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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그때 그 시절... 내 고향 8월에 대한 회상

대한전문건설협회 광주시회 정정래 사무처장

2019년 08월 13일(화) 18:50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쯤 지나면 당초 계획했던 일일 계획표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처음 2~3일은 하루해가 제법 충실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여름방학 남은 20일을 소진하는데 탄력이 붙기 시작하고 미끄러지기 시작한 시발점이 8월 초순 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여름방학 숙제 중에서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잔디 씨 채집 이었다. 뙤약볕 더위도 아량 곳 하지 않고 공동묘지나 저수지 뚝 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까만 씨가 달려있는 잔디들을 두 손가락으로 쭈욱 훑어내려 양은 도시락에 모아두었다가 저녁이면 좀 도리 쌀 모으는 냥 대두병에 모아 붓고 한 눈 끔씩 올라가는 재미로 한여름을 보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 많던 잔디 씨는 과연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할 뿐이다.

한여름이 깊어지면서 옥수수 대는 하늘을 찌르고 매미소리 우렁찰 때쯤이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작은 어머님을 앞세우고 탕사밭 골로 찜질을 가셨다. 해마다 여름이면 저수지와 게울 물에서 첨벙대던 나에게는 할머니를 따라 해수욕장을 가는 일은 설렘과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옥수수와 햇고구마도 삶고 잡곡밥도 준비해 갔지만 합법적으로 아이스 께끼를 사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해 보면 바닷물의 염도 때문인지 민물보다 몸이 더 가벼움을 느꼈고, 더 멀리 수영할 수 있었다, 고무 튜브에 몸을 끼우고 울렁거리는 파도에 몸을 맞기면 한없는 밀려오는 즐거움이 지금도 옆구리 한쪽에선 꾸물거린 것 같다.

한 시간에 한 대씩 오가는 버스는 읍내서부터 만석을 넘어 정원에 두 배 가득실고 오는 관계로 우리는 처음부터 버스 타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왕복 삼 십리 길을 걸어서 다녔다. 가는 길은 설렘으로 발걸음이 가볍지만 오는 길은 왜 그리 멀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여름 해는 오후 서너 시가 되어도 뙤약볕이고 비포장도로를 걷다보면 가끔씩 지나는 차량들과 흙먼지를 피하러 논 밭길로 몸을 피했다 되돌리기를 서너 번, 길가에 나무그늘이라도 찾을라치면 어쩌다 서있는 아카시아 나무는 당나귀 꼬리마냥 성글고 소소해서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할머니가 탕사를 다녀오신 날이면 어머님은 씨암탉을 잡아서 백숙을 끊였고, 큰 두레밥상에 둘러앉은 온 식구는 다들 한 그릇씩 차지하고도 남았다. 요즘 들어 복날에 삼계탕 한 그릇을 맞이하면 옛날 생각이 나서 한 마리를 혼자 다 먹는다는 것이 아직도 미안하고 과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밀양출신 오규원 시인의 ‘여름에는 저녁을’ 이란 시가 정겹다.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초저녁에도 환한 달빛/ 마당위에는 멍석/ 멍석위에는 환한 달빛/ 달빛을 깔고/ 저녁을 먹는다./ 마을도 달빛에 잠기고/ 밥상도 달빛에 잠기고/ 여름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밥그릇 안에까지/ 가득 찬 달빛/ 아! 달빛을 먹는다.

구례출신 이시영 시인의 어린 시절 여름나기는 어떠했을까? 그의 시 ‘여름’이다.

은어가 익는 철이었을 것이다./ 아니다. 수박이 익는 철이었다./ 통통하게 알을 밴 섬진강 은어들이/ 더운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찬물을 찾아 상류로, 상류로 은빛 등을 파닥이며/ 거슬러 오를 때였다./ 그러면 거기 간전면 동방 천 아이들이나/ 마산면 냉천리 아이들은 메기입을 한 채/ 바께쓰를 들고 여울에 걸터앉아/ 한나절이면 수 백 마리 알밴 은어들을/ 생으로 훑어가곤 하였으니./ 그런 밤이면 더운 우리 온 몸에서도 마구 수박 내가 나고/우리도 하늘의 어딘가를 향해 은하수처럼/ 끝없이 하얗게 거슬러 오르는 꿈을 꾸었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여름이면 저녁을 마당에서 먹었고, 와상에서, 멍석에서 모두들 하늘보고 누워서 누구 배꼽이 더 높은지 자랑 내기를 하다가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 전설로 얘기꽃을 피우고, 둥근 보름달 속에서 떡방아 찧는 토끼를 찾아보려 애썼다. 북두칠성을 찾아가면서 혹시나 집을 잃으면 저 별보고 찾아오리라 마음속으로 다짐도 했었다. 그러다 평상에서 조금 더 고개를 뒤로 젖히면 평소 보지 못했던 환상의 세상을 경험하고 깜짝 놀랐던 경험들 있을 것이다. 그것은 평소 서서만 봐 왔던 것들을 뒤집어보니 대문도, 마당도, 외양간도 심히 처음 보는 광경이라 황홀하고, 신기했던 기억들은 나만의 추억일지 모르겠다.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 가지 즐거움 즉, 인생삼락(人生三樂)을 찾는다면 그 하나는 “어렸을 적 노닐던 곳을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보는 것” 다른 하나는 “곤궁했을 때 지나온 곳을 성공하여 다시 찾아보는 것” 마지막 즐거움은 “ 어릴 적 함께 노닐던 고향산천을 그때 친구들과 함께 찾아가 밤새도록 술(차)마시며 얘기꽃을 피우는 것” 이라고 했다.

지금에 와서 밤새도록 모닥불 피워놓고 부채질하며 모기 쫓아주던 할머님도, 모두를 공평하고, 귀히 여기던 어머님의 두레밥상도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내마음속에 이루고 싶은 바램이 있다면 올 여름 휴가는 꼭 고향에서 보내고 싶다. 조금은 불편했지만 행복했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아날로그 식 휴가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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