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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그 넓고 깊은 숲 (48)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안부

2017년 12월 07일(목) 18:12
깜깜한 새벽에 출발한 기차는 찬 공기를 가르면서 달렸다. 아무도 앉지 않은 마주보는 의자에 앉은 나는 조금은 편안한 자세로 공간의 여유를 한껏 누리며 눈을 감았다. 회오리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이내 잠이 들어버린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잠깐 잠깐 실눈을 떠 어디인지 확인을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어디 만큼 왔을까?" 이 기차는 내 목적지를 지나 더 많이 가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또 다시 눈을 떠 보니 환하게 밝아오는 기차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온통 하얀 눈이 산과 들 그리고 어느 댁 지붕까지 살짝 덮은 풍경에 포근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위로 밝아오는 햇빛이 나에게 안부를 묻듯 일어나라는 듯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정신없이 기차표를 예매하고 타고 내리고 다시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지난 시간들에 지쳤고 또 지침에 색을 덧칠하고 있는 중인 요즘이다. 그런 내게 하얀 눈빛 세상은 그리고 발갛게 오르는 태양은 세상이 건네는 안부였고 위로였다.

바깥 풍경에 빠져 잠은 달아났고 그렇게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두 시간도 못되는 거리지만 내게는 일주일의 거리였고 일 년의 거리였고 이 년의 거리다.

그 거리를 생각해 보니 판소리 흥보가에 나오는 제비는 작은 날개로 그 먼 강남에서 흥보네 집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을지 궁금해진다. 제비 몸길이가 보통 여자의 한 뼘 정도인 18cm 정도라고 한다. 가을에 강남으로 갔던 제비는 이듬해 3월 3일 삼짇날에 돌아오는데 제비가 새끼를 많이 치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기다려지는 새이고 사람들이 친근하게 생각하는 새이다.

제비의 다친 다리를 고쳐주고 도움을 받은 제비가 강남을 갔다가 보은표 박씨를 물고 와 흥보에게 줘 가난한 흥보네가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 또 노래로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이 제비가 강남에 갔다가 흥보네 집까지 오는 여정을 그린 노래가 바로 제비노정기 대목이다.

이 때 흥보네로 오는 제비는 중국의 명승지를 지나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흥보네 집에 당도한 제비는 기특하게도 흥보에게 안부를 건넨다.

"지지지지 주지주지…." 이렇게 제비말로 안부를 건네는데 흥보는 그 말을 또 알아듣고는 "흥보가 보고서 좋아라고 너 왔느냐 너 왔느냐 반갑다 내 제비야 어디를 갔다가 이제 와…."라며 제비를 반긴다.

흥보를 만나 인사까지 한 제비는 보은표 박씨를 흥보에게 떨어뜨려 주고는 마치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진 듯 시크하게 날아간다. 착한 일을 해 흥보가 그 보은표 박씨를 통해 부자가 된 것 보다도 내게는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입에 보은표 박씨를 애지중지 물과 왔을 제비가 대견해 판소리 흥보가 가운데 이 제비노정기 대목이 감동을 준다. 게다가 제비말로 안부까지 건네고 그것을 또 알아듣고 반기는 흥보까지….

근래 읽었던 한동일 신부가 쓴 책을 보니 로마사람들은 편지를 쓸 때 이 문구를 늘 붙인다고 한다. '당신이 편안하다면, 저도 잘 있습니다.' 제비가 건넨 안부가 이런 것이었을까? 자신이 중심이 아닌 타인의 편에서 생각해 주는 것….

눈이 녹아 검은 흙물처럼 사라지듯 인사도 안부도 남에 대한 배려도 사라진 것은 아닌지…. 자취를 감춰버리는 제비가 강남에 가서 다시 오지 않는 그래서 제비가 보이지 않는 그런 것은 아닌지….
/김은하 광주국악방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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