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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경주 대왕암·무장사 터·감은사지 석탑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
삼국통일 위업 완성 신라인들의 이상 군주

2018년 08월 09일(목) 19:05
문무대왕은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며 화장해 동해바다에 뿌릴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문무대왕이 묻힌 바위, 경주 감포바다 대왕암 앞.
역사여행 팀을 꾸려 경상도 경주로 향하는 길, 광주 출발하며 묻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와 기아 타이거즈가 야구를 하면 어디를 응원하지요?"

당연 기아란 답이 돌아옵니다.

"그럼 대구 사람들은 어느 팀을 응원할까요?"

"대구에선 당연 삼성이겠지요. 그런데 한국팀이 일본과 야구를 하면 광주에선 한국팀을 응원하고 대구 사람들은 어디를 응원할까요?"

"대구에서도 당연 우리 한국팀을 응원하겠지요."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한 팀을 응원하는 지역공동체가 된 게 언제부터였을까요?

한반도가 한 공동체가 된 것은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온전한 한반도는 아니었지만, 신라의 삼국통일로 한반도 사람들이 한 국가를 이뤘고, 한반도에 국가가 생기기 전까지 소급해 단일민족이라는 공동체로 묶게 됩니다. 신라 삼국통일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반도에 공동체의식이 생긴 것.



감은사지 3층석탑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 때의 왕은?

서기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망하고, 그 이듬해 무열왕 사후 문무왕이 왕위에 올라 668년 고구려, 676년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며 삼국통일을 완성했습니다.

우리가 부르고 있는 왕들의 이름인 세종대왕이나 광개토대왕, 의자왕도 그들이 살아생전 불린 이름이 아니고, 생전의 업적이나 성품에 부합되는 한자를 찾아 사후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신라 30대 문무왕의 문(文)과 무(武). 삼국통일 전쟁 최후의 승자인 문무왕은 무에서도 탁월했을 것이며, 통일 후엔 화합과 안정을 기치로 통일후 강국의 면모를 보였으니 문에서도 역시 그 역량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문무왕의 이름은 당시 신라인들이 이상으로 생각하던 군주였을 것입니다.

역사여행 주제를 '신라통일'로 삼는다면 문무왕을 찾아갈 것이고, 고대왕국 왕이니 만큼 의례히 거대한 무덤쯤은 남겨졌을 것이니 문무왕릉이 일번 코스가 됩니다. 헌데 문무왕은 무덤이 없습니다.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문무왕의 아버지 태종무열왕의 무덤은 봉분과 호석, 비석이 남아있으며, 통일의 또 다른 주역인 김유신의 무덤 또한 왕릉급 규모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문무왕릉은 이전의 신라왕들처럼 땅에 거대한 봉분을 쓰지도 않았고, 봉분이 없으니 능을 지키고 치장하는 장식물도 없으며, 능비 또한 남겨져 있지 않습니다. 문무왕릉이라고 전해지는 곳은 동해 바다에 존재합니다. 대왕이 묻힌 바위, 대왕암이라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며 화장하여 동해바다에 뿌릴 것과 검소한 장례를 유언으로 남깁니다.

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은 전쟁에서 파생되는 여러 폐해와 피로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대왕국의 전쟁은 일대일 병장기가 부딪히며 눈 앞에서 목숨을 뺏어야 하고 반대로 목숨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전쟁은 왕이건 일반 백성이건 가장 원초적 욕구인 안전을 해하는 두려움입니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은 그의 투구를 땅에 묻습니다. '전쟁은 끝이다'라는 바람입니다. 경주 무장사 터에 그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투구 무에 감출 장을 쓴 절 이름입니다.

그리고 문무왕 답사 길에 빼놓을 수 없는 감은사지에 들립니다. 국가를 수호하는 진국사라는 이름으로 문무왕대에 공사를 시작해 그의 아들대에 완성하며 은혜에 감사하다는 감은사로 개명됩니다. 선왕 아버지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이지요. 감은사가 답사여행객들에게 감흥을 더해 주는 것은 두 기의 석탑이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의 자신감을 표현한 석탑, 안정감과 상승감이 동시에 표현된 당당한 탑은 천 삼백년이 흐르고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감은사지에서 대종천 따라 2km 못미쳐 드디어 대왕암에 닿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항상 하얀 파도를 일으키는 감포 바다. 지척 거리에 수중릉으로 전해지는 대왕암이 있습니다.

닿을 듯한 저 바다에 무덤을 썼다 안썼다는 증명되지 않는 사실을 떠나 동해바다 수중릉을 보면서 문무왕의 파격을 생각해 봅니다. 삼국통일 당시의 왕릉이라면 의례히 그 규모가 있었을 것이며 왕의 장례식은 성대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무왕은 유언으로 남깁니다. 검소한 장례식, 호화 분묘 조성금지.

죽은 왕의 무덤을 조성하는데 산 사람들의 노동력이 들어가고, 죽은 이를 모시는 제례에 산 사람들이 먹을 음식이 버려지는 그런 허례허식과 비생산적인 격식을 깨트리려 하지 않았을까.

대왕암 앞에 서면 끝없이 펼쳐진 파란 물과 하늘과 맞닿은 그 물길에 눈이 갑니다. 문무왕도 이 바다를 보았을 것이고, 지금 우리도 이 바다를 보고 있습니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 역사 기록이 있기 전부터 변함없는 법칙입니다. 여름. 더워봤자 한 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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