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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글짓기 대회 고등부 대상
2019년 12월 17일(화) 16:18
집으로 돌아가며
-여보에게-

송원고등학교 1학년 양동호

여보 1950년을 기억하오? 아침 9시, 갑자기 집에 인민군들이 들이닥쳐 내 이름을 부르며 날 데려갔소. 4시간을 차를 타고 내려보니 생전 처음 보는 산골짜기에 군인들이 득실했소.
난 무슨 상황인지 몰라 장병에게 물어보았는데 전쟁이 났다고 했소. 집에 여보를 두고 와 너무 걱정이 되어 하루빨리 부대를 나갈 고민을 했다오. 여보는 전쟁이 일어난 지 모르는데. 30일간 훈련을 받고 전쟁에 참여했소. 눈앞에서 폭탄과 총알들이 빗발쳐서 난 너무 무서워 바닥에 엎드려 있는데 문득 여보 생각이 나서 앞만 보고 달려갔소. 그때는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고 한 보름쯤 걷다 보니 잃은 정신이 돌아오면서 눈앞엔 황폐화된 우리 집이 있었다오.
우리 집을 샅샅이 뒤졌는데 옷이랑 가구들은 다 불타 있었고 여보 대신 재 가루가 날 반겨서 난 그 자리에 누워 한참을 울었다오. 여보가 죽은 줄 알아 혼자 부산으로 내려갔소. 부산에 내려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시장에 들러 꿀꿀이죽을 먹었는데 그마저도 어찌나 맛있던 지 한 그릇 더 달라고 했다오.
시장에는 나 말고도 아주 많은 북녘 사람들이 많았는데 남에서 북녘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아주 좋았다오. 난 3명의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되었다오. 그 후로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굴다리에서 생활하다가 공장 직원을 모집한다는 말에 즉시 달려가 일을 얻었다오. 여보가 없어서 내 옆은 항상 허전했지만 매일매일 “여보는 잘 있을까”, “혹여나 죽은 것은 아닐까” 노심 초사하며 한 10년 정도를 공장에서 일하며 살았다오.
그동안 번 돈으로 부산에서 작은 아파트도 사고 여보를 맞이할 준비는 다 되었는데 여보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생사 여부도 모르니 너무 답답하였다오. 여보 말고 다른 여자를 내 아내로 들이기 싫어 남자아이를 입양하였소. 집으로 데려와 내가 이름을 지어주었소. 이름은 김만수. 내 첫째 아들이오.
아이가 7살이 되는 해에 나에게 물어봤소. “아버지, 엄마는 어딨어?”
난 10초간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엄마는 금방 오실 거야라고 말을 하였소. 다행히 만수는 공부도 잘하고 아이가 착실해서 좋은 대학을 들어갔다오. 만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청와대에 들어갔다오. 내가 백발노인이 되었을 때 만수가 평소와 표정이 다르길래 “만수, 무슨 일 있노?”라고 말하자 만수는 “아버지 지금 김대중 정권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수 있어요. 운 만 좋으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어요”라고 말하였고, 난 그 소릴 듣자마자 “진짜가?”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소.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여보를 50년 만에 본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밤잠을 설쳤고 여보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오. 만수가 이산가족끼리 상봉하려면 헤어진 사연을 적어야 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신청서를 가져왔소. 이것만 쓰면 그토록 보고 싶던 여보를 만난다는 만수의 말에 5시간 정도 여보와 헤어진 슬픈 이야기를 썼소.

한 보름쯤 되었나? 만수가 “아버지 어머니 만날 수 있어요”라고 말하였소. 그 말을 듣자 너무 기분이 좋기도 하고 늙은 여보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결혼은 하였는지 그동안 잘 살았는지 고민도 하였다고. 그래서 나는 “어디서 만나는데?"라고 했는데 만수는 북이라고 말하였고, 나는 고향을 다시 밟고 그와 더불어 여보와도 만날 수 있어서 그날이 점점 다가오면 올수록 밤 잠을 설치고 밥도 잘 안 넘어갔소.

차로 6시간을 달려서 금강산에 도착을 하니 전경이 너무 좋더라고. 어렸을 적 기억도 나고 자리에 앉아 여보를 기다리는데 한 70세쯤 돼 보이는 백발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소. 근데 자세히 보니 여보를 닮아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여보를 안았지. 여보는 그동안 “잘 살았어요?”, “놔두고 피난 가서 미안해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지. 난 "결혼은 했어?"라고 질문을 하자 여보는 당신이 오길 기다리고만 있었다고 하였지. 나도 똑같은 상황이라 너무 슬펐지만 난 결혼했다고 말하였지. 결혼을 안 했다고 하면 여보가 더 슬퍼할 것 같아서.

시간은 흘러 우리가 다시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 도달했을 때 여보는 가지 말라고 너무 울더라고. 나도 너무 울고 싶었지만 웃으면서 “나중에 또 만날 건데 왜 울어요”라고 말했잖아. 근데 너무 슬펐어. 버스에 올라탔는데 여보가 가면서 먹으라고 도시락을 주었잖아. 너무 맛있었어. 50년 만에 먹어본 여보의 음식 솜씨는 최고였지. 지금은 다시 남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내가 보낸 편지가 여보에게 잘 전달되면 내가 결혼했다고 한 것은 농으로 알아두게. 그리고 지난 50년 동안 너무 꿈꿔왔던 여보와의 재회가 성사되어 너무 기쁘고 다음에 만날 때는 울지 말고 웃으면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싶네. 꼭 다시 만나요 사랑하는 여보.

2000년 8월 18일 집으로 돌아가며
-사랑하는 남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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