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앞 음악다방에서 약간의 잡음과 함께 엘피(LP)판 돌아가는 소리를 기억하는가? 그 추억의 소리를 들어본 지 까마득하다. 약간 손상된 엘피판의 스크레치를 턴테이블 카트리지 핀이 스쳤을 때 나오는 잡음은 오히려 음악의 감칠맛을 훨씬 강하게 한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잡음 없이 완벽한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 오디오 기술의 핵심이었다. 이후 콤팩트 디스크를 거쳐 ‘엠피쓰리’(MP3)라는 ‘디지털 음원(音源)’ 체계로 바뀌는 과정에서 음악다방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에 다시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복고풍의 음악다방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누구나 다 휴대전화에 설치한 스트리밍 ‘앱’(APP)을 통해 깔끔하고 완벽한 음원을 듣는 시대에 다시 디제이(DJ)가 등장하고 잡음 가득한 엘피판이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음원보다 엘피판의 ‘감칠맛’과 턴테이블의 느낌이 훨씬 좋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현상은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제과·방송·공연·음식·인테리어 등 거의 전체 산업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 방송에서 ‘응답하라 1994’로 시작된 복고스타일 드라마로부터 최근 진도 출신 가수 송가인이 1960~70년대 트로트 음악을 완벽하게 재현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감동케 한다. 또 1960년대 소주병 디자인을 그대로 옮겨 놓은 복고풍 소주가 출시돼 대박을 터뜨리는가 하면 1980년대 유행하던 FILA 스포츠웨어 브랜드가 다시 등장해 젊은 세대들을 사로잡는다.

이런 ‘복고’ 열풍을 경제·사회 학자들은 ‘레트로’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레트로는 영어 ‘retrospect’(회상)에서 따온 말로 옛날의 상태로 돌아가거나 과거의 체제·전통 등을 그리워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마치 지금 시대의 흐름인 디지털을 거부하고 다시 과거 아날로그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다.

‘레트로’와 비슷한 용어로 ‘뉴트로’(New-tro)가 회자된다. 레트로가 ‘추억’에 비중을 두었다면 뉴트로는 과거 세대의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신세대들의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다. 다시 말해 레트로가 추억에 대한 ‘노스텔지어’에 기인한다면 뉴트로는 신세대들의 ‘신기함’과 ‘생경한 경험’ 추구로부터 나온다.

학자들은 이런 레트로 현상의 원인을 급변하는 디지털시대에 ‘인간의 기계화’에 대한 반발로 아날로그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데서 찾는다. ‘아날로그 감성’이 그립다는 것이다.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본 후 물건을 구매하던 아날로그시대와 달리 디지털시대엔 모바일 앱이라는 가상현실을 통해 구매한다. 고객의 선택을 위한 상품 설명, 디스플레이, 친절한 상담 서비스를 온전히 고객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으로 전가해버렸다.

세계적인 인터넷 서적판매 사이트인 ‘아마존’은 거의 대부분의 서적 유통을 주도하며 무수한 동네서점을 도태시켰다. 이른바 마이클 폴라니가 말한 ‘악마의 맷돌’로서 거대자본의 존재를 유감없이 증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우리의 골목에 독립서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마존에는 ‘핸드셀링’이 존재하지 않는다. 핸드셀링은 서점직원이 손님의 행동을 읽어내고, 손님과 시선을 맞추며 취향을 묻고 손님이 선호하는 책을 찾아내 권하는 판매방식을 말한다. 현대판 아날로그인 독립서점에는 핸드셀링이 존재한다.

아날로그 판매체계는 상품의 생산과 유통에 기대고 있는 수 많은 노동자들의 삶을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숨어있다. 승자독식과 소득격차 분배체계를 넘어서 노동과 자본 혹은 거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이익의 균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아날로그의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오바마가 자신의 ‘시놀라’시계를 언론에서 자랑한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시놀라는 몰락한 도시 디트로이트를 살리기 위해 9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회사로 오로지 수작업을 통해 2013년 시놀라시계를 출시한 이후 세계적 회사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노동의 신성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오바마는 테크놀로지시대에 노동의 중요성을 시놀라 시계를 통해 비유적으로 보여줬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피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매우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구를 위한 테크놀로지인가?

/이병훈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