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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용과 역사여행 <43> 삼일절 맞아 찾는 천안

철저한 과거사 청산에 미래 답이 있다

2019년 02월 27일(수) 16:20
유관순 기념관 앞 동상.
유관순 생가


천안엔 독립기념관이 있습니다. 이 연재 글 초기 독립기념관을 소개하며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가 봐야 될 곳이라고 언급했었습니다. 저는 역사여행이 업입니다. 역사여행 또한 다른 이벤트처럼 시의성에 준해 기념되는 날짜마다 기획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삼일절을 기념한 천안 일정은 다른 때에 비해 마감이 빨리 되었습니다. 삼일만세운동 딱 100년이 되는 기념도 소구력에 영향을 미쳤나 봅니다. 2019년 삼일절 천안에선 독립기념관을 돌아보고 유관순 생가와 매봉교회를 찾을 것이고, 유관순 초혼묘에 오를 겁니다.





유관순은 천안에서 태어났고, 서울 이화여고 재학시절 3·1만세 운동으로 학교가 휴교되자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고향에서 서울 상황을 전하며 만세운동을 북돋우고, 천안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잡혀갔습니다. 공주에서 다시 경성에서 형을 선고받고 수감중 삼일만세운동 1주년이 되는 날 옥중 만세운동을 벌여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석방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합니다.

유관순은 묘가 없습니다. 시신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고, 그 자리에 군사시설이 들어서며 이장 공고가 있었으나, 찾을 가족이 없어 묘 또한 잊혀졌지요. 그래서 유관순의 혼을 불러와 묘를 만들어 놓은 곳이 천안 유관순 초혼묘입니다.

가혹한 일제강점기 묻힌 묘조차 찾을 이 없었던 유관순은 해방후 세상에 다시 나타납니다.

유관순은 일본이 물러난 후 1946년 이화여고 교장이었던 이가 이화를 알릴 명목으로 이화학당 출신 중 국가와 민족에 헌신한 인물을 찾던 과정에서 역시 이화학당 교사출신인 이가 제안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념사업회도 만들고, 이후 전기 소설로도 나오고 영화로도 만들어지면서 더욱 영웅화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화여고 교장도 이화학당 교사 출신도 모두 친일 부역자로 활동했다는 것입니다. 친일 단체 간부로 활동하며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내는데 앞장섰던 자신들의 친일 경력을 숨기려 이화학당의 출신인 유관순과 본인들을 엮으려 기획했다는 것이지요.

이화여중고의 교장은 한국인 최초 교장이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고, 유관순을 추천했던 이화학당의 교사는 본인이 세운 학교 이사장이 되어 친일의 죄는 덮어진 채 생을 마쳤을 것이고, 그 후손들은 선대가 남긴 유산 속에서 잘 살고 있을 겁니다.

만세운동을 하던 18세 여학생의 죽음을 기억하게 해준 걸로 감사해야 할까요. 유관순은 만들어졌다고 해도, 일반명사의 유관순은 실재 존재했습니다.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는 3.1 운동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대략 7,500명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유관순의 이름 속에는 7,500의 목숨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권력과 재산을 갖고 있는 이들은 그것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주권을 되찾으러 의병이 되거나, 국외로 넘어가 독립운동을 했지요. 권력과 재산을 지키는 또다른 방법 - 일본에 붙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살 길은 일본에 있다는 선동으로 35년을 주권이 빼앗긴 나라에서 더 잘 살아갑니다. 그리고 일본은 물러났지만, 단죄되지 않았던 친일세력들은 여전히 권력과 재산을 가졌고, 그 후예들은 아직까지도 사회지도층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외세에 의해 되찾아진 나라, 친일파들은 살아남으려 비빌 언덕을 찾아 이승만 독재에 편승했고, 다시 5·16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고 이어지는 유신독재의 버팀목이 되었으며, 광주를 짓밟고 정권을 탈취한 세력들을 찬양하며 그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2차대전 후 독일 나치에 협력했던 대상자들을 처벌한 사례로 프랑스를 듭니다. 나치 협력 혐의조사 대상자가 200만명, 체포 99만명, 6,700명 사형, 수십만의 공무원 군인 해직, 그리고 독일 지배 아래에서 2주 이상 발행한 신문은 무조건 폐간시키고 재산을 압수해 버렸습니다. 지금도 그때 부역의 증거가 나오면 공무원에서 해직되며 재판받고 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친일 안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때의 일을 지금 들춰내서 무슨 소용이 있으며, 미래를 향해 나가야지 왜 과거에 살고 있느냐는 얘기를 합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합니다. 과거의 죄과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미래로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드골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앞으로 프랑스가 다른 나라로부터 외침을 또 당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때처럼 우리나라를 배신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철저한 청산에 그 답이 있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외침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처럼 독립운동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독립운동하면 나뿐 아니라 후손들 또한 빈곤 속에 살아 갈 것이고, 외세에 협력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더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정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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