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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백제의 마지막 기억 간직한 부여 역사여행

의자왕은 과연 폭군이었을까?
부소산성 길 정상에 3천궁녀 전설 낙화암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 전형적 역사 본보기

2018년 06월 14일(목) 19:12
부소산성 길따라 오르면 정상에서 만나는 낙화암.
역사여행으로 아이들과 함께 부여를 찾습니다.

"삼국시대는 세 나라가 있었는데 어떤 나라가 있었지?"

"고구려 백제 신라요."

"고구려 하면 누가 제일 먼저 떠오르니?"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주몽"

"그럼 신라하면 누가 제일 먼저 떠올라?"

"김유신이요. 김춘추요. 박혁거세요." 앞다투어 위인전기로 다뤄지는 인물들을 말합니다.

"자. 그럼 오늘 우리가 가는 백제 하면 뭐가 떠올라?"

"의자왕이요, 삼천궁녀요, 계백이요."

백제하면 떠오르는 인물로 의자왕이나 계백 그리고 삼천궁녀를 말하는 것은 어린이 뿐만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삼국시대를 역사로 공부하는 우리에게 고구려와 신라는 왕조의 시작이나 전성기때 인물이 떠오르며 강한 나라였다는 인상을 남기지만, 백제는 망할 당시의 사건이나 인물이 백제의 이미지로 떠오릅니다.

그것은 지금 이전의 세대도 그러하였고, 더 앞선 역사시기 조선, 고려, 더 멀리는 백제가 망할 당시부터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라는 말의 전형적인 본보기이지요.

한강 주변에서 시작된 백제는 고구려에 밀려 개로왕이 전사하며 5백년 도읍지를 떠나 웅진(공주)으로 급히 옮겨왔고, 70년후 재기를 위해 터를 잡은 곳이 사비, 지금의 부여입니다.

678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백제, 그 마지막 기억이 있는 부여. 그러기에 부여로 역사여행을 가면 백제이야기가 주가 되어 부소산성, 정림사지, 부여박물관, 백제왕릉원, 궁남지를 코스로 돌게 됩니다.

낙화암은 안 가요? 백제의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낙화암 또한 백제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이지요. 낙화암은 부소산성 길따라 오르면 정상에서 만납니다.

백제의 왕궁이 있었을 것이고, 그 왕궁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 부소산성입니다. 부소산성에는 아직도 백제 당시의 토성의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산성 길을 따라 오르면 꼭대기 백화정 지나 낙화암에 닿습니다.

3,000궁녀 전설을 받아들이기엔 왜소한 규모의 낙화암. 떨어질 타(墮)에 죽을 사(死)를 써서 타사암이라 불려지던 것이 시인묵객들의 감상이 더해져 낙화암이 되었고, 소설로 노래로 불려지며 삼천궁녀는 백제 의자왕의 폭정을 더 한층 강조하게 되는 사실 아닌 역사가 되어 버렸지요.

낙화암을 올랐던 반대길로 내려서면 고란사에 다다르고, 고란사 나루터에서 백마강을 가로지르는 황포돛배를 타고, 백제 구드래 나루터에 이릅니다. 이 구드래 나루터에서 660년 백제 의자왕과 백성 1만2,000명은 패망한 고국을 떠나 당나라로 압송됩니다.

7월 여름이었습니다. 의자왕은 생포되어 항복의식을 치릅니다. 적군 장군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겠지요. 두 달 뒤 당나라로 끌려갔고 그 해에 병사합니다.

1335년이 지나 1995년 부여에서 의자왕 무덤찾기 팀을 꾸려 중국을 향합니다.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들'을 이리 저리 찾아보지만, 패배해 잡혀온 인근 나라 왕의 무덤을 누가 기억하고 있었겠습니까. 하남성 낙양을 기반으로 그 동안 세워졌다 스러진 중국 땅의 왕조도 여럿이며, 세월마저 천삼백년인데요.

무덤을 찾을 길 없어 낙양 북망산의 흙 한 줌과 함께 백제 의자왕의 영혼은 백제 도읍 사비로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백제왕릉원 의자왕단입니다. '릉'이 아닌 영혼을 모신 '단'이란 이름의 비석이 봉분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2000년의 일입니다.

의자왕의 영혼은 중국 낙양의 흙 한줌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을까요? 아니면 시신이 묻힌 그 자리를 못벗어나고 아직 당나라땅 중국에 있을까요?

아니, 그의 영혼이 어디에 있는가 보다는 그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는게 먼저일 성 싶습니다.

의자왕은 충신들의 말을 흘려들으며, 삼천궁녀를 거느리고 부패와 타락을 일삼아 망국으로 이르게 한 폭군이었을까요?

인류 역사가 있고 무수한 나라가 건국되고 멸망했습니다. 멸망하는 나라의 지배층은 죽거나 기득권을 잃게 되고, 피지배층은 새로 들어선 지배층에 다시 충성해야 살 수 있으며, 새로운 지배층은 피지배층을 감싸 안아야 완전한 통합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피지배층의 충성을 돋우려 이전 지배층의 무능력과 탐욕을 돋보여야 했겠지요.

이전 집단의 마지막 대표자를 폭군 내지는 무능력한 왕으로 규정하고 새역사를 써야 했으니, 의(義)롭고 자(慈)애로운 이름을 가진 의자왕도 그 피해자가 아니었을지 의자왕 편에 서서 잠시 생각해 봅니다.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