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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후 교수의 자동차로 유럽여행<9>어디나 정감가는 낭만의 도시 노르웨이 크리스티안산

조선·금속·목재·식품·양조 공업 활발
해안 모래로 만든 아이디어 조형물
인공미 보이지 않는 자연형 계류장·요트

2018년 01월 04일(목) 17:45
븍유럷 특유의 자연형 요트계류장.
크루즈 4일째인 7월 5일, 세 번째로 노르웨이 육지에 기항했다. 크리스티안산은 인구 7만의 아담한 도시로서 전날 기항했던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의 1/3 밖에 안되지만 그 규모는 작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도시는 노르웨이 베스트아그데르 주의 주도이며 덴마크를 남쪽으로 바라보는 스카게라크 해협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지명의 의미는 '크리스티안 왕의 모래'라는 뜻이다. 즉, 노르웨이가 기독교 국가라고는 하지만 크리스천과는 무관한 이름이다.

1641년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가 건설하였고 북위도 지방이지만 부동항(不凍港)으로서 19세기부터 발트해 입구의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크리스티안산은 노르웨이의 최남단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요충지이며 겨울에도 얼어붙지 않는 곳이다.

크리스티아산은 덴마크 왕이 입지적으로 요지인 곳에 건설했다고 하지만 당시엔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한 나라였다고 하니 이상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건너편에 있는 덴마크 반도 북쪽 끝에 위치한 히르트샬스 도시와 페리선이 수시로 오가고 있으니 두 나라가 현대에 있어서도 먼 나라가 결코 아니다. 양국 모두 국기에 십자가가 삽입되어 있는 것이나 화폐단위도 같은 명칭을 쓰고 있는 것도 이웃사촌을 명확히 말해준다.

화폐가치도 큰 차이가 없고 작은 상점에서 어느 나라 돈을 꺼내도 다 알아서 받아준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양국 화폐를 다 환전해 준비했지만 이들 국가에서 화폐사용에서 제한을 두지 않으니 과부족을 적절히 처리할 수 있었다. 즉, 유로 화폐가 개입되지 않아도 상거래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한편 이 도시는 1965년에는 시의 경계를 확장하여 인근 마을을 합병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주, 시군, 읍이 원래 있는 그대로의 경계를 철저히 중시하지만 유럽에서는 경계를 허물고 살아 왔거나 국경의 변경이 빈발하였기 때문에 도시의 영역확장이 우리네의 경우처럼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는 모양이다.

하여간 조선, 금속과 제련, 목재와 펄트, 그리고 식품 및 양조 등의 공업이 활발하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방인으로서 잘 가꿔진 시가지와 도시의 자연환경을 둘러볼 때는 그 어디에도 공업지역의 냄새는 전혀 풍기지 않고 전원도시 또는 생태도시의 면모만 드러났다.

이 도시 주변은 피요르드 지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안선이 복잡해 뭍과 어우러진 해변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요트 계류장도 인공미를 보이지 않고 자연형 계류장을 이루고 있고 요트가 여기저기 자연스레 정박해 있었다. 우리나라의 서남해안의 갯펄해안도 아니고 동해안의 일직선 해안도 아니었다.

이런 해안선 덕분에 해안에 붙어서 조성되어 있는 공원도 운치를 더했고 수변공원으로서의 매력도도 뛰어났다. 해변의 공원이 참으로 아기자기하고 그 곳에 배치된 조형물도 관광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고 매력적이었다. 추운 지방에서는 얼음을 얼려 설빙축제로 활용한 유명한 도시가 일본이나 중국에는 있는데 이 곳에서는 해안의 고운 모래를 굳혀 해안공안에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다. 사소한 아이디어이지만 참으로 기발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해안가를 따라 어디에서나 많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여유와 낭만을 누리는 평온한 일상이 참 부러웠다. 어느 풀밭 나무사이에 줄을 매놓고 줄타기를 하는 장년의 한 시민은 줄타기와 손으로 공던지기 놀이를 혼자서 즐기고 있었다. 말을 붙이니 그는 더욱 신이났다. 지나가는 행인과도 얘기를 주고 받았는데 미국 콜로라도 스피링스에서 온 중년여인도 부모중 하나가 노르웨이계라서 이곳에 살고 있었다. 로키산맥을 끼고 있는 콜로라도도 명승지인데 이 곳에 더욱 정을 붙인다? 요산요수라더니 좋은 것도 그 성질이 서로 다를 수 있겠다...

우리가 기항한 날은 청명한 날이라 해변이나 잔디나 어디에서든지 일광욕하는 인파가 넘쳐났다. 주중인데도 참으로 여유가 넘쳐났다.

한편 시내 길거리를 거닐다가 복합건물 입구로 들어가 보았는데 그 곳에 몇 세대가 단층이나 2층을 지어 모여살고 있었다. 그런 건축구조가 흔하다고 했다. 이방인으로서 겉만 보고 지나갈 일은 아니지...

이 도시의 대표 관광지는 요새로 쓰였던 해안가 대포박물관과 고딕식 대성당을 꼽지만 우리가 방문하여 수많은 사진을 찍었음에도 여기에서는 생략해야겠다. 대포박물관은 역사적 함의는 있지만 눈요기가 되지 않았다. 아울러 장엄하고 화려한 대성당은 유럽 어느 대도시에서나 흔하니까 그 중의 하나로만 기억될 뿐이었다.
/동신대 호텔관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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