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서른의 세월 동안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온 발달장애인 혜정 씨의 중얼거림이다. 혜정 씨는 중증 발달장애를 안고 태어나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살게 된다. 그의 한 살 언니인 저자 장혜영 씨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던 동생을 위해 혜정 씨를 장애인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신간 '어른이 되면'은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400일의 일상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다큐멘터리 감독 겸 유명 유튜버로 발달장애로 차별당했던 동생의 어린 시절부터 시설에서 나와 함께 살게 된 과정, 함께 살며 겪는 동거 이야기, 사회 적응기 등을 섬세하게 들려준다.

그들의 어린 시절, 할머니는 혜정 씨를 가리키며 "저것 죽이고 나도 죽으련다"를 연발했고, 끝내 13살이 되던 해 장애인 시설로 옮겨 가게 된다. 부모님의 이혼과 큰 언니의 기숙사 생활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장애인 시설에서의 혜정 씨는 말썽꾸러기였다. 그가 크게 소리를 지를 때마다 시설 사람들은 한 움큼의 약을 먹여 조용히 시키곤 했다. 말 그대로 인권 유린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혜정 씨를 시설 밖으로 데려온 저자는 동생의 사회 적응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녀들의 일상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지원받은 투자금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을 진행하게 되고, 팀원들과 동생 혜정 씨는 서로 관계를 맺고 도움을 주고받는다. 저자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우린 모두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이라며 "삶을 지탱할 때에는 완벽하게 스스로의 노력으로 유지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주변의 도움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저자는 동생 혜정 씨가 최대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친구를 만들 수 있도록 했고, 음악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친한 지인에게 개인 과외를 부탁하기도 했다. 음악을 배우고 즐기면서 연말 공연이라는 목표까지 세운 그들은 활동 보조 서비스 신청 앞에 다시 한번 세상의 벽을 느낀다. 활동 보조 서비스 시간을 주기 위해 진행된 심사에서 중요하지도 않은 개인사 질문을 하는 등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장애인 하나하나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에 대한 고찰로 이어진다.

혜정 씨가 탈시설을 감행했다는 건, 단순히 한 개인의 가정사를 뛰어넘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생각 울타리를 넘는 일이다. 나아가 우리 개인이 모든 상황과 사람을 만나며 쳐놨던 잘못된 생각 울타리를 부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묵직하고 불편한 내용을 통해 지금 이 사회와 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저지르고 있는 차별적 언어와 행동에 대해 돌아보게끔 만든다.

두 자매는 다큐멘터리 OST로 사용됐던 음원 CD를 책 부록에 포함시켰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 '등대 괴물' 등 직접 만들고 부른 음원 6곡과 혜정 씨의 친구가 된 다큐멘터리 팀의 인터뷰 등이 수록돼 있다. 또, 두 자매의 일상이 찍힌 사진과 혜정 씨가 그린 삽화는 읽는 중간 소소한 재미를 전달한다.

우드스톡. 290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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