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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닭줍’ 해보셨습니까.

유·스퀘어 문화미디어팀 나승완 과장

2020년 07월 06일(월) 19:00
몇 년 전 A형의 카톡 프로필에 난데없이 고양이가 등장했다. 웬 고양이냐고 물었더니 짧게 ‘냥줍’이라고 온 답변에 0.5초 멈칫하다 길에서 고양이를 주웠다는 걸 알게 됐다. 퇴근길에 웬 고양이가 따라오더니 집으로 훅 들어와 버렸다나.

근데 이놈의 고양이가 웃긴 게 A형이 조금만 자리를 떠도 울어대며 따라다닌단다. A형이 샤워를 하거나, 이빨을 닦거나, 심지어 화장실에서 대변을 볼때도 고양이가 옆 자리를 지킨다고 했다. 아무튼 고양이가 세탁기 위에 올라갔다가 변기로 빠지는 등 천방지축이라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냥줍’ 경험은 없지만 길에서 ‘잉줍(잉꼬)’, ‘개줍’(강아지), ‘두줍(두더지)’, ‘고줍(고슴도치)’, ‘비줍(비둘기)’, ‘박줍(박쥐)’, ‘달줍(달팽이)’ 등 수많은 ‘줍’의 경험을 해온 것 같다. 이런 나의 낡은 이력에 자랑할 만한 목록이 하나 생겨난 건 A형과 카톡을 주고받은 지 바로 일주일 후다. 그 목록의 이름은 바로 ‘닭줍’.

아빠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벌어진 일이다. 집 근처 도로 한가운데서 덩치 큰 새가 날갯짓을 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계속해서 한 자리에서만 푸덕거리는 모양새에 흥미가 동해 멀찍이 차를 세웠다. 가만 보니 닭이 분명했다.

순간, 옆에 있던 아버지가 잽싸게 차 문을 열더니 ‘닭이다!’를 외치며 들뜬 목소리로 닭을 향해 돌진했다. 닭은 도망치지 못했고, 결국 아빠의 손에 붙잡혔다. 이상하게도 아빠 손에 사로잡힌 닭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오랫동안 갇혀 지내다가, 어딘가로 실려 가던 중 차에서 떨어진 게 분명했다. 닭의 처량한 꼴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처음에는 닭을 잡아서 삼계탕을 해먹을 생각이었는데, 그런 생각은 순간 사라져 버렸다.

닭은 냄새가 심한 분뇨로 얼룩져 차에 싣고 집으로 데려오는 게 쉽지 않았다. 나는 운전을 해야 했으므로, 나 대신 아빠의 옷을 분뇨로 더럽혀가며 닭을 겨우겨우 집으로 데리고 왔다. 마당에 있던 제니(셰퍼드)와 럭키(골든 리트리버)가 대문으로 뛰어오더니 손에 들린 닭을 향해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평소 호기심 많던 제니는 고양이나 쥐, 두더지, 두꺼비, 청개구리 등 온갖 것들을 물어 죽여 말썽을 자주 피웠다. 설마 제니가 닭을 죽이기야 할까 살짝 걱정이 들었지만, 마당에 닭을 풀어놓기로 했다.

닭을 주운 날, 나는 A형에게 짧게 카톡을 보냈다. ‘형 나 오늘 닭줍 했음’, ‘닭줍?’ A형은 한 동안 이해를 못하더니 사진을 보고는 ‘ㅋㅋㅋ’을 남발했다.

아 그런데 그 닭은 어떻게 됐을까? 2주 정도 지났을 때 분뇨로 얼룩졌던 닭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닭이 됐다. 제니가 괴롭힐 때마다 가끔은 용감하게 대거리도 하더라. 완전히 기운을 차린 닭은 가끔씩 담을 넘어 옆집의 채소밭을 휘저어 놓았고, 집 근처 대숲에 들어가 숨바꼭질을 하는 등 온갖 말썽을 피웠다.

닭이 우리 집 마당의 꽃밭을 망쳤을 때엔 아빠는 나라를 잃은 듯 울분을 토하며 타이어 대리점을 운영하시던 마을 이장님께 닭을 넘겼다. 그 닭이 수탉이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매일 일용한 계란이라도 제공해주는 암탉이었다면 닭은 여전히 우리와 한 가족이 되었을 게다. 닭을 받은 마을 이장님은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고, 며칠 후 마침 갈 때가 됐던 자동차 타이어를 저렴한 가격에 교환해 줬다.

어찌 됐건 길냥이나 유기견을 집에 데리고 오는 경우는 있어도, 닭을 집에 데리고 오는 경우는 얼마 없겠지? 난 ‘닭줍’을 한 덕분에 값싸게 타이어를 교체했고, 이 에피소드로 신문에 글을 써 얼굴을 알리는 일타쌍피의 효과를 누리게 됐다. 코로나19로 웃음 지을 게 없는 요즘,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닭줍’ 같이 뜬금없지만 조용히 미소 짓는 일들이 가득 생겨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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