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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째 이어진 가업‥80여년 경력 고행주 참빗장

3년생 대나무 고집, 야막나무 염색 경험 등 노하우 多
품질 탓 수공예 고집‥일제강점기 공장화 실패

2021년 08월 19일(목) 17:13
고행주 참빗장
5대째 이어진 가업‥80여년 경력 고행주 참빗장

3년생 대나무 고집, 야막나무 염색 경험 등 노하우 多
품질 탓 수공예 고집‥일제강점기 공장화 실패

대나무를 활용한 죽공예가 활발한 담양에서는 아직까지 낙죽장, 채상장, 접선장 등 다양한 장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중 5대째 참빗을 만들며 가업을 잇는 참빗장을 만났다.

▲5대 째 이어진 가업

고행주 참빗장(86)은 눈보다 손끝이 더 예민한 장인이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쉽사리 찾아낼 수 없는 파난 댓살을 솎아내는 실력은 따라올 자가 없다.
고 장인은 9살 때부터 현재까지 약 77년이 넘는 세월간 참빗 만들기에 매진했는데,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가업 및 전통 계승에 적극이다. 참빗은 빗살의 간격을 촘촘하고 고르게 유지시키는 세밀한 작업이 핵심적인 공정이라 숙련된 손놀림이 중요하다.고씨 집안은 증조부인 고(故) 고찬여 옹이 생계를 위해 참빗을 제작한 이래, 현재 아들 김광록씨까지 5대가 대를 이어 담양에서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내 대에서 끊길까 걱정했는데, 지금은 손자까지 참빗 만드는걸 고려하고 있어 미안하면서도 다행스럽죠.”
우리나라 빗인 참빗은 산업화 이후 플라스틱빗이 보급되고, 파마가 대중화 되며 자취를 감췄다. 참빗으로 생계를 꾸리던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이 직업을 바꿔 부를 축적하던 것도 이맘때다. 하지만, 수요가 줄어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가업을 이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또 그 선대부터 이어진 가업이기 때문이다. 고씨 집안의 묵묵함은 그를 한국 전통문화유산을 대표하는 최고의 공예기술자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100번의 손길 거쳐야 명품 ‘참빗’

참빗은 대나무를 베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3년생 어린 대나무를 사용는데, 기준보다 어린생의 나무면 쉽게 휘어지고, 그보다 성숙하면 억세고 단단해 잘 부러지기 때문이다. 너무 물러도, 강해도 윤기가 나질 않는다. 대나무는 마디와 마디 사이 거리가 멀수록 좋다. 대나무를 가지고 오면 일정 간격으로 쪽을 놓는다. 쪽 놓은 대나무는 겉과 속을 분리하는 대 뜨기, 또 4등분 한뒤 쪼개는 대 때리기 과정을 거친다. 얇게 만들기 위해 벗겨내는 속죽 훑기는 0.74밀리미터(mm)넓이로 작업한다. 이후 조름등다리를 이용, 너비를 일정하게 만드는 조름썰기 과정을 거친다. 썰린 대쪽 두께를 조절하기 위해 겉껍질인 피죽을 벗기기 위한 훑기 과정까지 거치면 0.3밀리미터로 더 얇아져 빗을 엮을 수 있다.
“피죽을 훑을 때 상당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잘 거쳐야 빗 가격을 많이 받을지 적게 받을지 결정하게 되니까요.”
까다로운 공정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기계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고 장인은 파난 불량품을 선별할 때도 눈보다 야무진 손끝을 이용한다. 고르고 매끈한 빗살이 마련되면 삭대를 이용해 무명실 삼합살(세줄의 실)을 건뒤 엮는다. 무명실은 빗살 하나를 얹고 실 하나를 얹을 때 뜨는 공간이 머리카락 들어갈 공간과 같기에 지금까지 사용하는 중요한 재료다.
이후로는 염색 작업을 거친다. 해방 전까지는 만주에서 공수해온 호장근을 사용해 붉은 빛을 냈지만, 해방 이후로는 왕래가 어려워 난항을 겪었다. 빗 만드는 것을 포기해야하나 싶을 때 대나무를 구하러 간 산에서 벌목을 거친 야막나무(오리나무)가 붉은 거품을 내고 있는 것을 보고 그 껍질을 구해다 삶았다. 옷을 염색하는 독한 화학제품을 사용해도 대나무 속살까지 염색시키기 어려웠는데 야막나무 껍질은 안까지 쏙 스며들며 내세탁성도 뛰어났다. 너무 붉지 않고 불그죽죽하니 딱 알맞은 색이 나와 야막나무 껍질을 이용해 염색하기 시작했지만, 얼마 후 군에서 제재가 들어왔다. 열매를 권장하기에 사용했으나 방대한 양이 필요했고, 껍질보다 색도 잘 나오지 않았다. 아쉬움이 컸지만 다양한 염료를 사용해본 뒤 가장 알맞은 작고를 사용한다는 후문이다.
100도 이상의 고온에서 6~7시간 정도 삶은 빗은 자연건조 뒤 등대를 붙이고, 아교를 사용해 빗살을 붙인다.
괘한질
“참빗 하나에는 빗살이 90개 정도 들어갑니다. 고급 빗 주문이 들어오면 빗살 0.2밀리미터로 만들어 100개쯤 촘촘히 꽂는데, 가히 명품이라 불릴만 하죠.”
건조가 잘 된 참빗은 등대에서 둔탁한 소리가 난다. 맑은 소리가 나는 빗은 양면을 45도 각도로 깎아 빗살을 뾰족하게 만드는 빗 꾸미기, 사포로 빗끝 고르게 만드는 괘한질을 거친다. 빗살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모난 곳을 긁어내는 중볼치기와 빗살 간격을 일정하게 떼어내는 얼 잡기가 끝나면 인두로 등대에 그림을 그려 마무리한다.

▲기계화 되지 않는 수공예

겨우 손바닥만 크기지만 거치는 손길은 상상을 초월한다. 5대인 아들 고광록 전수자는 현대적인 방식을 고수하길 권했으나 고 장인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옛 방식 그대로 만들어야 가치가 있는 거죠. 전통방식을 바꾸면 안 됩니다.”
지난 1910년 일본인들이 담양에 와 참빗 만드는 것을 보고 공장화시키길 원했으나 손으로 만드는 것만큼 정교하지 못했다. 비슷한 공정과 모양을 갖췄다고 같은 참빗은 아니라는 것이 고 장인의 설명이다. 중국산과 다르게 참빗은 정전기도 나지 않고, 아무리 빗어서 상처도 나지 않는다. 고씨 집안은 대대로 남자들이 빗을 엮어 생계를 꾸려왔다. 손자들까지 손재주가 좋다며 집안 내력이라고 자랑하는 그의 웃음은 천진난만하다. 지금이야 플라스틱빗에 가려 예전만큼의 호황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무형문화재 고행주’라는 글귀가 쓰여져야 구입하는 고정 손님이 있을 정도다. 본인의 대에서 직업을 바꾸면 죄가 될 것 같았다는 그의 뚝심이 고마울 정도다.
민슬기 기자         민슬기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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