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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북 (타이베이)

외부세력에 내내 휘둘렸던 아픔 많은 나라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 대만박물관
장개석 기념 중정기념당 꼭 들러봐야

2018년 04월 05일(목) 18:01
중정기념당 광장
중정기념당 장개석 동상








고궁박물원(대만국립박물관)










저는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이 있는 중국어 가이드이기도 합니다. 국내 역사유적지 안내를 주로 하다 작년부터 국외로 영역을 넓히면서 북경, 그리고 대북 여행을 몇차례 진행했습니다. 북경은 베이징(北京)의 우리식 한자음임을 잘 알 터인데, '대북(臺北)'은 좀 생소할겁니다. . 그쪽 말로 '타이베이'라고 읽고 보니 알 것 같습니다. 대만(타이완)의 수도이지요.

덧붙이자면 광주 1순환로는 죽봉로-서하로-필문로-대남로를 잇는 순환노선입니다. 광주광역시의 한 도로명인 대남로의 '대남'은 대만의 도시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광주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던 대만의 남쪽 도시.

아하. 감이 왔네요. 대북은 대만의 북쪽 도시, 대남은 대만의 남쪽 도시, 문일지십한다면 대중은 대만의 가운데에 있는 도시. 중국어로는 각각 타이베이, 타이난, 타이중입니다.

지난 주에도 여행팀을 인솔해 타이베이에 다녀왔습니다. 전남에서 역사유적을 안내하는 문화관광해설사 일행이라 저도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를 벗어나 좀 멀리 대만으로 떠나볼까 합니다.





일반인 대상 대만여행 참가자 모집을 하면 "대만에 가면 뭘 봐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사실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포함한 우리 대부분은 중국 하면 대륙 땅의 중국을 생각하지 대만까지 중화문화권에 포함시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만은 어떤 역사를 갖고 있을까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역사속 '하멜'을 불러옵니다.

하멜표류기. 조선시대 효종 때, 네덜란드 사람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해 13년간 우리나라에서 생활하며 조선의 모습을 서양에 소개한 여행기이지요. 밀린 임금청구서로 기획된 여행기가 힛트를 치며 조선이라는 나라를 서양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으로 그가 출발했던 곳이 바로 대만입니다. 대만은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식민지였지요. 동인도 회사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있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 정도로 보면 됩니다. 민간회사의 이름을 띠고 있지만, 왕으로부터 외교권을 포함한 군사권까지도 부여받은 대리수탈 조직이지요.

하멜이 출발했던 대만의 당시 이름은 '포르모사(Formosa)'였습니다. '포르모사'는 15세기 해양을 누비던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으로 '아름답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만을 지금도 포르모사라고 부르기도 하고, 포르모사라는 브랜드의 상품들도 보이며, 포르모사의 아름답다라는 뜻을 한자로 직역해 '美麗島'라는 이름으로 대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이름 붙여진 포르모사는 네덜란드에 의해 1624년부터 37년간 통치되었고, 이후 대륙에서 청나라 세력에 쫓겨 반청복명(청나라에 반대하고, 명나라를 회복)을 기치로 내건 정성공을 위시로 하는 대륙 사람들이 대거 들어옵니다. 이어 청나라 세력이 강해지면서 대만은 청나라의 한 지방구역이 되어 청나라 땅이 됩니다.

우리나라 조선말기, 1895년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서 격돌했던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고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합니다. 우리가 해방되던 해인 1945년까지 51년간 일제 식민지였습니다.

그리고 채 5년이 안되어 다시 한번 외부 세력이 밀려오는데 대륙에서 공산당에 의해 패배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대만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때 들어온 이들을 외부에서 들어왔다는 표현으로 외성인으로 명명하고, 기존에 살았던 대만 사람들을 본성인이라고 이름합니다. 이 외성인과 본성인의 갈등은 이후 계속되는 대만의 사회갈등으로 내재되어 있습니다.

본성인도 외성인도 아닌 대만의 원주민은 내내 외부세력에 의해 휘둘린 것이지요.

대만을 여행하면 꼭 봐야할 곳 1번은 대만의 박물관이고, 그 다음은 장개석을 기념하는 중정기념당입니다. 중정(中正)은 장개석의 본명이고, 필명에서 출발해 자(字)로 쓰인 장개석은 蔣介石(장제스)를 우리 한자음으로 읽어 우리에겐 익숙한 이름입니다.

참고로 중국 인명은 신해혁명을 기준으로 그 앞 사람들은 우리 한자음으로 그 이후 인물은 중국 독음으로 표기하는 것이 우리 표기법 원칙인데, 규칙보다도 오랜 세월 불린 이름에 익숙하다 보니 그 기준이 애매모호 할 때가 많습니다.

어쨌든 장제스는 장개석의 중국어 독음이고 저는 편의성 장개석으로 이름하겠습니다.

장개석은 중화민국 대만 안에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입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최초의 공화정을 내건 손문은 그가 활동한 광동성 일대에만 영향을 미쳤고, 1925년에 간암으로 세상을 뜨고 이후 장개석이 북경에 입성하며 본격적인 항일 투쟁을 벌입니다.

처음엔 공산당 세력을 배척하지만, 만주를 거쳐 북경으로 점차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 되고 장개석 또한 부하에 의해 구금되며 공산당과 합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국공합작을 이뤄 일본군과 싸워 승리하게 됩니다.

이후 일본 세력은 물리쳤지만 공산당과의 내전에 패해 대만으로 옮겨오게 됩니다. 그 때 함께 옮겨왔던 수많은 대륙의 보물은 대만의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어 대만박물관이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로 손꼽히며 대만이 중국의 정통성을 말하는 근거가 됩니다.

1949년 12월 대만으로 천도한 장개석 정부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세계에서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으나, 1960년대 중국과 소련의 갈등, 이어 냉전시대의 장막이 걷히며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엔에 가입하고,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는 대만의 중화민국에서 중국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때 장개석은 "중화민국의 존재는 국제연합이 아니라 중화민국 스스로가 결정한다" 라는 말과 함께 유엔에서 자진 탈퇴합니다. 이어 1972년엔 일본과 단교, 1978년엔 미국과 단교, 그리고 1992년엔 오랜 우방인 대한민국과도 단교하게 됩니다.

장개석은 중화민국 대만이 한참 그 위치를 잃어가던 때인 1975년 세상을 떠나고, 그의 사후 5천만 화교와 대만인들의 기부금으로 중정기념당이 세워지게 됩니다. 계단 숫자까지도 그의 일생과 관련지어 건설되었으며, 동상은 대륙쪽을 향해 앉아 있습니다. 대륙수복의 의지를 보이는 것이지요.

2008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취임식때 대만에서 우리의 국회의장에 상당하는 대만 입법원장 등 축하사절단이 방문했습니다. 헌데 중국측에서 대만 관리가 국가 대표 자격으로 참가하는 것에 항의하자, 우린 대만 대표단을 그냥 되돌려 보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가상의 비유를 들어 아이들에게 설명합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1950년. 북한의 침략으로 서울의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로 옮겨왔다. 그때 중앙박물관 유물을 모두 갖고서. 서울이며 대전 부산 광주 해남 땅끝까지 한반도 전체와 옛고구려땅까지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되었고, 대한민국은 제주도 땅 만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군이후 삼국-신라-고려-조선을 잇는 국가는 어디일까?"

대만의 공식명칭은 중화민국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올림픽에도 국가 깃발을 걸 수 없으며, 세계의 많은 나라와 수교를 맺지도 못하는 아픔이 많은 나라입니다.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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