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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성의 역설
2020년 11월 18일(수) 09:56
자율성의 역설



이정선(광주교육대학교 교수, 전 총장)



‘자율성’이란 사전적 의미로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거나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절제하는 성질이나 특성’을 말한다.

남이 시켜서 하거나 의무적으로 하는 것보다 내적 동기에 따라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다면야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일의 능률도 그렇고 일을 성취하고 나서 느끼는 보람도 배가 될 것이다. 사실 인류역사나 사회가 발전하는 것도 강제가 아니라 구성원이 스스로 자율적인 자기활동을 통해서 이루었지 않던가!

교육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관리자와 교사, 그리고 학생들 모두 스스로 최선을 다하여 각자가 해야 할 활동을 하고, 그 결과 가르침과 배움 속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역할과 일의 관계 속에서 자율성과 책무성, 자율성과 의무감간의 균형을 찾지 못하고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균형잡힌 식단이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이끌 듯, 양자간 균형을 찾는 일이 학교교육에서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관리자들의 딜레마이다. 학교에서 관리자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전문적 행정능력과 조직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가는 리더십이다. 전문직이기 때문에 각자의 자율에 맡겨진다.



교직사회 역동성 떨어져



그런데, 맥락적발달이론의 주장처럼 인간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최적화 행동을 선택한다. 과거처럼 소신껏 일을 하기도 어렵고, 관리를 강화하기도 어려우면서도 사건이 터지면 책임은 면할 수 없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불평들이 많다. 과거와 비교해상대적으로 권한은 없으면서 책임만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자율성과 책무성 사이에서 가장 고민이 많다고 한다.

다음으로, 소위 혁신학교를 추진하면서 교사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율성이 부여됐다. 업무경감도 상당할 정도로 진척이 있었다. 교사들로 하여금 남는 시간에 교재를 연구하고 교수-학습 관련 전문성을 더 신장시키기 위해서이다.

강제 연수보다는 자율적인 학습공동체 활동을 권장하였다. 근무여건까지 개선되어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시간도 많고 업무도 경감돼 전문성 신장에 투자할 여유가 더 많이 생겼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결과는 어떤가? 소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밀레니엄세대’의 특성과 맞물려 교직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은 오히려 줄고 교직사회의 역동성도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교직에 대하여 갈수록 비우호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여 책무성을 다시 강조해야 하는가?

끝으로, 자율과 의무감(강제 내지는 구속) 사이에서 가장 힘든 학교구성원이 학생들이다. 미성숙한 학생들도 성인들처럼 자율적으로 자기활동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사실 성인들도 알아서 하라고 하면, 즉 의무감의 구속이 없으면 편안함이 어느새 이데올로기처럼 파고들어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는 관성이 삶속에 일상화 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교육서 보람 찾아야



자기주도적 학습역량이 갖추어진 아이들이나 가정에서 집중양육이 가능한 아이들은 자율성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의무감을 부여하는 것만도 못한 경우가 더 많이 생긴다.

학구적 무력감에 빠진 아이, 학습결손이 누적된 아이, 학습방법을 모르는 아이, 자율적 학습동기가 부족한 아이들에게까지 알아서 스스로 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분명 자율이 아니라 방임일거다. 이럴 경우 최소한 기본적인 의무감은 부과돼야 하지 않겠는가? 마치 원동기를 움직이려면 처음 시발점 에너지가 필요하듯이.

무책임한 자유나 방임이 아닌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자율이 이루어지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율성과 책무성, 자율성과 의무감, 자율성과 강제성 사이의 균형점은 어디일까? 무한정 자율을 부과할 수도, 그렇다고 과거처럼 비대칭적으로 책무성이나 의무감을 다시 강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양자간 함수관계를 푸는 일, 그것이 학교교육에서 구성원들이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을 통해 의미와 보람을 찾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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