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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용과 역사여행<44> 서울 암사동 유적

6천년 전 한국 신석기시대 집자리 복원

2019년 03월 14일(목) 18:25
암사동 유적 빗살무늬토기.
사적 제267호 서울 암사동 유적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 곳이다.


제가 진행하는 역사여행 프로그램 중 ‘동행누리’란 기획 일정이 있습니다. 3월부터 10개월 과정으로 한달에 한 번 선사시대부터 시대순으로 역사여행을 떠나는 것이지요. 버스 한 대 정원을 꽉 채우고 대기가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새봄인 이번주 2019년 동행누리가 시작됩니다. 첫 시작인 선사시대 유적은 어디로 가면 좋을까. 3월 첫 시작인지라 교과서에도 나오고, 이것하면 바로 아하 라며 반응이 나오는 곳을 찾게 됩니다. 서울 암사동을 갑니다. 암사동? 울림이 전혀 없으시다면 이 방면 공부를 전혀 안했던 것이겠지요.





사적 제267호 서울 암사동 유적.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 곳입니다.

‘선사’에서 선(先)은 먼저라는 뜻을 갖고 있고, 사(史)는 역사할 때의 사로 역사 이전 시기를 말합니다. 선사와 역사의 구분은? 아이들은 바로 대답합니다. 문자로 된 기록이 있냐 없냐의 차이. 문자로 된 기록이 없으니 그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나 물건을 통해 어떻게 살았을까를 공부합니다.

암사동 유적은 서울 강동구에 있습니다. 강동구는 한강을 기준으로 이름 지어진 서울의 자치구입니다. 한강 남쪽은 강남, 북쪽이면 강북, 서쪽은 강서, 동쪽은 강동.

강 동쪽 암사동은 바로 강 옆이라 아주 오랜 시절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입니다. 강변은 물을 얻기 편한 반면에 큰물이 질 땐 삶의 공간을 쓸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무리를 지어 살던 사람들이 홍수로 터전이 무너지면 새로운 자리로 옮겨가고, 누군가는 옛 터전 위에 다시 집을 짓고 또 홍수가 나고, 흘러온 흙들이 쌓이고 산 자들은 돌아와 집을 지어 이전 사람들의 터전을 덮고를 반복했을 것입니다.

반복된 그 자리 1925년 을축년 어느 날. 또 한번의 심한 홍수가 납니다. 쓸려간 마을을 수습하던 중 유물로서 가치가 있는 수천년 전 옛사람들 물건이 자동차 몇 대분으로 나옵니다. 그 중 하나가 박물관에서 그리고 역사책에서 보는 빗살무늬토기입니다. 바닥 끝이 뾰쪽하고 그릇 표면에 빗살무늬가 그려진 그 토기.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정리되어진 한국의 신석기시대.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개발과정 중 을축년 물난리 흔적 파편들은 여전히 쏟아지고, 지표면에서 내려갈수록 이전 시기 흔적이 보이며, 빗살무늬토기를 썼던 사람들의 집자리까지 발견되게 됩니다. 6천년 전 사람들의 집자리를 원형으로 복원해놓고, 전시관을 만들어 놓은 곳이 바로 서울 암사동 유적으로 선사시대중 석기시대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석기시대를 둘로 나눌 때 구석기와 신석기로 구분하며 그 둘의 경계선은 돌이 석기로 얼마만큼의 정교함이 가해졌는가로 구분합니다. 깨트리고 손질해 손에 잡히는 돌을 썼으면 구석기이고, 이전 시대보다는 더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썼을 때를 신석기로 구분합니다. 한자로 타제석기, 마제석기라는 표현을 쓰지요. 그리고 구 신석기 구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바로 토기의 사용입니다. 신석기시대에 그릇이 등장합니다.

인류는 무수한 발명품으로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 첫 발명품이 바로 그릇입니다. 흙과 물과 불의 조화로 이전엔 보지 못한 새로운 물건이 출현되는 것이지요.

토기는 정착생활, 열을 가한 음식의 조리 등 이전시대와는 다른 여러 생활변화를 상징합니다.

많은 교육자료들이 넘쳐나는 시대라 아이들이 빗살무늬토기의 이름, 모습, 활용에 대해선 잘 알고 옵니다. 평면이 아닌 뾰쪽 바닥은 모래 위에 세웠기 때문이며, 빗살무늬는 태양의 빛을 상징하다는 등.

그럼 빗살이 뭘까? 빛으로 많이들 알고 있습니다. 한자어가 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빗살무늬토기, 한자어로 즐문(櫛文)토기라고 합니다. 櫛 - 빗 즐자. 머리 빗는 빗무늬를 만들어놓은 것 같은 토기, 시베리아 지역에서 한반도 북동쪽으로 들어와 한강유역에서도 보이는 토기입니다.

아이들과 여행에선 지금의 나의 가족과 빗살무늬를 썼던 당시의 가족을 비교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당시의 불편과 무지를 많이 언급합니다. 암사동 빗살무늬토기를 쓰던 사람들에 비해 지금 사람들이 현명하고 슬기로울까.

3월이면 아침 일찍 출발하는 버스에서 춥다고 히터를 켜달라고 하는 주문에 이어 한낮엔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주문합니다. 조금의 불편함도 못참는 현대인의 한계. 그러면서 미세먼지로 외출을 염려하며 미세먼지 원인으로 정부 탓과 이웃나라 만을 탓하고 있습니다. 내 몸을 위협하는 미세먼지는 잠시도 내 몸의 불편을 참지 못하는 나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빗살무늬토기를 썼던 사람들은 지구를 아프게 하는 쓰레기는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미세먼지 이유로 외출을 경계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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