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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명소>근대문화역사 1· 2관
2018년 02월 14일(수) 10:40
서산동 일몰 목포대교 서산동 일대
<테마명소>근대문화역사 1· 2관



‘목포의 눈물’과 식민지 참상 훨훨 털어내며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나



온금동과 서산동일대 골목길 ‘시화골목길’로 재탄생

목원동 옥단이 길 초입, 고단한 삶의 애환 고스란히 남아

시민단체 “뉴타운식 개발 아닌 근대문화유산 활용가치 높여야”



글·사진 강경구컬럼니스트



2018년 시작되는 목포 도시재생 사업

목포는 2018년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총사업비 420억원을 새롭게 투입한다. 목포 중심시가지 ‘1897개항문화거리’ 조성을 위해 만호동 일원 29만㎡에는 총 250억(국비 150억, 시비 100억)을 사용하며, 기존의 원도심 건축문화자산을 충분히 활용하는 사업으로 3개 루트에 걸쳐 목포진 역사공원 정비 등 10여개의 사업까지를 2022년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두 번째 사업인 ‘바다를 품은 행복마을만들기’는 주거지 지원형 사업으로 서산동 일원 10만㎡에 총 170억(국비 100억, 시비 70억)을 투입해 기능복합형 공공임대주택 등 9개 사업을 2021년까지 추진한다는 것인데, ‘유달산개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바다를 품은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은 오랜 가난과 설움을 어루만지는 서민들을 위한 사업으로 해지는 서해안을 조망하며 가슴 뿌듯한 노을을 만끽할 수 있는 서민복지 증진 사업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기대된다.

목포는 2018년 전개될 도시재생사업 이전 이미 목포원도심 재생사업을 추진하여 왔었다. 목포가 지역구인 박지원 의원은 “지난 2014년 도시재생 선도지역 사업 선정이후 목원동 일대에 200억원(국비100억원) 투입 후 최근까지 약 800억원(국비 350억원)을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에 활용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으며, “앞으로 목포역세권(경제기반형)과 산정?대성지구 및 죽교지구(주거지 지원형), 용당1지구(일반근린형) 등의 도시재생사업 계획 지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일본영사관 건물과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목포 방문 첫날, 1900년 1월 착공하여 12월 완공한 일본영사관 건물인 목포근대문화역사 1관과 1921년 건립되어 당시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植株式會社) 목포지점으로 사용 되었던 2관을 관람했다. 1관에 있는 소녀상과 방공호 등에서는 식민지의 참상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2관은 놀랍게도 1980년 5.18당시 주동자들을 색출하여 갖은 고문을 자행했던 곳이란다.

목포근대문화역사관 1관(구 일본영사관)
하얗게 눈이 쌓인 유달산 오르는 길 초입 우뚝 서있는 노적봉 부근 노적봉예술공원에서 조망하는 목포는 오랜 역사를 살포시 혹은 무겁게 짓누르는 듯 하얀 눈이 와서인지 일명 ‘조선인 마을’까지도 그림처럼 아름답고 눈이 부셨다.

저 아래 새롭게 펼쳐져갈 도시재생의 단초가 되는 근대문화역사관 1관과 2관 외에도 일본인 가옥을 개조한 ‘행복이가득한집 카페’, 이훈동 정원, 그리고 멀리 겨울 빛을 반사하고 있는 바닷가 쪽과 산 사이에 있는 ‘아리랑고개’ 넘어 우측 온금동(다순구미)과 왼쪽 산동네인 서산동으로 막 피어오르는 노을빛이 정말 고왔다. 빼곡하게 도열해있는 작은 집들을 순식간에 장악하는 해질녘 따스한 일몰은 눈 내린 겨울 정취에 속절없이 빠져들게 한다. “서산에 해가 지고 있다.”



쌓인 눈의 무게가 버거운 이유를 서산동은 안다. 알록달록한 색깔을 덮어버린 삼일간의 폭설 속에 차들은 오르기를 주저하고 급경사에 난 빙판길은 위태롭다. 계단은 더욱 더 걸음을 지치게 한다. 저 골목길의 끝은 어디일까? 하늘로 향하는 길... 바다로 향하는 길... 정말 그토록 소망하던 가난의 끝은 아닐까?

온금동(다순구미)과 조선내화, 멀리 고하도와 용머리 목포대교, 오래된 일본식 가옥들을 품고 수백년을 말없이 지내온 서산동... 그리고 저쪽 금화동 뒷산 일명 러시아산까지...



역사교육 기능한 목포원도심 개발사업

이곳 유달산을 사이에 두고 목원동 골목길과 서산동 시화골목길 조성을 위해 지난 2015년부터 주민들과 시인, 화가 등이 모여 서산동, 온금동의 일상을 목판화 기법으로 제작해 골목길에 설치했으며, 2016년에는 ‘문화예술 꽃 피우다’를 주제로 시화골목길 추가 조성과 함께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18편의 시와 시인작가들의 온정이 가득 담긴 시어들을 모아 내노라 하는 화가들이 목판작업을 통해 시화골목길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이제 ‘목원동 골목길’에서 서산동 시화골목까지는 마을의 역사, 문화, 유적과 예술인, 옛 지명 등을 설명해줄 골목길 해설사 17명이 배치되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옥단이길’ 중심에 있는 목포오거리문화센터와 1949년 문을 연 목포 코롬방 제과점 등 원도심에 즐비하게 늘어서고 있는 상가들 앞으로 삼일간의 폭설이 만든 빙판길은 차와 사람이 엉켜 야단법석이었지만 일제 36년간의 통한과 6.25의 아픔, 끝없는 가난을 극복해온 남도땅 목포는 ‘눈물’의 설움을 한방에 날릴 도시재생 소식으로 ‘목마르뜨 거리, 구름다리 거리, 김우진 거리’ 등이 왁자지껄 관광객들로 붐빌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분위기다.

근대문화역사관 1관 앞 소녀상
도시 안 곳곳에 드리워진 일제의 만행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1910년 일본의 강제병합 이후 그들의 만행에 대한 실상을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목포다. 100년을 지나쳐 왔다. 식민지의 아픔은 가난으로 대물림되었다. 목포의 산, 유달산 아래 달동네 서산동... 가수 이난영이 부르는 ‘목포의 눈물’은 정말 피눈물이 날정도로 한국민을 아프게 했던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쓰라린 반성의 노래 가락이다.

일본의 착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벽돌공장과 근대문화역사관 2관안에 있는 큼직한 대형 금고, 제법 길게 파내려간 1호관 뒤편의 방공호 등을 돌며 제국주의의 횡포에 새삼 아쉬움만 더할 뿐이다.

유달산을 사이에 두고 즐비한 초가집과 잘 정돈된 일본인 마을로 나뉘어 극심한 천대와 핍박을 견뎌야 했던 잔혹한 시대... 유달산 끝자락에 위치한 서산동, 온금공원, 다시 목원동에서 서산동까지... 이곳은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가난한 달동네의 흔적을 여기저기 확인한다. 원도심에서 쫓겨난 조선인들이 찾아간 지금의 목원동에는 150여기의 무덤이 있었고, 다른 곳으로 이장한 뒤에야 그곳에 모여 살 수 있었다하니...

1920년대 목포의 상황은 “남쪽은 즐비하게 일본 사람들의 기와집이었고, 동북으로는 서양인의 집과 남녀학교, 예배당이 솟아 있었지만 유달산 밑으로는 돌 틈에 구멍만 빤히 뚫어진 도야지막 같은 초막들이 산을 덮어 완전한 빈민굴이었다”고 목포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 박화성(1904~1988)은 1925년 <추석전야(秋夕前夜)>에서 소개하고 있다.

“조금만 비가 와도 다닐 수 없었던 조선인의 마을들... 일본인의 화장터가 옆에 있었으나 그러려니 하며 살아야 했던 곳들이다.

근대문화역사관 1관 앞 소녀상
체류형 관광도시 구현 ‘백년한옥’

1897년 유진벨과 레이놀즈 선교사가 천막교회로 시작한 양동교회는 1910년 웅장한 모습으로 목포선교의 시원을 열었지만 일본의 억압을 피할 수는 없었다. 1926년 부임한 박연세 목사는 38년 30회기 전남노회 당시 신사참배에 굴복했지만, 42년 7월 주일 설교를 통해 “일본 천황도 심판 받는다”는 일명 천황모독죄로 투옥 44년 2월 15일 추운 감옥에서 동사했다. 이보다 앞선 1919년 ‘서상봉’은 3.1만세운동에 이은 3.21만세운동 주도와 적극 가담으로 조국해방을 외치다 투옥 이듬해 역시 옥사했다. 부근에 있는 정명여고에는 지난 1991년 전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재학중 폭력정권퇴진을 외치다 분신한 박승희 열사 흉상 추모비가 있어 한참을 머물러야 했다.

유달산 자락을 바라보며 시작하는 원도심 여행 중 가장 먼저 북교동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목포역이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게스트하우스인 <백년한옥>은 맛깔스런 남도 음식 과 목포 관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체류형 관광도시 구현을 목표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오거리 옆 북교신협과 화신약국, 일명 죽동오거리를 걷다보면 만날 수 있는 목포 전통의 수문당 카페와 제과점 그 옆이 <백년한옥>이다. 이 곳은 기방으로 사용되기 위해 지어진 목포 최초의 한옥건물로 100년이 넘었다, 목포를 찾아 1박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열려있는 곳이다. 이곳은 추억하기 다락방(4인) 14만원, 공유하기-1(2인) 6만원, 공유하기-2(2인) 6만원, 쉼(3인) 10만원, 삶(1인) 4만원이다.

목포에는 백년한옥 외에도 수다방, 달꾸메, 달빛언덕, 하얀풍차, 예술촌, 오래뜰 등이 게스트하우스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정명여고 기독교선교사 사택
목포 새롭게 디자인 하는 ‘골든타임’

목포 대반동 ‘째보선창’ 뒤 켠 바다를 목숨처럼 끌어안고... 소금 맺힌 할매 등짝 짓누르는 햇살... 최영록의 <째보선창 할매별곡>의 일부다. 김병고는 《목포예술인들의 빛과 그림자》에서 1960년대 목포에서 활동했던 미술인들을 소개하며 남농, 취당, 소송, 백홍기, 윤재우, 백영수, 양수아 등 그림으로 먹고 살기 힘든 시대를 태어난 그들이 줄곧 찾았던 ‘오거리 미네르바 다방’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억척스런 삶이 이어지던 목포 온금동... 그리고 옛 지명인 ‘다순구미’에 있는 ‘조금새끼’는 김선태의 시에 등장하는 단어인데 ‘조금 물 때에 밴 새끼라는 뜻’으로 ‘조금’ 때 출어가 어려워 쉴 때에 비로소 아이를 임신한다는 뜻으로 먹고 살기 위해 바다를 업 삼아 살아가던 가난한 목포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단어다. 고은 시인이 목포 강연에서 소주를 마시며 읊었다는 시로 알려져 있다.

도시재생사업이 목포 땅을 새롭게 디자인 할 골든타임의 상황이다. 지역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목포도시재생시민네트워크가 “뉴타운식 개발에서 깨어나야 한다.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온금동의 경우 마지막 남은 목포의 뿌리요, 인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옛 조선내화 공장건물과 굴뚝 등 근대산업문화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가치 있는 지역”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목포도시재생사업 확정과 함께 최근 관객 천만을 향해 순항하고 있는 영화 ‘1987’의 ‘연희네수퍼’가 서산동에 있다 것도 기대되는 목포여행중 하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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