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는 '그림은 실제 자체가 아니다. 납작한 캔버스 위에 물감과 붓질로 그려지는 조형이다'라고 했습니다. 600년동안 서양미술을 지배했던 재현주의를 부정한 바로 이 인상주의가 현대미술의 시작입니다."

지난 19일 오후 3시 광주시립미술관 대강당에서 열린 미술관 아카데미 네번째 강의 주제는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이었다.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경기대 미술경영학과 교수는 명강사 다운 열정적 강의로 2시간 동안 청중의 눈과 귀를 붙들었다.

이번 강의는 1945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한 서양현대미술인 추상표현주의와 엥포르멜에 관한 내용으로 진행됐다. 이 사조의 영향을 받은 한국현대미술까지 살펴보는 시간으로 이어져 유익한 시간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추상은 작가 내면의 영감을 쏟아내거나 하는 것들로 다소 기이하게 해석되고 있다"며 "추상이란 논리적인 것이며 반성해 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앵포르멜에 대해 "서양 근대가 시작되는 2차 세계대전은 전통적 삶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촉발시키는 중요한 분기점이었으며, 그동안의 과학과 합리주의 등에 대한 격렬한 반성, 거기에서 엥포르멜이 등장한다"고 말했다.

2차대전을 겪고 난 전후 유럽사회에서 겪은 심리적 트라우마를 캔버스 표면 위에 쏟아놓은 것이 바로 앵포르멜이라는 설명이다. 물감과 붓질로 그려지던 가시적인 것들을 벗어던지고 캔버스에 폭력적으로 짓이기듯 물감을 얹어놓는 형태, 인간의 의지나 조형적 사고를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물질 스스로가 충분히 이야기하고 발화하게 하는 것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추상표현주의와는 '결'이 다르다고 했다.

장 뒤 뷔페나 장 포트리에 등 앵포르멜 작가의 작품에 대해 화면으로 감상하고 이해를 돕는 시간에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메모를 하는 손길들이 분주해졌다. 이날 청중들은 10대의 학생에서부터 은백의 노신사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분포를 보였다.

박 교수는 이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대해서는 "추상 그림 앞에서 대체 뭘 그렸는가 묻는 것은 우문이자 넌센스"라고 밝힌 뒤 잭슨 폴록, 월렘 드 쿠닝, 디벤콘, 사이 톰블리, 필립 거스톤 등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자료를 소개했다.

"액션페인팅을 했던 잭슨 폴록은 이젤 페인팅에서 벗어나 캔버스의 천을 바닥에 깔고 천 위로 들어가 버렸죠. 그리는 태도 자체가 그림이 된 겁니다."

한국 작가로는 앵포르멜을 받아들여 군복 천에 물감을 짓이겨 작품을 만들었던 박서보나 붓질로만 보여줬던 이강소, 동양화 작가 김호득, 그밖에 윤명로, 하종현, 홍정희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도 화면으로 소개됐다.

그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도 서양 현대미술의 궤적을 받아들이며, 여기에 우리의 전통의 세계를 집어넣으려 노력해왔다는게 제 생각"이라고 밝혔다.

강의가 끝나고 이어진 질문 시간에도 여기저기서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추상미술이 추세라면 미술이 나중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물음에 박 교수는 "시대마다 바뀌는 미술의 인식 전환을 정확히 알고 보는게 중요하다"며 "오늘날 화가들이 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의 이해 바탕 위에 나는 무슨 미술을 할까 자기 식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60대의 한 여성 수강생은 강의가 끝나고 "앵포르멜에 대해 그동안 몰랐던 것들, 폄하했던 것들을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광주시립미술관이 올해 처음으로 개설한 미술관 아카데미 강좌는 '서양현대미술'을 주제로 인상주의부터 미디어아트까지 서양미술사를 시대순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오는 12월까지 9회 진행되며, 7월 17일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진휘연 교수가 팝아트와 개념미술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다. 모든 강의는 무료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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