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실로 오랜만에 장성에 제법 눈이 내렸다. 늘 결정해야 할 일과 만나 뵈어야 할 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상이지만, 이른 새벽이라면 장성의 절경을 감상하는 데 시간을 오롯이 쓸 수 있을 터. 동이 트기 전부터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축령산을 찾았다.

초입로를 지나 눈길에 남겨진 내 발자국들을 한동안 뒤로 밀어내자, 머지않아 축령산의 자태가 한 눈에 들어왔다.

눈을 맞은 채 사이좋게 어깨를 겹친 하얀 산자락들이 내가 걸어온 산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한껏 휘어진 언덕길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경치를 감상했다.

축령산은 흔히 '기적의 산'으로 불린다. 한 명의 힘으로 일군 숲이기 때문이다. 춘원 임종국 선생이 1956년부터 벌거숭이 땅에 나무를 심어 조림했다.

오를 때마다 감동주는 기적의 산

참빗처럼 가지런히 자란 빽빽한 침엽수림이 유럽풍의 이국적인 정취를 선사한다. 축령산은 이미 세간에 잘 알려진 편백나무 외에도 삼나무, 낙엽송, 테다소나무, 리기다소나무 등 수령 50여 년의 나무가 700여 헥타르 가량 널찍하게 분포된 '나무의 바다'이다.

문득, 일전에 봤던 수묵화 한 폭이 떠올랐다. 축령산을 그린 오윤석 화백의 작품으로, 묵을 묻힌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화폭에 수백 번씩 자국을 내 가며 나무와 이파리들을 표현했다고 들었다. 작품을 감상하며, 그가 그림에 들였을 공과 시간이 가슴으로 전해졌던 기억이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오래 전 누군가는 묘목과 삽을 들고 축령산을 그렸고, 다른 누군가는 그 축령산을 보고 나무젓가락으로 수묵화를 그린 셈이다.

그리고 거기엔 공통적으로, 오랜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누가, 무엇으로 축령산을 그리고 있을까?

돌아보니 나 또한 더 나은 장성을 그리기 위해, 주어진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해 왔다. 지자체 최초의 컬러 마케팅인 '옐로우시티 프로젝트'를 펼쳤으며, 황룡강과 장성호, 축령산의 관광자원적인 가치를 재발견했다.

황룡강 노란꽃잔치로 '백만관광시대'를 열었고, 장성호는 출렁다리와 나무 데크길을 만들어 '명품 트래킹 코스'로 탈바꿈시켰다. 축령산은 숲 자원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하늘다리와 모노레일을 설치해 관광객의 편의를 높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장성군이 지니고 있는 자연환경이 우리 군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부터 비롯됐다. 이처럼 나는 장성의 일진월보(日進月步)를 위해 오늘, 그리고 내일의 모습을 그려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마더 테레사는 그녀 스스로를 '하느님의 몽당연필'이라 칭했다고 한다. 연필 자체는 보잘 것 없으나 하느님은 그것을 이용해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신다고, 그녀는 말했다.

미래장성 군민들이 그리는 것

지금의 장성은, 그리고 앞으로의 장성은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장성을 그리는 연필 내지 젓가락에 불과하다. 모든 그림은 나를 손에 쥔 우리 군민들이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산을 하며 군민께서 나를 더 많이 찾아주시고, 더 많이 써주시기를 축령산에 빌었다. 어떤 그림이 될 지는 걱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너무나도 아름다울' 것이므로.

기해년 축령산에서 만난 새벽 바람은 내일의 희망이 담긴 곡조 없는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