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업이 역사여행입니다. 2001년부터 유적지 안내를 시작했으니 20년이 다 되어가고, 작년부턴 역사여행팀과 우리나라를 넘어 중국도 몇차례 다녀오고, 앞으로는 멀리 유럽까지도 계획중이니 역사여행 무대가 많이 넓어지고 있지요.

긴 시간 동안 점차 권역을 넓혀가고 있는 역사여행 안내자로서의 역할- 그 시작이 순천 송광사입니다.

문화유산해설사로 맨처음 송광사에서 소임을 맡아 해설을 시작했습니다. 안내해설을 반복하다 보니 더 깊게 보고 싶은 것이 생겨나고 그런 꺼리들을 모아 문화센터 등에 강의를 만들어 유적지 해설이 실내 강의로 이어졌고, 강의를 들었던 인연이 이어져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절에서 만나는 우리문화'라는 책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모 방송에서 남도여행 관련 이야기도 반 년 정도 진행했으며, 요즘은 역사여행 이야기로 이렇게 독자 여러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강의며 출판, 방송, 글쓰기 등 문화유산과 관련된 제 활동의 고향같은 곳, 오늘은 송광사를 찾아가겠습니다.





송광사 매표소가 있는 입구 들어서서 이십여 미터 더 오르면 커다란 돌기둥을 만납니다. 큼지막하게 몇 글자가 새겨져 있지요.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

우리가 들어가는 사찰인 송광사를 소개하는 문패인 셈인데, 여기 뿐만 아니라 일주문에도, 송광사 버스에도, 송광사 달력에도 이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먼저 앞 네글자인 '승보종찰'이라는 말 풀이부터 시작합니다.

비슷비슷한 무리들 중에서 셋을 꼽아 3대 뭐뭐니 하면서 구분지어 말을 하지요. 우리나라의 수많은 절 중에서도 셋을 꼽아 3대 사찰로 말합니다.

3대 사찰은 종교로서 불교가 갖고 있는 세가지 요소인 불교를 만든(시작된) 분, 그가 말한 가르침, 그가 말한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불교에는 이 셋을 세 가지 보배로운 것이라고 하여 석 삼(三)에 보배 보(寶)를 써서 삼보라고 합니다.

불교를 만드신 부처님이 불보이고, 그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 법보이고, 그 말씀인 법을 공부하고 따르는 이가 승보로서 삼보가 구성됩니다. 이 삼보가 사찰에 적용되어 3대 사찰을 꼽는 것이지요.

송광사는 승보로서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이가 가장 많은 승보사찰입니다. 참고로 불보사찰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가 모셔진 양산 통도사이고, 법보사찰은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합천 해인사입니다.

그냥 승보사찰이라고 하지 않고 승보종찰이라고 하는 것은 장남이 사는 집을 종가라고 하는 것처럼 여기는 사찰에 있어서 장남이 사는 종가 역할을 한다고 하여 종찰이라고 부르게 된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삼보사찰이 송광사, 통도사, 해인사라고 했지요. 이러한 삼보사찰은 각각 건물 구성에도 특이성이 보이는데 통도사는 대웅전에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으며, 해인사는 대웅전 뒤편 언덕에 대장경을 모신 법보전이 있고, 승보사찰인 송광사는 대웅전 뒤편 언덕에 스님들의 수행처와 스님들을 모시는 건물이 있습니다.

승보종찰의 핵심 건물인 국사전은 조선 초기 건물입니다. 국사를 모시는 건물이고요. 국사는 나라 국(國), 스승 사(師)로 국가 최고의 스님에게 내리는 칭호입니다. 12세기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고려시대 - 국교가 불교인 분위기에 국사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거의 왕권에 버금가는 지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보조국사 지눌 이후 내리 16분의 국사가 바로 송광사에서 배출되게 됩니다. 이런 연유가 송광사가 승보종찰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그 분들 영정을 모셔놓은 곳이 바로 국사전입니다.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찰은 일주문(절의 첫 출입문)에 절 이름과 함께 그 절이 소재한 산 이름을 함께 써 넣습니다.

대부분의 절이 믿음직한 산의 품 안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외래 신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알기 전에 산신을 숭배하고 모셨기에 절 이름 앞에 산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불교가 종교적인 기능을 발휘하려면 지금 마을마다 있는 교회처럼 사람들의 접근이 쉬운 곳에 있어야 할 텐데 인가에서 떨어진 산 속에 대부분의 절이 있다는 것이 의문스러운 점입니다.

절 입구의 소개 안내판을 읽어보면 천 년 전에 세워졌다느니 하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을 보면, 처음에 터를 잡을 때부터 산 속에 절을 지었다는 말인데 왜 산 속에 절을 지었을까?

천년 전 통일신라, 그리고 더 앞선 삼국이 경쟁하던 시절에 불교는 왕권과 긴밀히 연결을 맺었고, 왕권을 유지하는 정신적 버팀목이 됩니다. 학문으로서의 불교 또한 국가 권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죠.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에는 골품제도라는 선천적인 신분제도가 있었습니다. 부모 양쪽이 왕족인 신분과 한쪽이 왕족인 신분 그리고 중간계층인 6두품 세력이 있었는데, 그들은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더 높은 권력을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6두품 중 실력이 있으나 신분에 불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신라에서는 더 큰 인물이 될 수 없음을 느껴 당시 국제적으로 최고의 문명을 갖고 있는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갑니다. 그 유학생들이 배워온 학문은 신라에서 익혔던 것과는 색다른 학문이었을 겁니다.

그들이 선진학문을 배워 신라로 되돌아 와 그들의 새로운 사상을 얘기하지만, 신라 땅에서 이미 권력을 갖고 있는 세력들은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배워 온 선진학문이란 당시 중국에서 유행한 선종이라는 불교 공부방법으로 깨달은 자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이 주가 됩니다.

깨달은 자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왕=부처"라는 기존의 정치불교 사상에서 벗어나, 지방의 힘 있는 세력들도 왕이 될 수 있다는 혁명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중앙에서는 배척받지만, 지방세력들에겐 세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새로운 사상가들은 중앙권력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지방으로 내려가 지방 권력자들의 사상적인 협력자가 됩니다.

이들이 머무를 터를 잡는데, 그냥 잡지 않고 풍수이론을 적용해 명당자리를 잡았던 것이 지금까지도 산속에 절이 남게 된 것입니다. 학문으로 익힌 좋은 자리가 현실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지금도 절은 종교적인 기능과 더불어 관광명승지 역할도 하게 됩니다.

산 속에 절이 위치한 또 하나의 이유는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면서 국가이념이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게 됩니다. 이때 당시 사상계를 지배했던 세력인 승려들이 그 지지기반을 잃고 산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어떠한 행동이 반복되어 오래되면 습관이 되는 것처럼 역사적인 원인으로 산속으로 들어간 절이 이주하지 않고 계속 있다 보니, 우리 생각 속에는 절이라고 하면 무조건 산속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일주문에 적힌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라는 문구만 가지고도 할 얘기가 많네요.

매주 전국을 다니다 보니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는 제안을 자주 받습니다. 10월말은 당연 단풍과 함께라야 여행 이벤트가 되겠지요. 10월 말이면 온 천지가 울긋불긋이라 어디든 좋겠지만, 사람이 많으면 또 그 맛이 떨어지는지라 제가 전남매일 독자분들께만 알려드립니다.

송광사를 가시구요. 송광사 오르는 길 왼쪽에 '불일암'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올라보십시오. 불일암은 법정스님이 머물렀던 곳이고, 스님의 수목장 장소이기도 한 곳입니다.

아. 법정스님이 누구냐고요?

이런…. 오늘 글은 여기까지 원고 분량이 다 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