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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기부인가, 재능 착취인가

데스크칼럼=이연수(문화부장)

2019년 04월 23일(화) 15:41
이연수 문화부장
“관에서는 왜 그렇게 재능기부를 좋아합니까?” 오늘로 마감인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문화예술행사 재능기부 접수 공고를 보다 문득 그가 떠올랐다.

“관에서 지원받아 예술활동을 했습니다. 큰 지원도 아니었는데 재능기부는 의무였죠. 지원도 받았는데 재능기부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인식에 너무나 화가 났어요. 재능기부는 강요가 아니에요. 예술은 내 생계입니다. ”

오직 공연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중견예술가인 그는 분노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재능을 환원하고 싶어 동참한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툭 하면 무료로 재능기부 요청을 받았다. 그는 이제 재능기부란 말만 들어도 화가 난다고 했다.


예술가의 시간 존중돼야


무심코 내던지는 ‘재능기부’란 말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예술인들이 많다. 그들은 많은 예산으로 문화사업을 집행하면서도 예술가들에겐 왜 재능기부를 요구하는가라고 반문한다.

최소비용·경제행사 운운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게 재능기부와 자원봉사다. 전문적인 재능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로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 재능기부다. 자원봉사의 개념이지만 재능기부가 봉사활동과 다른 점은 개인의 차이를 존중한다는 데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생소하지 않은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가진 자의 사회에 대한 높은 도덕적 의무 혹은 배려인데, 예술가들을 불편하게 하는 재능기부라는 단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도 구별된다.

마을재생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벽화그리기에 종종 재능기부 동원되는 화가들. 기관 주요 행사에 재능으로 봉사하는 전문예술인들. 문화예술의 도시 광주에 재능기부는 더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가난이라는 꼬리표가 늘상 따라붙는 예술가의 팍팍한 현실을 대중이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툭 하면 내던지는 말이 재능기부다. 재능기부가 많아지면서 재능을 재능기부를 통해 공짜로 쓸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더 큰 피해다. 도움이 필요치 않은데도 예산을 아끼기 위해 재능기부를 모집하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특히 정부기관이나 지자체 문화기관에서 행·재정적 뒷받침 없이 걸핏하면 예술가들에게 재능기부를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재능기부 아닌 재능 착취다. 예술가들은 뭘 먹고 살라는 말인가. 예술가들의 삶은 어렵다 못해 궁색하다. 몇 년 새 문화예술계는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개인전을 열어도 작품 한 점 팔리지 않는 작가들이 대부분이고, 공연을 무대에 올려도 몇 명 안 되는 관객과 마주하는 배우들의 마음은 암울하다.

전문적인 재능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시간은 치열한 땀의 결과물이자 돈이다. 그들에게 공짜로 시간을 내달라고 하는 것은 물건을 파는 사람의 물건을 억지로 빼앗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예술가들의 시간이 존중돼야 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예술이지 않냐며 예술인의 생계와 생존권의 위협은 외면한 채 관습처럼 재능을 요구하는 일은 상식 밖이다. 노동자들이 일선에서 노동의 댓가를 급여로 지급받지 못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생존이라는 기본적인 현실도 보장되지 않은 재능기부에 대해 예술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검토해 봐야 한다.


복지사업 성공적 정착 절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예술인이 예술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연 평균 수입은 1,281만원에 불과했다. 이 중 72.7%는 월 수입이 100만원 이하다. 예술가 중 약 29%는 수입이 전혀 없었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률은 3년 전 조사 때와 큰 변화가 없었다. 생계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는 심각한 수치다.

해답은 복지다. 복지와 맞물려 돌아가는게 문화다. 예술가들의 복지사각 그늘을 생각한다면 감히 그들에게 ‘재능기부’라는 말은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예술인생활안정자금 융자제도 사업과 뒤이어 논의될 예술인 고용보험, 실업급여 등 복지사업의 성공적 정착이 절실하다. 공정한 창작지원금 확대, 작업 산실로 활용할 저가의 예술인 임대공간 확충 등 실질적 창작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문화예술로도 먹고 살 수 있는 문화도시, 복지국가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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