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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분담 협상으로 한미동맹 흔들려선 안돼

근거 없는 5조원 요구 '황당'
일본계 대사 내정간섭 '분노'
박원우 편집국장

2020년 01월 19일(일) 18:01
몇 년 전 미국 수도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알링턴 국립묘지에 다녀왔다. 포토맥 남서쪽 교외에 위치한 알링턴 국립묘지는 남북 전쟁, 제1·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걸프전 등에서 전사한 22만 5,000명 이상의 미국 참전 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수도 워싱턴과 가까워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방문객도 많다고 한다. 당초 일정에 없었던 터라 관련 정보도 없이 방문을 하게 됐다. 그저 케네디 전 대통령이 안치된 곳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국립묘지로 들어선 순간 판초우의와 입고 재래식 소총을 들고 진격하는 동상들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커다란 무전기를 손에 들고 고함을 지르는 모습의 동상을 보니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현지 안내인의 소개로 이곳이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장소라는 말을 전해 듣고는 숙연해졌다. 석판에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의 피해 규모가 적혀 있었다. 참전 기간 중 전사 5만4,246명, 부상 46만8,659명, 실종 739명, 포로 4,391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은 한국전쟁 때 가장 먼저 전투부대를 파병했으며 지상군과 해군, 공군 등 가장 큰 규모의 병력을 지원했다. 이로 인한 피해도 다른 참전국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다.

전쟁이 끝난 지 70여년이 돼 가지만 한국인 대부분은 미국을 가장 친근한 우방으로 여긴다. 전쟁을 겪었던 분들이나 전후 세대들이나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랑은 상상초월이다. 특정 정치세력에 국한된 것이지만 한국에서 열리는 집회에 미국 국기인 대형 성조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한국인들이 얼마나 미국을 친근하게 여기는지 가늠해볼 만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혈맹관계인 미국과 한국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특히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와 주한미국 대사의 내정간섭은 양국 간 혈맹관계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한국의 방위비 인상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도 모자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한국에 더 많은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동 기고문을 유력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최근 게재하고 나선 것은 강압적이기까지 하다.

1조원 수준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5배 많은 5조원이나 요구한 것도 어처구니없지만 왜 인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 자체가 황당해 한국인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기존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한국인 인건비(40%)와 군사건설비(40%), 군수지원비(20%), 딱 이 세 항목을 놓고 협상이 진행됐지만 이번에는 미국 측에서 준비태세(readiness)라는 새 항목을 신설해서 주한미군 훈련 비용이나 순환 비용 등을 추가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조 단위에 달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5배나 올려달라는 미국을 과연 동맹국으로 계속 봐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것도 현재 한국이 내고 있는 방위 분담금이 매년 3,000억원가량 미집행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미국에만 의존하느라 답보상태에 빠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한 개별관광을 추진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딴지를 건 주한미국 대사의 태도 또한 논란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않고 남북협력을 증진시키며 북·미 대화를 촉진해나갈 필요성이 커졌다고 생각한다"며 개별관광, 접경지역 협력 등의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자 이틀 뒤 해리 해리스 대사가 유엔군 사령부를 운운하며 반대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해리 해리스 대사는 지난 16일 외신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향후 제재를 촉발할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에서 다루는 것이 낫다"면서 "관광객들이 DMZ(비무장지대)를 지날 것인가. 이는 유엔군 사령부와 관련이 있다. 어떻게 돌아올 것이냐"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해리 해리스 대사가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조선총독'이 연상된다는 등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는 혈맹관계에 있는 나라이다. 한국인 대다수는 한국전쟁에 큰 도움을 준 미국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안보 팔이로 수조원대의 예산을 강탈하다시피 요구하고 내정간섭을 하는 듯한 대사의 고압적인 태도가 이어진다면 반미감정이 확산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향후 전개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한국인들의 이런 우려가 잘 반영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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