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종교의 타락이 우리 사회를 불행하게 해

김성식 조선이공대학교 교수

2019년 12월 02일(월) 19:03
겔트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삶에 지쳐버린 것은 그동안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던 일과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꼭 필요한 일인데도 말이다.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야 할 시간이다.

빨리 지나가버린 한 해의 마지막 순간에 질주하던 삶의 속도를 늦추고 조금은 느긋한 걸음으로 오솔길을 걷다 보면 그동안 앞만 바라보며 너무 빨리 달려온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주위를 둘러보며 보살펴야 할 사람이 많았는데 외면하며 살아온 것에 대한 회한도 갖게 되고, 뒤를 돌아보면 반성해야 할 일도 많은데, 그때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정당성을 부여하며 자기 성찰에 인색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거나 앞서기 위해서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정작 자신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살피지 못할 때가 많다. 십이월 한 달만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과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한 해를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법정 스님은 십일월을 초록이 사라지고 바위나 빈 가지, 본질적인 것만 남는 계절로 감성이 가장 투명해지는 때라 했는데 오히려 십이월이 그 절정이 아닐까 싶다.

살아온 세월만큼 성숙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자기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분수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예기(禮記)에 지불가만(志不可滿)이란 말이 있다. 바라는 바를 남김없이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모든 욕심을 다 채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채워지지도 않는 게 세상의 이치다.

좀 부족한 듯, 좀 모자란 듯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끝까지 욕심을 부리다가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불행하게 한 경우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왔지 않는가.

지금 우리 사회가 불행한 것은 물질적 부족이 아니라 정신적 빈곤이다. 국가 경제에 비해 어느 나라보다도 풍요롭게 살고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풍요롭게 살고 있다는 것이 잘 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잘 산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와 분수를 지킬 줄 알뿐만 아니라 욕망을 억제하는 가운데 소유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가능하다.

사람은 사람됨의 명예를 알아야 비로소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천박한 인격의 특징은 명예를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종교의 타락이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종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본래적인 삶에서 벗어나 본래적인 삶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며, 부풀려진 욕망을 내려놓고 마음에 깃든 허섭스레기들을 걷어내고 자기 속에 있는 진정한 자아를 만나도록 하는데 그 존재의 이유가 있다. 종교는 어두운 밤바다에 등대와 같은 존재여야 한다. 힘들고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리를 찾아갈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보다 더 타락한 곳이 작금의 한국 종교 현실이다.

가장 신자수가 많다는 기독교의 타락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가 아닐 수 없다. 고등종교가 타락할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은 성직자의 급증이라 한다. 중세 가톨릭이 가장 부패할 때 유럽의 신부 수가 넘쳐났고, 고려 불교가 타락할 때 고려 천지가 스님으로 넘쳐났으며, 티베트 라마 불교가 타락할 때 티베트 남자의 70%가 스님이었다는 사실을 반추해 볼 때 한국의 신학생수가 전 세계의 신학생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라가 힘들고 어려울 때 자기 몸을 던져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었던 그런 종교 지도자가 더욱 그리운 때이다.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