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의 도시 팔레르모에서 내려다본 도시/Flikr @Radek Kucharski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세계가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콕’ 생활에 돌입한지 어느샌가 ‘여행’은 점점 먼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작년 12월 30일 중국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벌써 6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 작년이었다면 어디로 여행을 떠나야 할지, 항공권을 언제 끊어야 가장 싸게 끊을 수 있을지 고민했겠지만 지금은 국내 여행을 가는 것 마저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매일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 착용하기, 손소독제 사용하기와 사회적, 생활 속 거리두기 생활이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몸과 마음을 달랠 여행마저도 마음 놓고 떠나기 어려운 지금,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꺼내들었다.

그가 최근에 낸 여행 산문집‘여행의 이유’보다 10년 앞서 출간된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다시 묶어 낸 이 책은 구글맵도, 스카이스캐너도, 호텔스닷컴도 없던 스마트폰 이전 시대에 떠난 그가 경험한 시칠리아의 맛과 햇살, 촉감과 냄새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타지에서의 ‘일상성’이다. 남부 이탈리아에 위치한 섬 시칠리아에서‘지중해식 생존요리법’으로 통하는 봉골레 스파게티, 오징어 스파게티, 해물 리소토 등으로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은 평소 우리가 김치찌개를 끓이는 일상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는 아침 여덟시 반이면 1분 거리의 동네 빵집으로 빵을 사러 나가고, 빵집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한 집안 형제자매들이 하는 과일가게까지 들러 과일도 사 돌아오게 된다. 이곳의 과일가게는 색의 배열에 상당히 섬세하고 신경을 쓰는 눈치라, 붉고 노란 오렌지, 연두색과 자주색의 포도, 붉은 딸기 같은 것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여행의 일상성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그가 시칠리아의 북쪽 해안에 자리잡은 안토니나의 농장을 방문했을 때다. 그는 이 농장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며 오래 전 추억에 빠져든다. 군대의 대대장 관사에서 살았던 때, 아버지를 따랐던 개 꾀돌이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며칠을 찾았지만 꾀돌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십 수년이 지난 뒤에야 그는 부대원들이 꾀돌이를 산 속으로 유인해 잡아먹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다.

먼 이탈리아의 한 농장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 잊고 있었던 꾀돌이가 떠올랐다는 그는 그제서야 더 이상 안토니나의 농장이 낯설지 않았다고 말한다. 삶이라는 게 그런 것임을 이 대목을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낯선 곳에서 마주한 익숙한 것들과 기억들을 통해 우리는 낯선 곳의 일상에 적응해나가며 낯섦을 일상성으로 다시금 뒤집어 놓는 것이다.

박학다식한 그의 명성답게 아르키메데스와 플라톤이 사유했던 곳이자 그리스 로마 신화의 메두사가 모든 이들을 돌로 만들어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시칠리아에서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현대에 자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사건들과 분쟁에 관한 이야기들로 확장시키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마피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대부’도 조명하며 ‘복수의 연쇄’라는 주제를 그리스 비극 ‘오레스테이아’부터 이스마일 카다레, 살만 루슈디와 관련된 이야기도 다루며 독자들로 하여금 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돕기도 한다.

책을 덮고 문득 나의 옛 여행지들을 생각해본다. 기억을 더듬어 내가 느꼈던 이탈리아의 햇살과 그가 묘사했던 시칠리아의 햇살을 비교해보며 옛 여행의 추억에 빠져보기도 했다. 언젠가 다시 떠날 나의 여행을 위해, 다시 만끽할 여행지에서의 햇살을 기대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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