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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용과 떠나는 역사여행<37> 운현궁의 결정

흥선대원군은 어떤 개혁의 칼날을 휘둘렀을까

2018년 12월 06일(목) 17:31
운현궁 사랑채 노안당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학생들.
또다른 안채로 사용했던 이로당.
여러 이익집단과 수많은 개별 사람이 모인 국가에는 많은 일들이 있고, 최대한의 공리를 생각하며 국가의 좌표를 설정할 때 마지막에는 한사람의 결정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2018년 대한민국의 최종 결정권자는 누구일까? 흔히 ‘청와대의 생각’ 이니 ‘청와대의 결정’으로 표현되는 바로 대통령이라는 자리이지요.

역사여행이니 시간을 돌려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국정 최고 결정권자는 누구였을까. 조선시대이니 당연 왕이 아니었을까요?

1863년 조선의 26대왕 고종이 12살에 왕위에 오르고, 그의 아버지가 정치 전면에 포진합니다. 그 유명한 흥선대원군. 왕자가 아닌 이가 왕위에 오르면 그 아버지는 ‘대원군’의 교지를 받게 되어 고종의 아버지는 흥선군에서 흥선대원군이 됩니다. 조선시대 대원군은 전체 4명이 있었는데, 셋은 사후에 받은 호칭이고, 흥선대원군은 살아서 대원군의 칭호를 받아 실재 대원군의 역할을 했으니 우리는 ‘대원군’하면 으레 흥선대원군을 연상합니다. 그가 살았던 곳이 운현궁으로 당시 ‘운현궁의 결정’이라는 말을 지금 용어로 바꾸면 청와대의 생각은 뭔가라는 말로 대치 가능합니다.



운현궁에 쓰인 ‘궁’은 원래 궁궐에 붙은 용어이지만, 왕의 아들이 아니면서 왕이 된 이가 어렸을 적 살았던 집도 ‘○○궁’이라고 부릅니다. 고종이 임금이 되기 전 12살까지 살았던 집이 ‘운현궁’으로 승격되었고, 그 운현궁에는 왕의 부모님이 거주합니다. 조선에선 나이 어린 왕이 즉위하면 어린 왕을 대신해 궁궐 내 최고 여자 어른이 대신 정치를 하는 구조이지만, 왕의 아버지 대원군이 생존해 있었고, 흥선대원군은 권력에 대한 의지와 개혁의 구상도 있었으니 ‘운현궁의 생각과 결정’은 조선의 국정 지표가 됩니다.

운현궁은 고종이 즉위하면서 그 규모가 커집니다. 출입문만도 네 곳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사랑채 역할을 했던 노안당, ㅁ자형의 안채로 고종의 혼례를 올렸던 노락당과 또다른 안채로 사용했던 이로당 등 몇 개의 건물만 남아 있습니다. 사랑채인 노안당에는 흥선대원군이 난을 치고 있는 모습과 다른 건물 곳곳엔 당시 역사를 알려주는 모습들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당시 운현궁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결정을 했을까?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는 서구 열강들과 일본 청나라 틈에서 정치하는 이들은 자기 배만을 채우고, 외척들은 허수아비 왕을 세워놓고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탐하는 그 때입니다.

운현궁의 생각과 결정은 일단 바람 앞의 등불을 지키려 바람을 막았습니다. 철저히. 청나라가 외세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고, 유교 문화와는 다른 이질 문화의 폐해를 예상했기에 국가 체계 유지를 위해 외세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 했습니다. 조선의 건국과 함께 세워졌던 경복궁은 임진왜란때 불에 타 270년간 폐허로 남겨졌으나, 흥선대원군은 조선 왕실의 재기를 꿈꾸며 경복궁을 다시 세웁니다.

또한 양반집단의 특권을 줄이고 국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양반들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호포제를 실시하였고, 역사 공부하면 늘상 등장하는 서원철폐를 단행합니다. 서원은 선현을 모시고 인재를 양성하던 순기능은 뒤로 하고, 붕당을 짓고 같은 파벌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세금을 피하는 수단이 됩니다. 눈에 보이는 폐해를 이전 정권에서 손을 보려 하지만 번번히 좌절되고, 드디어 흥선대원군의 추진력에 힘입어 천여개의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정리합니다. 양반을 향한 운현궁의 결정에 여기저기 불만의 소리가 울렸지만, 흥선대원군은 백성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면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초강경 태세를 취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해설할 때면 나름 시원함을 느끼는데, 당시 일반 백성들의 마음 또한 그러했을 것입니다.

당연해 보이는 개혁이라도 기득권을 없애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지금 2018년 대한민국에 온다면 어떤 개혁의 칼날을 휘두를까요?

권력과 재산으로 사람 위에 군림하는 무리들과 서민의 등을 쳐서 부를 축적하는 부류들, 국가재정을 눈 먼 돈이라며 허투루 써버리는 무리들에게 칼을 내려치지 않을까요?

운현궁의 권력은 고종의 나이 22살에 거두어지고, 이후 외세와 내란의 과정에서 대원군이 잠깐 다시 전면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습니다.

이후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포장하고 자주권을 외쳐보지만, 한반도 최단기 존재 역사 13년을 기록하고 나라는 일본의 손으로 들어가며, 그 끝은 남북 분단으로 남겨집니다.

지금 남과 북은 대결구도를 접고 서로의 무기를 걷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외세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기득권자들은 이를 드러내놓고 불만을 말합니다. 당시의 기득권층이 일부 외척과 양반세력이었다면 지금은 곳곳 모든 집단이 기득권층이 되어 이익만을 탐하고 있습니다.

역사여행은 이전의 역사를 바탕으로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생각하는 공부입니다. 미래를 위해서요.

/박상용·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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