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외모를 타고난 사람일지라도 세월이 흐르면 대부분 늙고 볼품이 없어진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움이 겹겹이 쌓여 파릇한 청춘일 때보다 더 고귀한 기품이 느껴진다. 매화도 그런 꽃이 아닌가 싶다. 매화는 혹한 속에서도 부드럽게 휘다가 어느 순간 곧게 뻗어나가고, 다시 휘어진다. 우리는 그러한 고매의 멋과 향에 감탄한다.



전남매일 창간 30주년을 축하한다. 신문을 발행한지 30년, 매화나 사람의 생애로 치면 60년의 세월과 맞먹는 시간이다. 진실과 정의, 지혜의 모습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던 30년. 앞으로 다가올 숱한 질곡 속에서도 꿋꿋한 정필의 마음을 지켜나가길 바래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지는 고매의 아름다움처럼.



시를 알게 된 시절부터 곁에 두고 읽는 시가 있다. 윤동주의 ‘서시’이다. 윤동주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다. 윤동주는 하늘, 바람, 별과 같이 우리가 가장 쉽게 사용하는 단어를 가지고 자연과 인간을 노래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고백한다. 윤동주의 시를 한 편의 고백서라 부르는 이유이다. 특히 ‘서시’는 짧지만 위대한 철학서를 대하는 듯 무게감이 만져진다. 우리 사회는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변화하고 발전하였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우리에게 ‘서시’는 잠시 쉬면서 내 영혼을 다독이라고 나지막이 이야기 한다.



예술작품은 꾸밈이 없고, 거짓 없이 작가의 삶과 정신이 투영되었을 때 감동을 준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좋은 작품의 첫 번째 요소이다. 윤동주는 참혹한 시절에 강인한 마음을 안으로 감추고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자신을 성찰한 사람이었다.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어간 윤동주의 영혼이 지금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고백하고 있다.



여기 조지아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자주 듣는다. 이 곡에는 격정과 고뇌, 환희 등 인생의 파노라마가 담겨있는 것 같다. 여러 연주자 중에서 불가리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의 연주를 특히 좋아한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나치의 포로수용소에 끌려가 죽음을 기다리던 중 그의 아코디언 연주에 감동을 받은 독일군 장교의 도움으로 탈출하게 된다. 그의 연주는 자신에게 주어졌던 고통을 직시하고 치유하는 힘이 있어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요 근래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날이 거의 없다. 주위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개인의 삶에서도 서로를 향한 숱한 비수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겪어 온 역사와 정신문화의 결과이다. 녹록치 않은 삶속에서 우리는 너무 빠르고 더 멀리 가기를 바래왔고 수평보다는 수직적인 시선으로 직진했다. 마음의 자세를 낮춰 들여다보았을 때 깊이 볼 수 있는 법이다. 마음의 자세를 낮춰야 옆도 볼 수 있다.



죽음을 직면했던 연주자 바이센베르크와 자아 성찰을 하며 쓴 윤동주의 ‘서시’를 곁에 두고 낮고 깊게 음미하고 싶다. 다시 한 번 사실의 직시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지혜를 제시하려 애쓰는 전남매일 창간 30주년을 축하한다.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화가 한희원-

한희원

<약력>

△1955년 광주 출생

△조선대학교 미술과 졸업

△개인전 40회

△대동 미술상, 원진미술상, 전남연극제 무대미술상 수상

△광주시 남구 굿모닝양림축제 조직위원장

△2019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문화행사 추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