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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용과 역사여행<33> 수원화성

정조, 왕권강화 일환으로 신도시 건설

2018년 10월 11일(목) 10:47
수원화성에서 펼쳐지는 무예 시범
수원화성은 성곽 둘레 길이만도 5.6km로 전체코스를 돌기 어렵다면 화성 전체가 보이는 서장대에 올라 보길 권한다.
장안문은 한양의 남대문보다 더 큰 규모이며 정조가 황금군복을 입고 자신감을 보이며 들어섰던 문이다.


역사 교과서에 조선사회의 새로운 움직임이라는 대주제 아래 영조 정조시기의 사회발전이라는 단원이 있습니다. 영조와 정조 시기를 함께 묶어 한단원을 이루며 설명글과 함께 사용되는 삽화로 수원화성과 성을 쌓았을 때의 도구들이 보입니다. 제가 진행하는 시대순 역사여행도 각 시기의 유적지를 찾아 공부하기에 영정조 시기는 수원화성을 찾게 됩니다.

수원화성은 이름대로 수원에 있습니다. 지금의 수원은 정조 임금때 계획적으로 세워진 신도시입니다. 정조임금 이전 시기 원래의 수원은 지금의 화성시이며 정조가 한양 외곽에 있던 아버지의 무덤을 원래의 수원으로 옮겨오면서 그 인근에 살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터전으로 닦아 준 곳이 지금의 수원화성입니다.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차기 왕권이 예약된 세자, 그의 아들인 정조, 세자의 아버지이자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 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 등의 가계도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출발합니다.

영조는 마흔이 넘어 어렵게 얻은 세자를 뒤주 속에 갇혀 죽게 합니다. 기록으론 뒤주에 갇혀 죽은 세자를 정신병자로 몰기도 하지만, 정권싸움 또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조선은 신권과 왕권의 대결과 조화로 유지된 왕국입니다. 왕은 때론 신하들의 파벌을 이용해 권력을 강화하기도 했지만, 신하들 또한 왕을 이용해 반대파를 숙청하기도 했습니다. 영조 앞대의 경종을 지지하는 파들과 영조를 지지하는 파, 영조 다음에 왕권을 거머쥘 세자를 지지하는 당파들의 힘겨루기 싸움에서 희생의 이유를 찾기도 하지요.

정조는 열한살 때 스물여덟인 아버지를 잃었고, 스물다섯이 되어 조선 22대 왕에 오르고, 아버지의 무덤을 격상하고 다시 명당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아버지의 명예회복과 아들인 자신의 정당성을 세우려 합니다. 동시에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한양이 아닌 새로운 곳에 자신이 직접 기른 젊은 신하 정약용에게 계획안을 세우게 하고, 좌의정이 공사 총책임자가 되어 튼튼한 성을 건설합니다. 10년의 계획은 2년 9개월 만에 마무리 되며 이 성이 곧 수원화성입니다. 공기의 단축은 정약용이 고안한 다양한 장비들도 한 몫을 했고, 의무동원이던 관례를 깨고 인부들에게 품삯을 챙겨주는 시스템 도입을 이유로도 삼습니다만 무엇보다 신도시 건설을 밀어붙이던 왕의 힘이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수원화성을 가면 먼저 화성행궁을 찾습니다. 행궁은 옮겨온 궁궐로 왕이 한양 궁성을 떠나 성묘나 휴양 또는 피난시 머물기 위한 곳입니다. 화성행궁은 화성 안에 있는 임금을 위한 임시궁궐이었고 여기에서 스물여덟에 홀로 되어 환갑을 맞은 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한 잔치가 벌어진 곳입니다. 한양 아닌 곳에서 벌어진 왕가의 축하행사, 회갑 잔치를 위한 대규모 이동대열은 지금도 화성행차란 이름으로 수원화성축제의 하이라이트로 펼쳐지고, 행궁 봉수당에서 차려진 회갑잔치상과 축하 공연 또한 재현됩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 당시 모습 그대로요.

조선은 기록의 국가입니다. 국가의 주요한 행사는 행사보고서인 의궤라는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화성과 관련된 의궤는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임금의 행차와 회갑 잔치를 정리한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화성 건설의 전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가 전합니다.

수원화성은 1997년 등록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심사때 화성은 현대에 재축조된 시설물이기에 세계유산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불가 판정을 뒤엎는데 사용된 근거가 의궤입니다. 성을 쌓는 동안의 계획과 비용, 인부들의 작업일수와 품삯까지도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때 파괴되어 복원된 시설임에도 200년 전 모습 그대로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화성은 성곽 둘레 길이만도 5.6km입니다. 전체코스를 돌기 어렵다면 화성 전체가 보이는 서장대에 올라 보고 시계방향 길따라 장안문까지 걷고 내려와 장안문을 통과해 보길 권합니다. 장안문은 한양의 남대문보다 더 큰 규모이며 정조가 황금군복을 입고 자신감을 보이며 들어섰던 문입니다. 그리고 수원화성에서 꼭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행궁 앞에서 펼쳐지는 무예 24기 시범공연입니다.

정조는 열한살 때 아버지를 잃고, 영조의 명으로 양아버지의 아들로 올려지며 친아버지는 잊혀진 존재가 됩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기억이 잊혀질리야 있겠습니까. 아버지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원인을 밝히고 그 무리들에게 복수를 행하리란 인간적 감정 또한 있었겠지요. 왕이 되고 나서는 바로 복수가 아닌 힘을 기르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문(文)으로는 규장각을 만들어 정약용 같은 똑똑한 젊은이들을 직접 육성하였고, 무(武)로는 장용영을 만들어 친위 호위무사들을 양성합니다. 그 장용영 병사들의 무예가 바로 수원화성에서 펼쳐지는 시범공연입니다.

여행길에서 먹거리 또한 빼놓을 순 없겠지요. 수원음식은 뭐가 유명해요? 아이들도 이구동성으로 “갈비요”라고 말합니다. “그래 수원 왕갈비.”

그런데 왜 수원에선 갈비가 유명할까? 그 얘긴 현장에서 해야겠지요. 마침 이번 주에 수원화성 코스가 잡혔네요.

/체험학습 동행 (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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