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 2018.06.19(화) 09:01
닫기
김성후 교수의 자동차로 유럽여행 <14> 노르웨이

다채롭고 경이로운 자연환경 가진 자연속의 나라

2018년 04월 13일(금) 00:00
덴마크 해안에 위치한 크론보르성에서 햄릿의 비극을 헤아려 보았으니 우리의 다음 여정은 해안 건너편의 노르웨이땅 헬싱보리였다.

좁은 발트해를 수시로 왕래하는 카페리를 타니 금방 노르웨이 지경에 들어섰다. 7월 9일 아침에 노르웨이 국가에 들어섰지만 아무도 우리의 입국에 간여하지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다. 그냥 한국의 하이패스를 통과하듯 그렇게 입국하면 되었다.

유럽연합은 우리나라의 국력을 반영해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한데 노르웨이는 EU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무비자입국이 가능하다. 그 배경엔 솅겐조약이라는 것이 있어서 조약가입국내에서는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솅겐조약국은 26개국인데 대체로 EU와 일치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노르웨이는 스위스, 아이슬란드는 EU 국가가 아니지만 조약에 의해 한국인들이 자유로이 들락거릴 수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EU라서 솅겐조약국이 아니라도 한국인의 무사증입국이 가능하다. 덴마크와 스웨덴, 핀란드는 EU국가라도 노르웨이처럼 유로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유럽은 참으로 다양하고 복잡다기한데 노르웨이의 역사와 자연도 꼭 그러하다.

노르웨이의 정식 명칭은 노르웨이왕국(Kingdom of Norway)으로, 해안선의 길이는 25,148㎞, 리아스식 해안을 자랑하는 전남의 4배나 된다. 면적은 남한의 세배 이상, 인구는 1/10에 불과하고 수도인 오슬로는 광주인구의 1/3밖에 되지 않는다.

인종은 게르만족인 노르웨이인이며, 그밖에 북극권에 사슴을 키우며 목축을 하는 소수민족 사미족이 있다. 언어는 노르웨이어이며, 94%가 복음루터교지만 종교적 갈등은 없는 나라이다.

노르웨이는 9세기 말에야 통일국가를 형성했는데 11세기 중엽에는 노르웨이왕이 덴마크왕을 겸하기도 했고 14세기말부터 19세기초까지는 덴마크의 지배를, 1814년부터 1905년까지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1905년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오늘의 왕가가 시작되었지만 2차세계대전중에는 독일의 지배를 받았다.

노르웨이는 내각책임제의 입헌군주국이며, 대외정책은 친서방중립 및 북구협력(北歐協力)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노르웨이는 나토에도 가입했지만 중립국이며 북구협력에 의해 노르웨이의 화폐는 북구3개국에선 환전없이 환율이 다소 달라도 사용이 가능했다.

오전 10시반 경 입국을 했는데 북상하여 오후 3시가 넘어 오슬로에 도착했다. 오슬로는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의 프로그네르 공원, 일명 비겔란 조각공원이 유명하다. 10만평의 면적에 조성된 공원의 수많은 조각품 중에서 모노리턴이라는 조각품은 걸작으로서 화강암에 121명의 남녀상이 새겨져 있는데 서로 위로 올라가려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은 인간의 본성을 잘 나타낸다고 한다.

비이킹 박물관도 유명한데 피요르드에서 발견한 3척의 비이킹선을 복원해 전시한 곳이다. 이중 가장 오래된 배는 9세기초에 건조되었는데 30여명이 노를 젓고 돛을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는 시간상 조각공원과 박물관은 가볼 수 없었다.

위의 유명 관광지 대신 우리는 왕이 사는 왕궁을 바로 찾았다. 그 곳은 도시 중앙에 위치하고 높은 곳에 위치하여 전망도 좋고 중심지 역할을 하니 길거리엔 관광객들의 활기로 넘쳐났다.

왕궁 인근의 현대미술관 주차장을 겨우 발견하였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오로지 시간상 왕궁에 쏠렸다. 자유롭게 도시를 누비며 여행자의 자유를 만끽하다 보니 주차시간을 5분정도 넘게 되었다. 앗, 그런데 주차위반금이 14만원이나 되었다. 어찌나 황당하던지 이의를 제기하려고 주차관리인이 다시 방문하기를 기다리고 해당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도 일요일이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메일로 항의하며 주차티켓 2장을 발급받아 전체 주차시간을 충분히 포함하는 점을 증명해 보였다. 결국 그 많은 돈을 억울하게 내지 않아도 되었다.

왕은 절대권력자가 아니라서 왕궁은 수수했다. 그러나 근위대의 교대식은 근엄했다. 한편 왕궁 앞으로 뻗어간 중심대로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거리악사가 있고 행위예술자가 있었다. 아름다운 나라, 노르웨이의 첫인상은 그렇게 다가왔다. 이제 노르웨이 북쪽 끝까지 머나먼 길을 달려가야 한다.
/동신대교수·호텔관광학과

회사소개회원약관개인정보보호정책제휴문의광고문의기사제보웹메일청소년보호정책
대표전화 : 062) 720-1000팩스 : 062) 720-1080~2인터넷신문등록번호:광주 아-00185
회장:박철홍 / 사장 발행·편집인:김선남 / 상무이사&편집국장:이두헌 / 이사&경영본부장:이석우 / 논설실장:정정룡
[61234] 광주광역시 북구 제봉로 322 (중흥동) 삼산빌딩 이메일 : jndn@chol.com개인정보취급방침
*본 사이트의 게제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의 사전 허가 없이는 기사와 사진의 무단 전재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