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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양림동

선교기념비~호남신학대~선교사묘지~윌슨사택~수피아 여중고
선교사들 삶 생각케 되는 남구 대표 관광지

2018년 03월 22일(목) 17:56
오웬기념각
수피아여중·고








윌슨선교사 사택








윌슨선교사 사택








선교사 묘역










광주 남구관광청이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홈페이지 소개글을 보니 지역관광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시도된 민간 관광청이라고 하네요.

홈페이지로 보여지는 주된 임무는 양림동 관광으로 건축투어 A~D, 선교투어, 야간투어 A~C, 예술투어 코스와 거리 공연 이벤트들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남구관광청의 주테마가 양림동인걸 보면, 양림동이 곧 남구의 대표 관광상품인 셈이지요.

저는 광주에 거주하며 유적지 해설 안내역할을 하기에 양림동을 일년이면 몇 차례 해설자로 방문하게 됩니다. 공부 목적으로 처음 찾았던 양림동은 제게 '광주에 이런 곳이 있었어?'라는 신비감을 주었고, 이후 제가 안내자가 되어 단체를 안내하다 보면 처음 찾은 이들 역시 '광주에 이런 곳이 있었어?' 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오늘은 양림동으로 역사여행을 떠납니다.



사실 양림동은 옛 것을 보존하였기에 값진 유적이 되었는데 요즘은 한 달이 멀다하고 새로운 것들이 들어서서 안내 전에 미리 확인하지 않으면 그 곳이 그 곳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고, 그래도 변화가 거슬리지 않음은 주위를 압도하는 큰 건물이 들어서는 대자본의 휘둘림에 의한 변화가 아니기에 기꺼이 양림동을 추천하고 방문합니다.

앞서 남구 관광청의 소개대로 건축, 선교, 예술을 주제로 요즘에는 상설투어 테마투어, 그리고 야간투어까지 다양한 주제로 해설해주는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유적들이 한 마을에 집중되어 있으니 첫 시작과 마지막 길을 이으면 역사문화 산책 코스가 됩니다.

역사여행 기획과 해설을 하는 제가 양림동 안내를 맡게 되면 사직도서관 앞 선교기념비에서 시작합니다. 전세버스로 이동하더라도 여기에서 하차하고, 개별 집결 또한 선교기념비 앞으로 약속합니다.

양림동 인근엔 사직단, 고택, 향교 등 다양한 유적이 있지만 그래도 양림동이 양림동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초창기 광주지역의 선교를 맡았던 선교사들의 희생이 있기에 더 빛날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 아이 키만큼의 투박한 돌덩이에 선교기념비라는 한자 글씨, 그리고 그 아래 1904년 12월 25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배유지 목사가 광주에서 처음 예배드린 기념으로 1982년 12월 대한예수교 장로회 전남노회가 세웠다는 설명글이 있습니다.

기념비 자체는 특별히 가공하지 않는 돌을 사용해 세웠습니다. 조선 말 기독교 신앙이 전무했고, 미개척지인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어려움을 다듬지 않는 돌 자체로 나타내려는 듯이요.

1904년 광주에서 처음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념비는 1982년에 세워지고요. 기념비가 세워진 1982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데요. 1982년에서 백년을 빼면 1882년이 됩니다. 1882년이 바로 조선과 미국이 수교를 하던 해로, 기독교의 자유가 허락되는 해입니다. 그 일백년을 기념하며 이 비석을 세운 듯합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기독교 선교가 자유로워지면서 중국에서 활동중이던 미국 북장로계 선교사인 의사 알렌이 들어옵니다. 의사 선교사인 그에게 시기가 잘 맞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가 들어온 후 급진개화파가 주축이 된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갑신정변 주축세력들에 의해 척결대상이던 보수세력의 대표 민영익이 목에 자상을 입습니다. 민영익은 당시 왕비의 측근이기도 하거니와 미국과 조약을 맺고 미국을 첫 방문한 외교사절이기도 했습니다.

민영익은 많은 피를 흘려 목숨이 경각에 달렸지요. 조선의 의원들은 가망없다며 손을 들었고, 이때 외과수술에 능한 서양의사 알렌의 치료로 살려냅니다. 임금까지도 서양의술에 놀라고 감탄했겠지요. 그리고서 생겨난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병원이 광혜원입니다. 광혜원은 얼마 안있어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이후 어비슨이라는 분이 원장이 되지요. 그 어비슨의 아들이 광주에 내려와 실업 교육을 이끕니다. 양림동에 어비슨 기념관이 있지요.

그리고 제중원은 미국인 세브란스의 기부금으로 이전 확장하여 세브란스 병원이 되고, 나중에 연희전문과 결합하여 연세대가 되는 것이지요.

제중원. 광주 기독병원도 초창기의 이름은 제중원이었으며, 그 일대의 도로명이 제중로임은 여기에서 기인합니다.

제중병원인 광주 기독병원이 다른 의료기관과 달리 특화로 삼았던 것은 구라사업 - 나병 퇴치 활동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꺼렸던 나병환자들을 받아들이는 광주 나병원은 이후 여수 애양원으로 옮겨졌고, 애양원을 거쳐간 대표적인 분이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는 손양원 목사님입니다. 본명이 손준연이었는데 이름을 애양원에서 따와 손양원으로 불렸고, 이분은 사실 광주에 계시진 않았지만 애양원의 출발이 광주라 이 분을 기리는 비가 양림동에 세워져 있습니다.

광주의 어른이라는 최흥종 목사님 같은 경우가 나병환자를 일으켜 세우는 서양 선교사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아 봉사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선교기념비에서 출발한 해설은 호남신학대학 정문을 통과해 선교사 묘지 알림판 따라 뒤편 언덕에 오릅니다. 108m 언덕 정상 즈음에 23기의 무덤들이 있습니다.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 갓 태어나 죽은 아이들의 무덤까지 있지요.

신학을 전공하고, 더불어 의료인인 그들이 안락한 삶을 버리고 머나먼 조선까지 왔을 땐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코리아는 지도 속에서나 겨우 찾아질 수 있는 나라였을 겁니다.

선교사 묘지를 뒤로 하고, 언덕을 내려오면 광주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근대 건축물인 윌슨 선교사 사택을 만나고, 이어 수피아 여중과 여고 뒷문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오늘날 수피아여중 여고의 전신인 수피아여학교는 선교사 개인 집에서 여학생 몇 명을 가르친 것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처음엔 특별한 이름 없이 그저 광주여학교 정도로 불렸었지요. 그러던 중 미국의 한 부인이 자신의 여동생이 죽자, 그 여동생을 애도하는 뜻에서 기부한 자금으로 1911년 수피아홀을 준공했는데 이것이 수피아여학교라는 교명의 기원이 됩니다.

수피아는 죽은 동생의 이름이었고, 수피아홀이라는 하나의 건물은 이후 수피아여고와 수피아여중이 되었으며, 그 학교를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은 수피아 인으로 살아갔겠지요.

역사유적 해설 때 특정 종교 이야기나 정치 견해를 표출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사실 양림동은 특정 종교와 관련이 있어 해설할 때 조심스럽기도 한 공간입니다. 그래도 양림동에서 만큼은 기독교 선교사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역사여행은 그 공간에서 시간을 되돌아보며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양림동이라는 공간에 백여년 전 정착했던 선교사들의 삶.

물론 개인적 자아실현이나 종교적인 헌신을 통한 성취욕구도 있었겠지요.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기독 선교를 넘어 우리 지역의 의료, 교육, 복지의 선구가 되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그대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라는 구절을 실현하는 삶이 아니었을까요?

종교 본연의 가르침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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