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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용과 역사여행 <45> 충주 고구려비

충주 입석마을서 국내 유일 고구려비 발견
천오백년 전 ‘고려대왕’ 기록 전해…‘코리아’의 기원

2019년 03월 28일(목) 10:44
고구려비 전시관에 보호되어 전시중인 충주 고구려비.
신라 때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 충주 탄금대.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천하를 다스린다.’ 중국의 분열시기에 패권을 차지하는 과정에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중국에서 중원은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의 노래말에도 나오는 낙양과 진시황 병마용으로 유명한 서안 일대로 황하가 흐르는 중국대륙 가운데를 말합니다. 중국의 중원처럼 우리나라도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한반도 패권을 쥐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실제 이름도 중원으로 불리었고, 고대국가를 대표하는 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는 중원 패권을 놓고 격돌하며 그곳을 차지했을 때 가장 힘이 강했었습니다. 중원은 충주의 옛 지명입니다. 중원, 충주를 갑니다.



1979년 어느 날 충주에서 고구려 비석이 발견되었습니다. 고구려 당시의 이름은 잊혀져 새로 지어진 이름이 중원고구려비였고, 지금은 충주고구려비가 정식 명칭입니다. 현존 고구려비는 20세기 초에 확인된 광개토대왕비와 2012년 최근 중국에서 발견된 또하나의 비석, 그리고 충주 고구려비 세 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음에도 고구려의 역사 흔적은 귀합니다. 영토 대부분이 지금의 북한과 중국땅에 있었던지라 역사여행으로 직접 유적지를 찾아 가기가 쉽지 않는 일인데, 발견된 3개의 비석 중 하나가 충주에 있어 고구려 주제 여행때는 충주를 찾게 됩니다.

고구려비는 충주 입석(立石)마을이란 곳에 서 있었습니다. 국가 이벤트로 세워졌을 기념비는 나라가 망하고 사람들도 이리저리 흩어져 천오백년의 세월이 흘러 대장간의 기둥으로 쓰이다 마을 입구 이정표로 쓰이다 홍수로 넘어지고 다시 세우며 재기를 다짐했던 마을 상징 돌이 되었습니다. 충주 답사동호회에서 선 돌에서 글자 흔적을 확인하고 대학 발굴팀의 고증을 거쳐 고구려 비임이 밝혀져 지금은 고구려비 전시관에 보호되어 전시중입니다.

충주고구려비에서 비롯된 전시관은 충주의 역사부터 시작해 고구려 역사를 거쳐 마지막 방에서 고구려비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비는 4면에 500여 글자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마모되어 판독되는 것은 200여자 정도로 어느 때 누가 왜 세웠다는 것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다른 기록과 맞추어 당시 삼국관계를 다시 확인시켜주는 비석입니다.

일행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글자를 찾아봅니다.

네 면 중 편의상 제1면. 실재 비석에서는 눈으로 확인키 어려웠으나, 레이저 기법으로 한 글자를 확인했습니다. 巡(순). 고구려왕이 새롭게 개척한 땅을 돌아봤다 정도로 덧붙이기 해봅니다.

2면엔 9 글자가 확인되는데 고구려의 관등명으로 여겨지고, 가장 많은 글자가 확인되는 3면에는 당시 신라와의 관계나 역사 사실을 추측해 볼 수 있으며, 4면은 시기와 지역을 알 수 있는 글자들이 보입니다.

4~5세기는 가야를 포함한 삼국시대의 격동기입니다. 371년 백제 근초고왕이 고구려 고국원왕을 죽이고, 396년 고국원왕 손자인 광개토대왕은 백제 한성에 들어가 백제왕의 항복을 받아내고, 400년 신라에 쳐들어온 백제와 왜 그리고 가야 세력을 뒤흔들어 금관가야의 몰락을 가져온 고구려, 475년엔 장수왕이 백제 개로왕을 죽이고 한강을 차지하고, 481년엔 신라 북쪽을 차지해 중원에 국원성을 설치합니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고구려비로 위상을 갖고 있는 충주고구려비는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 고구려의 관등조직과 인명, 그리고 고구려에도 이두식 표기가 사용되었다는 정보 등 천오백년 전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지식으로서 역사 정보를 얻었고, 지금 우리에게 충주고구려비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충주고구려비에는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라는 국명을 쓰기도 했던 고구려는 6세기 신라 진흥왕에 밀리고, 7세기엔 신라에 합쳐졌지만, 신라는 분열후 다시 고려로 이어졌고, 고려는 영어 ‘코리아’의 기원이 되어 2019년 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구려는 그리고 고려는 지금 코리아의 원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과거 고구려 땅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중국은 범국가적 프로젝트를 벌여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필요로 짜맞추려 합니다. 그 술책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고구려’라는 이름엔 들어 있습니다.

한반도의 코리아는 고구려를 이은 나라입니다.

/체험학습 동행(historytour.co.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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