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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익산의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왕궁·왕릉·사찰·산성 4가지 충족 古都
왕궁리 5층석탑, 궁궐급 건물 있던 곳
1989년부터 유적 발굴 아직도 진행중
最古·最大 미륵사지석탑 올해 재탄생

2018년 02월 01일(목) 18:08
궁궐급 규모의 건물이 쓰임새가 사찰로 바뀌고, 거기에 탑이 들어선 것이 왕궁리 5층 석탑이다. 이 일대가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미륵사지 해체 보수공사.








왕궁리 유적에서는 화장실 뒤처리용 도구도 발견된다. 백제 화장실 모형.










2015년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경주의 신라유적, 평양의 고구려 유적과 더불어 삼국시대 삼국의 자취가 모두 세계의 역사유산으로 인정된 것이지요. 고구려는 도읍지였던 평양에 있는 고분군, 신라는 역시 도읍지였던 경주의 유적들, 백제는 세 지역의 유적들이 세계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 유적이 있는 세 지역은 어디일까요?

우리가 백제 역사여행을 계획한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공주와 부여입니다. 공주의 공산성이나 무령왕릉, 부여의 낙화암과 정림사지 등이 머릿속에 떠오르잖아요. 그리고 묻히고 잊혀진 곳으로 서울의 풍납토성 몽촌토성까지를 백제의 유적 역사여행으로 찾기도 합니다.

백제 역사를 얘기할 때도 한성백제, 웅진백제, 사비백제로 나누어 한성인 서울, 웅진인 공주, 사비인 부여에 도읍이 있었던 때로 시기 구분을 합니다. 백제가 전체 678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첫 정착지인 한성 서울에서 5백년, 그리고 피난살이 웅진 공주 70년, 다시 재도약을 위한 사비 천도로 부여 120년을 잡습니다.

그래서 백제역사하면 공주와 부여 그리고 서울 정도로 생각하게 되는데,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은 공주와 부여 그리고 익산 지역이 등록되었습니다. 오늘은 익산의 세계유산 -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찾아가겠습니다.



우리나라에 '고도 보존에 관한 특별법'이라고 있습니다. 고대국가 도읍지로 오래 지속되었던 고도(古都)는 과거의 문화유적이 복합적으로 산재해 있어 문화적 보고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러한 고도의 역사적 문화환경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고자 도입된 제도로 해당된 고도에서는 건축물을 올리거나 도로 등의 형태 변화시에는 해당 관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한 고도보존에 관한 특별법에 해당되는 도시가 우리나라에 네 곳 - 경주, 공주, 부여 그리고 익산 일부 지역입니다.

역시나 익산은 약간 의외이지요. 옛 도읍지인 고도로 인정이 되려면 4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왕궁, 왕릉, 사찰, 산성입니다. 익산에 이 네 조건이 충족된다는 얘기입니다.

익산에 왕궁이 있었나?

익산에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왕궁리 역사유적지구가 있습니다.

왕궁리 5층 석탑이 있거든요. 석탑과 그 주위 조사를 했습니다. '탑이 있으니 절이 있었겠지'라며 발굴을 시작했는데, 석탑이 있기 전에 더 큰 목탑이 있었고, 다시 목탑 자리 주위를 조사했더니 탑 좌우로 거대한 건물터가 발견되고, 이어 건물 뒤편으로 언덕 비탈에 계단식으로 층을 내 건물을 차곡차곡 올렸던 흔적과 후원까지 발견됩니다.

전체적인 틀은 약간 틀어진 긴 네모꼴로 축구장 20개의 크기, 궁궐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궁궐급 규모의 건물이 언젠가 쓰임새가 사찰로 바뀌고, 거기에 탑이 들어선 거지요. 그 탑이 왕궁리 5층 석탑이며 이 일대가 세계유산으로 등록된겁니다.

'왕궁'이었다면 어느 시대 누가 있었을까? 백제 때인지 통일신라 때인지, 고려 때인지 이 또한 명확하지 않아 축조 연대설은 의견이 분분하고요, 멀리로는 고조선 준왕이 남하해 마한세력을 형성했다는 설, 고구려 유민이 터전을 잡았다는 설 그리고 가장 설득력을 갖고 있는 백제 무왕과의 연계설이 있습니다.

백제 말기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무왕. 무왕이 부여에서 익산으로 천도를 실행했는지는 미지수지만, 그와 관련된 기록과 전설들은 곳곳에 남겨져 있습니다.

1989년 시작된 유적 발굴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그러면서 에피소드도 많이 나오는데, 유적전시관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디오라마가 설치되어 있어 일행들과 함께면 꼭 소개를 하고 갑니다.

건물 뒤편 발굴하며 땅을 파내려가는데 거름냄새가 나더랍니다. 과일창고로 생각하며 과일씨라도 건질까 싶어 흙을 하나하나 조심히 쓸어내렸죠. 나중에 거기 흙에서 나온 성분을 조사했더니 기생충 알이 나옵니다. 화장실이었던 거죠. 다른 곳에서도 화장실 유구는 몇 군데 나오지만, 왕궁리 유적에서는 화장실 뒤처리용 도구도 발견됩니다.

당시 화장실에서 뒤처리는 어떻게 했을까? 나무를 30센티 자처럼 깎아 동그란 연필꽂이 같은 통에 넣어 두었습니다. 뒤처리용 나무도구이지요. 유적 전시관에 변을 보고 있는 사람과 그 앞에 백제 화장지가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인상적이게 보는 부분이지요.

익산의 왕궁리 5층 석탑 일대 그리고 익산의 또 한 곳이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륵사지.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이라고 전해지는 미륵사지 석탑이 있는 곳입니다.

미륵사 이야기는 삼국유사 기록으로도 전해집니다.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 있잖아요. 마를 파는 서동이가 경주에 들어가 노래를 만들어 선화공주와 서동이가 연애하는 사이라네 라는 것을 퍼뜨려 결국엔 둘이 결혼을 하고, 서동이는 백제 30대 무왕이 된다는 이야기.

어느 날 행차중 미륵불이 나타나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라고 하여 미륵사를 창건했다는 미륵사지는 선화공주 이야기를 간직했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 남아있던 미륵사지 서쪽 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금제사리봉영기'가 발견됩니다. 사리봉영기는 탑 안에 사리를 넣으면서 함께 그 일련의 과정을 글로 써 넣은 기록물입니다. 금으로 만들어져 금제사리봉영기라고 부릅니다. 발견된 그 기록에 선화공주의 이름은 없고 백제 사택적덕의 따님이신 왕비께서 만들었다고 나옵니다.

실물로 나온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보다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미륵사와 선화공주의 연결고리, 삼국유사에 실린 서동과의 이야기가 힘을 잃게 되죠. 그래서 아쉬워요. 그곳의 해설사는 사리봉영기 발견이후 선화공주 이야기가 없었다는 아쉬움을 기어이 놓질 못합니다. 미륵사지에 탑이 이것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륵사는 3탑 3금당 형식으로 탑이 두 개는 더 있었다고요. 그중에 하나는 선화공주 이야기가 있었을 것도 같다는.

저 또한 스토리텔러이고, 어쩔땐 과감히 스토리메이커가 되다보니 한마디 덧붙입니다. 아니다. 삼국유사의 이야기처럼 선화공주일 수도 있다. 그 선화공주가 살았을 때 조성계획을 갖던 탑이 왕비가 죽고 다시 새왕비인 사택적덕의 딸 때 완성이 되었다는.

안타깝게도 선화공주 이야기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천사백년전 백제왕국의 왕비가 왕의 평안함과 왕국의 안녕을 비는 내용으로 탑을 쌓고 절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와 최대(最大)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 일제강점기에 시멘트 보수 처리를 해놓은 상태로 남아있던걸 2001년부터 해체와 보존 작업을 거쳐 올해 재탄생됩니다.

세계유산 백제유적 미륵사지석탑. 이제 다시 세계유산으로 우뚝 그 자리에 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박상용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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