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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사람> 박우량전신안군수
2018년 02월 14일(수) 11:08
<걸어온 길> 목포고등학교 목포교육대학졸 경원대 경영학과 졸 일본 국립오사카대 법학석사 성균관대 행정학 박사 지방4급(현 7급) 공채 합격 행자부 자치운영과장, 행정제도과장 하남시 부시장, 하남시장 권한대행 제25~26대 전남 신안군수(2선,무소속)
<주목! 이 사람> 박우량전신안군수



“신안군민들에게 자신감 주며 기회제공.”

여객선 야간운행, 군버스 공영제 시행 큰 자부심

현장확인 행정으로 주민들과 돈독한 신뢰 구축

젊은이들 돌아오는 모델 만드는데 역량 집중할 터

지난 2014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신안군에서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당시 3선에 도전하며 당선이 확실시되던 박우량 신안군수가 갑자기 불출마를 선언하고 신안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여론조사에서 상대후보들을 크게 앞서던 박군수의 돌출행동은 지역에 큰 파문을 던지며 선거기간 내내 화제거리를 제공했다. 후보로 등록한지 3일 만에 후보직을 전격 사퇴하며 선거판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박 전 신안군수. 그가 올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군수 출마를 선언하며 신안군수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



글 박종수 기자



박 전 군수는 지난 8월초 자신의 고향인 신안군 도초면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그리고 신안군수 재도전에 나섰다. 그가 돌연 신안을 떠난 배경이 궁금했다. 그 동안 일부 언론을 통해 심경을 토로했지만 직접 듣고 싶었다. 또 4년간의 공백을 깨고 군수출마를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에 대해서도 물었다.

박 전 군수는 긴박했던 당시 순간들을 담담하게 털어났다. “유방암 투병 중이던 아내가 갑자기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3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결정이 힘들었으나 군수로 재직하면서 제대로 돌보지 못한 죄책감이 마음을 돌리게 했다. 군수야 다시 나올 수 도 있지만 지금 부인을 돌보지 않고 죽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는 박 전 군수는 당시에는 오직 부인 곁을 지켜야한다는 절박함에서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로 주민등록 주소지를 옮기는 극약처방으로 후보직을 사퇴하게 됐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주소지를 변경하는 순간 출마자격을 잃기 때문에 뒤에 지지자들이 불출마를 철회를 요구했지만 이미 반전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이후 박 전 군수는 주변과 모든 인연을 끊고 병간호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한부 삶을 살던 부인은 지난 2015년 10월에 세상과 이별했다. 부인의 죽음에도 두 딸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싫어해서 부고조차 내지 않았다고 한다. 친형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했다.

아내가 죽기 전 했던 “가족보다 신안군민을 더 좋아했으니 내가 죽고 나면 신안 고향으로 돌아가시라.”는 말이 생각나면서 자신이 고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고민했다면서 이제는 더욱 다부진 마음으로 신안군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심정으로 군수 도전에 나섰다. 박 전 군수는 “내가 고향을 위해 어떻게 봉사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또 군수 재직시절 자신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냈던 형님과 가족들의 명예도 회복시켜주고 싶다”며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시간들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박 전 군수는 출사표를 던지고 주민들과 접촉하며 섬들을 샅샅이 훑고 있다. 지난 8년간 무소속으로 혈혈단신 민주당 아성을 무너뜨리고 재선을 시켜준 군민들을 다시 만나면서 신안의 비전과 꿈,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한 구상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지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신안군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시행과 주민접촉 빈도를 늘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난 4년간 공백 기간에서도 신안이 가장 절실히 요구하고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주민들과 소통하며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의영향력있는CEO 수상
박 전 군수는 지난 4,5기 민선 재직기간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를 묻는 질문에 여객선 야간운행과 마을버스 공영제 시행을 들었다. 그는 민선 4기에 출마하면서 여객선 야간운행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타 후보들과 주민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들어야 했다. “대통령도 못한 일을 군수가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한 것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불신을 보낸 것이다. 박 전 군수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군수로 당선되고 난후 여객선은 일출 30분후부터 일몰 30분전까지만 운항할 수 있다는 규정을 고쳐 전국 최초로 여객선 야간운행이라는 획기적 계기를 만들어냈다. 또 재정난을 이유로 시행을 못하던 버스공영제를 전남최초로 도입, 교통편의를 제공했다. 이후 신안군 버스 공영제는 도내 모든 지자체들이 벤치마킹해서 운행 중이다. “섬에는 교통개선이 복지이고 소득이며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 일이다”는 박 전 군수의 신념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박 전 군수는 전형적인 관료출신이다. 그는 지난 1974년 당시 4급 공채로 합격, 중앙에서만 근무를 하다가 지난 2002년 하남 부시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쳤다. 이후 하남시장선거에 출마했다가 낙마 한 이후 무소속으로 신안군수에 출마해서 8년간 군정을 이끌었다. 그는 공직의 경험을 살려 특히 재정의 효율적 운영으로 숙원사업을 해결하고 주민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예산이 군수의 힘이고 권한이다. 예산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군수의 능력이 평가된다. 재직기간 동안 주민들이 요구한 민원은 가능한 해결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박 전 군수는 주민들을 직접 접촉하는 행정으로 섬들을 누비고 다녔다. 그는 재직 기간 큰 섬은 1년에 20-30번, 작은 섬은 2-3번을 돌며 주민들의 요구를 수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현장확인 행정’으로 주민들과 돈독한 신뢰를 쌓았다. 군민들은 처음에 공수표를 남발하는 ‘사기꾼 군수’로 폄훼하다가 약속을 반드시 실천해가는 군수를 지켜보면서 ‘OK군수’로 인정, 군정을 순탄하게 이끌 수 있었다. 또 그가 군정운영에서 주안점을 두고 시행했던 것이 바로 부서 간 ‘벽 허물기’다. 박 전 군수는 부서 간 이기주의를 탈피, 협치 행정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군정의 성패가 갈린다고 단언한다. 그는 “군수는 업무추진에 걸림돌이 생기면 조정과 해결 능력을 발휘해서 군정을 이끌어야한다”면서 군수는 이런 행정구조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군민들에게 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런 주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민선 5기에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당시 민주당에서 입당을 강하게 권했지만 거절했다. 스스로 ‘뼈빠지게 일했다’할 정도로 열정과 노력을 바친 만큼 정당의 선택이 아닌 일로서 평가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 주민들이 진정으로 성원과 지지를 보내는 것에 당선을 확신했다. 박 전 군수는 “열심히 일하고 올바른 정책으로 승부하면 된다”는 신조를 주민들이 정당하게 평가를 해준 결과로 받아들였다. 무소속 8번의 박 전 군수는 민주당 돌풍 속에서도 무난히 재선에 성공하며 ‘신안 호’의 키를 다시 잡게 됐다.

박 전 군수는 일을 잘하려면 원칙과 기준을 확실히 정립하고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직원들이 역동성과 자발성을 가지고 일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군수가 열린자세로 감동을 주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군정을 원활하게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이다. “군수와 직원들이 원활하게 소통하니 업무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군수가 조직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탁월한 업무능력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할 때 업무효과도 배가 된다”며 신안군 직원들이 지난 40년간 변화보다는 자신의 재임 8년간 변화가 더욱 크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수를 ‘유리잔의 물고기’로 비유한 그는 청렴하지 않으면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다면서 갖은 비방과 음해, 악소문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고 의연하게 버텨낸 것도 깨끗한 행정을 이유로 들었다.

박 전 군수는 재임기간 끊임없이 모함과 고소, 고발을 당하고 악소문에 시달렸다. 기존 정치권과의 불화, 공무원노조와의 대립, 지역 기득권세력과도 불편한 관계가 계속됐다. 불출마를 하던 순간에도 검찰에 구속됐다거나 세월호 유병언과 연관성을 거론하며 발목을 잡았다. 그에 대한 음해성 공격은 가족이나 형제간에게까지 연관 돼서 집단 괴로움을 당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짙은 서운함이 남아있다. 이번 선거출마의 배경에도 자신에게 덧씌워진 오해를 불식하고 형제들의 명예회복하기 기회로 만들려는 강한 의지도 담겨있다. 그러나 그는 과거 불편했던 관계에 대해서 자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당시에는 너무 일에만 몰두하느라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면서 “앞으로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넓은 마음으로 활동 할 것이라”고 유화적인 자세를 보였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박 전 군수는 재임기간의 군정운영과 자신을 둘러싼 소회를 막힘없이 털어났다. 자신의 행정철학에 대해 뚜렷한 소신을 밝히며 얘기를 풀어간 그는 “사람을 소중이 생각하고 미래 비전이 확고해야한다”면서 환경을 중시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군정의 우선 가치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례로 5명 이하의 작은 섬에 거주하는 주민이더라도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선착장에 대합실과 화장실을 설치했었다면서 행정은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해야한다고 충고했다. 또 목표를 세우면 집념을 가지고 일관된 군정 집행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여객선야간운행과 버스 공영 운영제는 실현이 불가능 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대통령에게 까지 건의하고 업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해서 얻어낸 것으로 신안군민들에게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복지서비스라고 말한다. 특히 버스공영제는 14개 기본 버스업자들을 3년6개월간 설득 끝에 얻어낸 것일뿐더러 주민들의 실생활편리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이어서 지금도 뿌듯하다고 자랑했다.

박 전 군수는 군수로 재직하는 동안 가장 잘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안군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이라며 신안이 가지고 있는 천연의 자원과 특산물을 잘 활용하면 미래의 자산으로 앞으로 주민들에게 큰 소득을 안겨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명분으로 “신안의 무한한 잠재력을 소득을 연결시켜 군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며 전국의 230개 지자체가운데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서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게 만들어내는 군정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또 4년 전 군민들에게 모호한 입장을 보이며 신안을 떠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무책임에 대한 심판을 통해 인식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또 4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지역민들의 지지열기가 뜨거운 것에 용기를 얻고 선거에도 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고 지난 8년간 공과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주민들과 진실 된 마음으로 소통하며 벽을 허문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지역민들의 지지에 크게 감사하고 있다.

박 전 군수는 “부인이 지금까지 병석에 있으면 출마는 생각도 못했을 것” 이라며 “군수출마를 결심한 만큼 무거운 사명감을 간직하고 오직 신안과 신안군민만을 생각하려고 한다”고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에 대해 많은 고뇌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지난 4년간 자신을 되돌아보며 재임시절을 성찰하며 한 사람 한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는 박 전 군수는 만약 군수로 당선된다면 상대방을 포용하고 동행하는 자세로 군정을 운영하고 행정도 유연하게 펼치며 화합에 우선가치를 둘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박우량 전 신안군수는 그런 의미에서 지난 4년은 허송세월이 아니라 인생을 새로 배우고 또 인간적으로 한 단계 성숙하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며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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