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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3·1만세운동→4·19→5·18→촛불혁명
민주화의 자유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진 것

2018년 05월 17일(목) 17:45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전봉준 단소(묘)








5.18 광주민주묘지








문재인 대통령을 성대모사하는 이들이 "사람이 먼저다.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 " 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지금의 대통령이 그 맥을 잇는다는 노무현정부에서는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문구를 자주 썼었지요. 김해 봉하마을 가면 마을 안내판에 곳곳에서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글귀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이나 '사람이 먼저다'는 말은 자본 보다는 사람이고, 제도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현 정부의 가치표현입니다. 역사단계에서 근대와 현대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민주화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국가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며 권력에 항거하는 집단행동을 보였던 역사가 우리의 근대사엔 기록되어 있습니다.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이지요.

동학농민운동은 권력의 폭력에 항거해 민중이 주인임을 보여주는 운동이었고, 반외세 기치를 드는 자주독립운동이었지요. 그 동학농민운동은 이후 범민중운동으로 연결되어 3·1만세운동으로 현대사의 4·19와 5·18로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계승되어 정권을 갈아치우는 '혁명'을 일궈 냈습니다.

오늘은 그 일련의 과정중 하나인 동학농민운동을 이야기 해 보려 합니다.



오일팔입니다.

1980년 당시엔 좌익세력의 사주를 받은 일부 대학생과 폭력세력들이 주축이 되어 국가 체제 전복을 노린 내란으로 규정되었고, 이어 80년대의 권력을 잡은 이들은 내내 광주사태라고 불렀었지요.

지금의 공식명칭은 광주민주화운동입니다. 광주에서 일어난 '백성이 주인'이 되려 권력에 항거한 '집단행동'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당당하게 광주내란이나 광주폭동으로 부르는 무리들이 있지요. 그들에겐 민(民)이 주인이 되는 '민주'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삼일만세운동 또한 당시엔 내란이고 폭동이었을것이며, 지금도 삼일만세운동을 내란이나 폭동으로 부르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만민족세력일 것이니,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부르고 있는 이들은 민중을 개돼지로 보는 그들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역사적인 사건을 어떻게 이름 짓느냐는 어떤 사건을 규명할 때 아주 중요합니다.

1894년 일어났던 일련의 민중항쟁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지금도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양반 상민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반란으로 초창기 '동학란'이라 불리는 오명은 벗어났지만, 주체세력과 사건의 결과 등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각 지역에 있는 기념공간에 지어진 이름이나 지자체에서 행해지는 기념행사 또한 명칭이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이름 안에 '동학'을 넣을 것인가 아니면 년도인 '갑오'를 넣을 것인가?

농민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 당시처럼 난리인가 운동인가 아니면 혁명인가?

아이들과 학부모를 주로 안내하는 제가 이럴 때 쓰는 방법이 교과서엔 어떻게 개념지어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초등 사회교과서에는 동학농민운동으로 명명합니다.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농민이 주축이 된 사회변혁 운동으로 동학사상은 변혁운동의 추진력이 되었고, 동학 조직이 운동에 역할을 했다고 보는 개념이지요.

'동학'은 지금 남아있을까?

서울 인사동에 가면 천도교중앙교당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1921년에 완공된 거의 백년이 되는 건물입니다. 완공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3대 건물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 건물이름으로 쓰인 천도교가 동학에서 승계된 이름입니다. 삼일만세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 15명이 천도교 대표단입니다. 지금처럼 교통 통신수단이 변변치 못했던 시기에 민족 대표는 조직을 맡고 있는 이들이 그 역을 했을 것이고, 국가권력기관이 아닌 전국적 조직은 종교조직이 그 역할을 대신했겠지요.

천도교의 첫 출발인 동학은 서학(西學)에 반대되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인간을 보는 시각은 당시 봉건사회 가치체계를 넘어서는 평등사상을 받아들여 서학의 영향을 받았겠지요.

동학의 성격을 규명하는 말중에 '인내천(人乃天) - 사람이 곧 하늘이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가치로 내걸었습니다. 믿어서 천당갈 게 아니고, 빌어서 극락갈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마주 대하는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말이지요. 내 앞에 마주 선 네가 하늘이고, 너 또한 나를 하늘로 보아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지금 저기 거리에 걸어 다니며, 여러분은 지금 하느님이 쓴 글을 읽고 있고, 저는 하느님이 읽을 글을 쓰고 있습니다.

동학의 1대 교주가 수운 최제우, 2대가 해월 최시형, 3대가 의암 손병희입니다. 손병희의 사위가 바로 방정환입니다. 어린이 운동으로 알려진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를 향한 시선은 동학에서 말하는 '인내천'의 실천이었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다루는 방법에서 폭력이 당연시되던 시절, 특히 여성과 어린이는 폭력의 대상이었습니다. 내 밑에 약자로 인식되던 이들과 나는 동일하다는 사상은 곧 내 위 또한 나와 같다는 평등사상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동학은 옳지 않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상적 바탕이 되었고, 또한 동학농민운동을 체계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조직이 되었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은 내외적으로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1800년 정조임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순조는 11세에 즉위하고, 다음 왕위를 이을 세자는 22살에 죽고, 그의 아들 헌종은 할아버지 사후 8살에 왕위에 오르고, 그 헌종은 20대에 후사없이 죽고, 뒤를 이은 철종은 강화도에서 농사짓다 어느 날 권좌에 올려집니다. 왕실 외척의 세상이었지요. 관리를 뽑는 과거는 유명무실해졌고, 매관매직에 조세는 백성 수탈을 위한 합법적인 제도가 되었지요.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전국이 탐관오리가 들끓었을 것이고, 전라도 고부(지금은 정읍 안에 있는 작은 면이지만, 조선시대엔 '군')엔 군수 조병갑이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명목으로 수탈을 일삼자, 그 지역 농민들이 집단화 되었고, 구심점에 서당 훈장 전봉준이 있었습니다. 전봉준은 동학의 하부조직 리더이기도 했습니다.

하늘과 같은 사람- 농민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고부봉기가 있었고, 관군을 무찌른 황토현 전투가 있었으며, 전주성을 점령하는 혁명군이 되었습니다.

정부가 취한 조치는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왕실의 안위를 위해 외세로 자기 백성을 멸하는 권력은 이미 생명을 다했다고 봐야지요. 청나라 군대가 들어오고 일본군이 들어왔으며, 둘이 격돌해 일본이 승리하면서 점차 조선은 일본의 손아귀 속으로 들어갑니다.

동학농민운동은 성공했을까요?

광주민주화운동은 성공했을까요?

'민주화 운동이 무엇일까'를 말할 때 이런 비유를 듭니다. 조선시대 광주 사또가 나의 뺨을 때리면 이유물문하고 바로 죽을 죄를 지었다고 용서를 빌어야 하지만, 2018년 광주 시장이 나의 뺨을 친다면 이유불문하고 난 그를 고발할 수 있다는 것으로요.

사람으로서 내가 당당할 수 있음은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광주민주화운동까지 백년 동안 흘린 피의 결과이며, 동학농민운동이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이 패배는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민주화된 지금 나의 자유는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 이룩된 것입니다. 민주화운동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체험학습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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