 논개의 이야기가 진주성에 있습니다.

진주성의 정문 격인 촉석문을 들어서면 거대한 2층 누각인 촉석루가 보입니다. 성 안의 지휘소 역할을 했던 남장대로서 기능도 했고, 평상시엔 연회 장소로도 쓰였으며, 과거시험장으로까지 활용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꽤 큰 건물입니다.

촉석루(矗石樓). 우거질 촉(矗)에 돌 석(石)입니다.

남강을 앞에 두고 우뚝 솟아오른 촉석루에 오릅니다. 안내 설명글에 CNN에서 지정한 한국에서 반드시 봐야할 볼거리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그런 자랑을 떠나서도 다른 누각에선 볼 수 없는 느낌이 있습니다. 강변에 있기에 더 그러한 듯 합니다.

촉석루 앞 강가에 내려오면 의암(義巖)이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습니다. 사람 10명 정도는 설 수 있는 넓이인데, 강변에서 물을 건너가야 하는 바위입니다. 임란 전에는 위험한 바위란 의미로 '위암(危巖)'이라고 불리다 논개의 충절을 기리면서 '의암'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논개 이야기는 기록보다는 구전이 더 생생합니다. 논개는 주씨 양반의 딸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삼촌이 어머니와 논개를 부자집에 팔아버려요. 이를 알고 도망을 갔는데 돈을 주고 산 사람이 관아에 신고를 했고, 관아에서는 이러저러한 사정을 듣고 논개 모녀를 풀어주게 하지요. 헌데 갈 데가 없어요. 그래서 당시 사또 부인이 병들어 있었는데 그 수발을 들게 했고, 사또 부인이 돌아가시자, 사또 부인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 그 사또가 바로 화순 출신 최경회 장군입니다.

논개를 말하자면 최경회 장군이 언급되고 그리고 우린 임진왜란 호남의병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20일 만에 한양을 빼앗기고, 임금은 국경 끝 의주까지 피난을 갑니다. 전라도 의병이 일어납니다. 고경명으로 대표되는 호남의병들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관문인 금산싸움에서 전사하고, 이에 대한 복수로 이듬해 1593년 김천일,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 최경회 등이 경상도와 전라도의 관문인 진주성으로 향합니다.

항전하지만 10만 왜군 세력에 결국엔 진주성에서 패하고 이때 최경회를 비롯한 장수들은 살아서의 치욕보다는 죽음을 선택하여 남강에 투신합니다.

왜장들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진주성의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는데 논개는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생으로 위장하여 참석하고, 그녀는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가락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떨어져 적장과 함께 죽었다는 이야기. 떨어져 죽은 바위가 의암이고, 200여년이 지난 훗날 의암 옆에 사당인 의기사를 세워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구전은 출신부터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만, 기록은 미미합니다. 논개에 대한 기록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광해군때인 1621년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 (於于野談)'이라는 책에 전해집니다. '계사년에 기병한 의병이 싸우다가 성은 함락되고 백성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진주관기 논개가 왜장을 안고 바위에서 뛰어 내렸다'는 짧은 기록이 보이고, 이후 정약용이 쓴 기록에도 논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보입니다. 일명의 아녀자가 그러할진대 관군과 사대부는 무얼했는가 라는 투로 당시 지식인을 질타하는 목적으로 인용됩니다.

2017년 올해는 정유년입니다.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등의 간지 순서로 년도를 말하자면 임진년이나 병자년 등 역사적인 사건이 있는 간지 년도는 입에 잘 달라 붙습니다.

올해 2017년이 정유년이고, 앞선 정유년은 1957년, 더 앞선 정유년은 1897년 ... 하는 식으로 정유년을 찾아보니 가장 대표적인 정유년이 임진왜란과 함께 말해지는 정유재란의 1597년입니다. 올해가 임진왜란과 함께 언급되는 정유재란이 일어난지 420년 60갑자가 7번째 돌아온 해이지요.

올해 정유년은 정유재란 7주갑 기념이라며 그 문구로 광고삼는 행사 안내를 보게 됩니다.

얼마 전 해남과 진도에서 펼쳐진 명량축제에서도 7주갑 기념이라는 타이틀로 이런 저런 행사가 성대히 진행되었고, 진주성 안의 진주박물관에선 정유재란이라는 주제로 전시중입니다.

그리고 이곳 진주에서 '진주남강유등축제'가 펼쳐집니다. 유등(流燈)은 물에 흘러가는 등을 말하며 임진왜란 진주성 싸움당시 성 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신수단으로도 사용했다고 하니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지요. 불밝히는 등 축제이기에 밤에 장관을 이루겠지만, 낮동안도 밤 축제에 사용되었던 조영물들이 인상적입니다.

낮이든 밤이든 진주성을 이리저리 돌아보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그리고 논개와 호남의병의 흔적을 돌아본다면 의미깊은 여행이 될 것입니다. 저는 내일 '동행' 답사 친구들과 함께 떠날 계획입니다.
/체험학습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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