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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쇠바다' 김해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한 집안
김씨 시조 김수로왕 건국신화 전해지는 곳
국립김해박물관, 철의 왕국 가야 유물 전시

2018년 04월 19일(목) 18:53
수로왕 이하 가야 건국주체들이 내려왔다고 전해지는 곳이 김해 구지봉이다. 야트막한 언덕에 둥글게 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구지봉임을 상징하는 커다란 돌기둥과 비석이 있다.
쇠바다라고 별칭되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말 '쇠'와 '바다'의 뜻을 갖는 한자어로 바꾸어 보니, 쇠는 금(金)으로 바다는 해(海)로 대치됩니다. '쇠바다'는 김해(金海)를 이름이지요. 광주 - 빛고을처럼 빈번히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 동네 사람들에게 '쇠바다'는 김해 별칭으로 통하는 이름입니다.

김해라는 이름은 신라가 가야땅이던 그 지역을 점령하고 처음엔 금관이라 부르고, 삼국 통일 후엔 김해로 고쳐 불렀던 이름입니다. 김해에는 왜 쇠와 바다가 들어갔을까? 지명은 그 지역의 특성에 기인해 붙여집니다. 김해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쇠와 바다, 이전의 명칭 금관 또한 쇠와 관계가 있습니다.

기원전후 시기 철- 쇠는 최고의 상품이었습니다. 기간산업인 농업생산력을 향상시키는 도구였고, 집단을 보호하고 정복전쟁에 필요한 첨단 전쟁무기였으며, 그러기에 최고의 교환가치로 쓰이는 무역상품이었습니다. 집단 간의 교역은 주로 바닷길을 통해 이뤄졌을 것이니, 쇠와 바다를 지명에 갖고 있는 김해는 첨단산업단지겸 무역항이었겠지요.

오늘은 쇠바다- 김해로 역사여행을 떠납니다.



우리나라엔 300여개의 성씨가 있다고 합니다. 그중 김씨가 가장 많고, 성씨 앞에 붙는 지역이름인 본관까지 보면 김해 김씨가 우리국민 1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열명이 모이면 반드시 김해 김씨는 포함되어 있고, 버스 여행으로 마흔 명이 타고 가면 4명 정도가 김해 김씨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김해 김씨의 시조로 전해지는 수로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났습니다.

올해 2018년에서 시계를 과거로 되돌려 197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지금 이맘때 쯤 어느 봄날입니다.

나라 이름도 없고, 왕도 신하도 없는 바닷가 마을, 9개 마을 촌장이 모여 있는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기 누가 있는가? 하늘이 내게 여기에 내려와 나라를 세우라고 하는데, 너네들이 흙을 파면서 노래하고 춤추면 내려가리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너를 구워 먹으리"

모여있던 사람들이 함께 거북이 송을 부르며 춤을 췄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자색 밧줄과 황금궤짝이 내려오고 그 궤짝 안에 들어 있는 여섯 개의 알. 알을 깨고 맨 먼저 나온 수로, 그리고 나머지 각각 6가야의 수장이 되지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전하는 가야 건국신화입니다. 중국 후한 광무제 건무 18년이라는 구체적인 년도와 날짜까지도 전하며, 이를 서기로 환산하면 42년이 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시작 기록도 기원 전후이니 그 즈음 이야기이고, 광주 신창동 사람들이 살았던 때이며, 예수님이 생을 마친지 얼마되지 않는 그 때쯤입니다.

천손강림,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조 이야기는 북방계열의 신화에서 종종 보입니다. 여기에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을 더해 이전 세대와는 단절되는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고, 덧붙여 거북이까지 등장시켜 바다의 요소도 더해져 있습니다.

가야 건국신화는 청동기 시대 아홉 마을에 사람들이 살았는데, 철기를 다루던 북쪽 세력들이 들어와 지배자가 되고, 이들이 다시 해양세력과 연합해 고대국가를 이룬다는 식으로 풀이되고 저 또한 그렇게 말합니다.

수로왕 이하 가야 건국주체들이 내려왔다고 전해지는 곳이 김해 구지봉입니다. 야트막한 언덕에 둥글게 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구지봉임을 상징하는 커다란 돌기둥과 비석이 있습니다. 여기 구지봉에 내려온 수로는 탈해와의 왕위 쟁탈전에서 승리하고, 이어 저멀리 인도에서 건너온 공주와 결혼을 합니다. 158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며 지금은 수로왕릉에 잠들어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수로왕릉은 대궐 옆에 만들었다고 하니 아마도 지금의 왕릉 옆으로 고대 가야의 대궐이 있었을 것입니다.

가야의 역사는 나라 이름조차 전해지는 기록마다 달라 가야니 가락이니 구야니 거의 10여종이 되고, 우리가 즐겨쓰는 가야의 한자표기 또한 기록들마다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음운학적인 추론도 많아 '가야'는 대한민국에 쓰인 한(韓)의 고대음이라는 이론까지도 보입니다.

또한 가야의 이야기는 기록이 미미하고,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점유를 정당화하는 임나일본부의 이론적 배경을 위해 각색되는 부분이 많고, 그 이유로 광복 이후도 가야의 전문연구자가 거의 없다시피하여 연구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아 그 실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왕국 - 가야라는 말로 표현하지요. 이는 또 역사적 상상력이 무한히 발현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역사 상상력은 백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이나 유물의 단초가 있어야 합니다.

그 단초 중 하나가 수로왕릉 입구 문 위에 그려진 '쌍어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입니다. 쌍어문. 두 마리 물고기 무늬. 이국적인 탑을 사이에 두고 두 마리의 물고기가 있습니다. 최초 문제 제기는 이 지역 출신 아동문학가 한 분이 1977년 인도 아요디아를 찾았다가 많은 건물에 쌍어문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수로왕릉을 떠올리며, 수로왕과 인도 공주의 국제적인 혼인을 연결하게 됩니다.

한반도 한켠에 있는 조그만 나라 가야가 아니라, 중국을 대표하는 한(漢)나라의 역사를 열고 닫는데 영향을 끼쳤고, 인도 공주와의 결혼으로 들어가 보면 중국을 넘어 중앙아시아 지나 인도까지 넓혀집니다.

그렇다면 여기 있는 쌍어문은 언제 그려진 것일까? 1792년 정조때 제작된 것입니다. 화공의 창작품일까 구전설화를 그린 것일까? 적어도 화공이 임의로 창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어떤 기록이라도 보았을 것이며 아니면 그 전대의 그림을 모사하였을 것입니다.

쌍어문 등장의 배경이 된 인도공주 수로왕비는 왕릉과 떨어진 곳에 묻혀있습니다. '아들 중 두 명을 나의 성씨 허씨를 따르게 하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는 두가지 유언을 남깁니다. 고향을 떠나온 그리움과 후손을 남기려는 소원이 있었겠지요.

수로왕에게서 시작된 김해 김씨와 왕비에게서 시작된 김해 허씨는 한 집안이라 서로 혼인을 안한다고도 합니다.

수로와 탈해와의 주도권 싸움, 그리고 인도공주와의 국제결혼 과정을 보면 철기로 접어드는 한반도는 외부에서 밀려든 강한 세력들의 쟁탈 장소였을지도 모릅니다.

김해 역사여행. 그 마침표는 국립김해박물관이 됩니다. 철의 왕국 가야의 실체를 보여주듯 건물도 철광석과 용광로를 상징하듯 지어졌습니다. 외부 건물을 찬찬히 돌아보고, 전시실에 들어서서 가야 특색을 보이는 굽이 높은 그릇들과 상형 토기들, 그리고 무엇보다 철로 만든 다양한 유물을 보고 있으면 쇠바다 김해, 철의 왕국 가야, 김씨 시조인 김수로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겁니다.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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