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성 위에서 본 민속마을의 모습.

김매순의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 중 8월 중추(中秋)에는 우리가 아는 한가위라는 명칭의 유래가 기록돼 있다. 가위라는 명칭은 신라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달에는 만물이 다 성숙해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한가위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고 말한다고 한다.

이 말이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추석이면 각종 음식들을 준비하고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가족, 친지들을 만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정부 등 각종 지자체에서 확산방지를 위한 이동 제한을 추천하면서 이번 추석 분위기는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22일, 성큼 다가온 가을과 옛 추석의 정취를 다시금 느끼기 위해 순천시 낙안면에 위치한 낙안읍성 민속마을을 찾았다.

낙안읍성 민속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장승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민속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양 옆으로 선 대장군 장승이 반갑게 맞았다. 오랜만에 보는 장승에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옛 것들에 대한 관심이 너무 시들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표소에 도착해 열을 재고 표를 발권하는데 매표소 안에 있던 직원이 마을에서 지금 영화 촬영 중이라고 귀띔해준다. 영화 촬영 현장을 구경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민속마을 안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민속마을 주민들이 초가집에 얹을 이엉을 엮고 있다.

낙안읍성의 돌담.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것은 여러 채의 초가집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통해 전국의 초가집이 거의 사라져 초가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기 때문일까. 둥근 선의 볏짚 지붕과 서툴지만 정갈하게 쌓여진 돌담 벽이 단아하게 느껴졌다. 비록 읍성 안에 번듯한 기와집의 관아 건물이 있긴 하지만, 옹기종기 모인 초가집 때문인지 마치 옛 조선시대 백성들이 살고 있던 한 마을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 촬영을 위해 한복을 입고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는 여러 출연진들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낙안읍성 민속마을 안에 위치한 낙민루.

낙안읍성은 대한민국 3대 읍성 중 하나로 사적 제302호로 지정됐다. 마을에는 100여세대 2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면적 223,108㎡의 사각형 형태 읍성 내에 전통적인 마을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시대 생활풍속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1,410m에 달하는 성곽을 비롯해 가옥 9동, 노거수, 객사, 임경업장군비 등 13종의 문화재가 보유돼 있다.

연간 12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으로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및 CNN선정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16위로 선정됐다.

가을이 찾아와서인지, 초가집 이엉을 엮고 올리는 시기와 촬영이 겹쳐 마을 전체가 더욱 부산했다. 민속마을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 미리 엮어둔 이엉을 마당에 널어 두었다가 바람이 선선하고 햇빛이 쨍했던 이 날 이엉을 지붕에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엉을 다 올리고 난 초가집에는 비닐을 씌워 묶어둔 이엉들을 더욱 단단히 고정시키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보기 힘든 품앗이를 통해 서로의 지붕을 튼튼하게 바꿔주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코로나19로 느끼기 어려웠던 사람 사이의 ‘정’이 다시금 느껴지기도 했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는 오는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2020낙안읍성 민속문화축제가 예정돼 있다. 매년 10월 열리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민속축제로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축제는 전통향토음식을 맛보는 먹거리와 선조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체험, 국가 무형문화재의 공연, 서커스 등 풍부한 볼거리가 마련된다.

코로나19로 인해 몸도, 마음도 지치는 데다 계속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사람들 간의 관계도 점점 멀어지는 지금.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둥근 선의 초가집들 속을 걸으며 다시금 찾아올 평화의 시간을 고대해 본다.

        오지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