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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신미양요·운요호사건 등 역사의 현장

해안선 톱니바퀴 모양으로 옛 군사기지 조성
네번째로 큰 섬…세계유산 고인돌 볼 수 있어
<12>강화도

2017년 12월 07일(목) 17:30
광성보 안에는 산책길이 이어져있는데 군데 군데 광성돈대, 손돌돈대, 용두돈대라는 시설들이 있다. 민족항전유적지란 이름의 돌비석과 함께 70년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진은 용두돈대.
초지진








광성보입구 안해루










역사여행은 지식충전을 위한 자기만족의 목적도 있지만, 아이들과 동행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은 학습의 연장선에서 영어나 수학학원 보내는 것처럼 역사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 떠나기도 합니다. 공부를 위한 여행이라….

석기, 청동기, 삼한 삼국시대 지나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넘어오는 동안 가장 헷갈리는 대목, 그래서 공부가 힘들어지는 대목. 역사공부 지도를 해보면 병인양요부터 시작된 내외 사건들에서 아이들은 가장 지치고 힘들어 합니다. 그 부분을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어디가 있을까?

우리지역과 가깝게는 동학혁명(혁명이라고 불러야하나 운동이라 불러야하나 아니면 전쟁이라 불러야하나, 또한 동학을 앞에 넣어야 하나 연도인 갑오를 넣어야 하나는 여전히 논쟁중입니다)을 보여주는 정읍이나 서울의 운현궁부터 시작해 인사동 코스, 아니면 저 멀리 강화도가 이런저런 사건으로 꼬인 조선말기 어려운 역사공부의 현장이 됩니다.

오늘은 역사공부하면서 가장 헷갈리는 대목중 하나인 병인양요, 신미양요, 강화도조약의 현장인 강화도로 떠나겠습니다.



강화도. 섬이지요. 우리나라에 3,000여 개의 섬 중 가장 큰 섬이 제주도이고 강화도는 거제도, 진도에 이어 네 번째 크기의 섬입니다. 원래는 남해가 네 번째였다고 하는데 간척사업을 통해 섬의 면적이 넓어졌다고 합니다.

강화도를 말할 때 앞에 붙이는 수식어가 있어요. '역사의 섬' 강화도. 그만큼 역사적인 꺼리가 많다는 것이겠지요.

강화도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생긴 고인돌이 있습니다. 고인돌에 '잘 생겼다'라는 말을 붙여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남도쪽 고인돌은 대부분 커다란 바위 덩어리만 보이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탁자 모양처럼 다리가 있고 그 위에 거대한 바위가 올려져 있습니다. 강화 부근리고인돌이 바로 그 고인돌입니다. 우리가 고인돌 하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형상이지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은 화순과 고창, 그리고 강화도의 고인돌이 함께 등록되어 있습니다.

강화도는 삼국시대땐 고구려와 백제의 경계지역으로 주인이 뒤바뀌는 전쟁이 있었던 곳입니다. 고려시대엔 40년간 임시 도읍지였고, 조선 또한 청나라 침입때 왕이 옮겨가려 했습니다. 이후 서구 열강들이 조선의 문호를 열기위해 강화도를 통해 들어옵니다. 그때의 사건들이 병인양요니 신미양요니 하는 이름으로 불러집니다.

병인양요, 1866년 프랑스가 프랑스신부와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을 빌미로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

신미양요. 1871년 미국이 자기네 상선 제너럴셔면호를 불태운 책임을 물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

강화도 조약. 1876년 일본이 운요호사건을 빌미로 조선과 맺은 불평등 조약.

왜 강화도일까? 광주에서 출발해 강화도를 가려면 보통은 서울을 통과해 들어가게 됩니다. 서울에서 한강을 만나, 도로 오른편 강 물줄기 따라 김포를 거쳐 강화도에 들어서지요.

옛적 뱃길은 지금의 고속도로 역할을 했습니다. 한강의 입구인 강화도에서 배로 조선의 궁성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고, 우리는 그 한강의 입구를 지켜내야 하고, 외부 세력들은 그 물길로 들어오려고 했었기에 조선말의 사건들은 강화도였던 것이지요.

강화도에는 해안선을 톱니바퀴 모양으로 돌려서 옛 군사기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용두돈대 하는 식으로 진, 보, 돈대로 불리는 군사시설물들입니다.

5개의 진, 7개의 보, 53개의 돈대. 최근 '남한산성'이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병자호란으로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황제에게 항복의식을 치르고, 두 왕자는 청나라로 볼모로 끌려갑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귀국해 왕위에 오른 이가 봉림대군으로 바로 효종임금입니다. 효종때 강화도가 요새화 됩니다. 그래서 진이나 보 등을 소개하는 유적 안내판에 효종 몇 년에 만들어졌다는 설명글들이 많이 보입니다.

강화도가 육지와 연결된 두 개의 다리인 강화대교와 초지대교중 아래쪽의 초지대교를 통해 강화도에 들어서고 초지진을 먼저 찾아 갑니다.

아이들 사회교과서에 소개되는 초지진엔 신미양요와 운요호사건 당시 포탄 맞은 소나무가 하얀 페인트로 상처를 가리키며 서 있습니다.

이어 인근 광성보를 찾아갑니다. 140년 전 미국의 침입인 신미양요의 현장입니다. 미군 세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우리 조선군은 수장인 어재연 장군을 비롯 350명 전원 목숨을 잃었던 현장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51명은 신원을 확인할 길이 없어 모으고 다시 흩어져 7개의 무덤으로 남겨져 있는 곳입니다.

광성보 안에는 산책길이 이어져있는데 군데 군데 광성돈대, 손돌돈대, 용두돈대라는 시설들이 있습니다. 민족항전유적지란 이름의 돌비석과 함께 70년대 대한민국 대통령 각하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토마스 듀버네이라는 미국인 이야기로 해설을 이어갑니다. 미국에서 한국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어 한국에 들어와 한국의 역사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분이지요. 한국의 활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병기로서의 활이 언제까지 역할을 했을까를 연구하던중 신미양요를 보게 되었고, 자기네 조국인 미국이 승리기념으로 신미양요 현장인 강화도에서 장수깃발을 빼앗아 미국 해군사관학교에 보관중인 것을 알게 됩니다.

장수 수(帥)자가 새겨진 '수자기'이지요. 수자기 반환을 위해 듀버네이 교수는 당시의 클린턴 대통령과 후임인 부시 대통령, 그리고 퇴임한 카터 전대통령에게 수차례 장수기 반환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의 민간단체와 관이 함께 지속적인 노력으로 140년 전에 빼앗긴 수자기가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군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지금은 강화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반도엔 993회의 외침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까지를 침략으로 규정했는지 그 기준은 알 수 없지만 잦은 외침이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대비는 없었을까요?

조선말기 고종임금때 병인양요가 있었고 이어 신미양요, 그리고 일본의 운요호사건으로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이 맺어지지요. 설마 나라가 망할까 라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툭하면 서해안에 모습을 드러내는 열강의 군함. 조선에서 황제의 나라로 이름을 바꾼 대한제국의 황제는 제대로 된 군함이 갖고 싶었습니다.

1903년 4월에 일본 미쓰이 물산으로부터 군함을 납품 받습니다. 고종이 직접 이름을 내립니다. 양무(揚武)호. 무를 높이 날려라. 그런데 이 배가 원래는 영국의 상선이었고, 일본이 이를 25만원에 사 와 석탄운반선으로 사용하던 중 대한제국이 군함을 구입한다고 하여 그럴싸하게 군함으로 포장해 55만원에 대한제국에 팝니다.

군함으로 제대로 항해 한번 못해보고 러일전쟁때는 일본에서 빌려가고, 이후 실습용으로 사용타가 1909년 일본에 4만원에 되팝니다. 1960년 언제쯤 싱가포르 인근 해역에서 침몰되었다고 전해지는 대한제국의 첫 군함인 양무호.

고종이 계약체결을 위해 직접 일본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제국의 관리는 일행들과 함께 직접 배를 보고 계약을 체결하고 들여왔을 것입니다. 군함 양무호가 들어오고 7년후 대한제국은 세계지도에서 이름이 없어집니다.

백년이 지난 지금 방위산업과 관련하여 각종 비리들이 언론에 오르내립니다. 저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대한제국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역사여행에서는 이런 바람을 동행한 분들과 함께 합니다.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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