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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남의 ‘영화 속 나머지 인간' <5>굿 윌 헌팅

“네 잘못이 아니야”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시대
죄책감에 대한 영화적 승화 과정
시선과 관점에 따라 새로움 전달
지식보다 경험과 감정의 중요성

2021년 09월 02일(목) 08:00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은 누군가의 아픔에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가 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음을 검증한 영화다.

숀 맥과이어 교수의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니야)”는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다. 피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암묵적 해답을 전달하는 응급실 같은 의미로 다가선다.

보스턴에 사는 윌 헌팅은 어린 시절 가정폭력 때문에 집을 나와 MIT에서 청소부 일을 하며 생활한다. 천재적 기억력과 수리 능력을 갖춘 그였지만 환경이 되지 않아 정식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어느 날 필즈 메달리스트 출신의 제럴드 랭보 교수는 칠판에 대학생들이 풀게 될 고난도의 문제를 내게 된다. 학생들 한 명도 답을 내지 못하지만, 윌 헌팅이 답을 완벽하게 풀어낸다.

윌 헌팅의 천재성을 알게 된 교수는 그의 양아치 기질을 바꾸기 위해 심리학 교수인 숀 맥과이어를 소개해준다. 숀은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다가간다. 윌은 친구처럼 편안하게 귀 기울여주는 숀 덕분에 천천히 마음을 열게 된다.

숀은 윌에게 필요한 것은 가르침이 아닌 공감과 위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숀은 윌이 처음 만나게 된 진심어린 인생 조력자였고, 상처받은 영혼을 어루만져주며 삶의 지혜를 알려준다.

영화 속 윌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물은 숀이라는 위대한 스승만은 아니다. 오랜 친구 척, 새로 사귄 여자친구 스카일라 역시 숀 못지않게 중요한 사람들이다. 특히 스카일라와의 관계는 영화를 이끄는 또 하나의 큰 축이다. 영화는 사랑을 다루는 방식을 둘의 생각을 통해 이야기한다.

사랑의 존재에 대해 믿음을 가지면서도, 사랑이 가지는 두려움과 그로 인한 방어적인 모습 등을 현실적 감정을 통해 솔직하게 담아낸다. 계산하는 연애가 아닌, 서로에게 완전한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갈등을 순수하게 표현한다.

더불어 영화는 “진짜 천재는 뭐지?”라는 화두도 던진다. 윌은 천재다. 그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읽은 후 내용을 그대로 머리에 집어넣을 수 있다. 어떤 책의 몇 쪽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도 기억한다.

MIT 학생들이 못 푼 문제를 청소하러 지나가다 쉽게 풀어낼 수 있고, 하버드생 스카일라가 하루 종일 쩔쩔매는 화학 과제를 순식간에 해치울 수도 있다. 그가 가진 재능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비범함이 있다.

그러나 영화는 진짜 똑똑한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의 통념을 부순다. 숀은 윌에게 진정한 경험 없이 다 아는 체하는 오만한 태도를 지적한다.

지식보다 경험과 그것에서 오는 감정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감동이나 전율을 느끼지 못한 채 보고 들은 것으로 분석하려는 태도, 사랑해본 적도 없으면서 남의 사랑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는 태도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윌의 천부적 재능을 키우려는 랭보 교수와 윌의 관계, 윌에게 ‘문을 두드렸을 때 네가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친구 척, 숀과 랭보의 오래되고 미묘한 관계 등이 영화를 채워나간다.

네 잘못이 아니야. 숀이 윌에게 건네는 결정적인 위로의 대사다. 이 말에 윌은 오열한다. 처음에는 냉소적으로 상담에 임했던 윌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죄책감을 버리는 순간이다.

숀이 티칭이 아닌 코칭을 했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다. 숀은 공감적 이해를 바탕으로 솔직하게 윌을 대했고, 다른 상담가들과 다르게 가르치려 하지 않고 도와주려 했다. 숀의 감성 능력이 윌을 변화시킨 것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다가서야 한다. 이 점이 가장 큰 강점이며 오래 기억되는 이유다. 굿 윌 헌팅은 시선과 관점에 따라 끝없이 새로움을 주는 영화다.

과거는 우리를 지배한다

‘트라우마와 방어기제’



주인공 윌 헌팅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양부에게 폭행을 당하며 성장했다. 이 부분이 그에게 트라우마(trauma)로 작용한다. 트라우마는 상처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유래된 말이다.

일반적 의학용어로 외상을 뜻하며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 충격을 뜻한다.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트라우마는 상처의 이미지가 장기 기억된다는 특징이 있다. 사고로 인해 외상이나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이후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될 때 불안하거나 심한 감정적 동요를 겪는 것이 그 예다.

과거는 우리를 지배한다. 이를 반증하듯 윌도 어렸을 때 형성된 상처가 죄책감이라는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윌이 직업과 이성 관계를 선택할 때도 죄책감은 영향을 준다. 나는 부족하고 잘못된 사람이란 심리가 내재된 윌. 때문에 그는 나보다 못한 사람과 어울리면 죄책감이 들킬 염려가 없다며 그보다 못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산다. 또 죄책감이란 트라우마 때문에 여자친구와 깊게 사귈 수도 없다.

인간의 모든 생각, 감정, 행동 등의 기저에는 과거에 형성된 심리 기제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한다. 나도 모르게 작동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해결할 문제다.

더욱이 윌의 죄책감은 방어기제로 발현된다. 윌은 다시는 그 누구로부터도 당하지 않으려는 극도의 방어기제를 작동한다. 겉으론 평범하지만, 속으론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정신분석학에서 방어기제는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가리킨다. 방어기제는 주로 부정, 억압, 합리화, 투사, 승화 등의 방법으로 나타난다.

예술도 성숙한 방어기제인 승화와 유머를 통해 표현되는 삶의 형태다. 특히 승화는 내가 지닌 욕망, 고뇌, 슬픔 같은 것들을 예술적 영역으로 발전시키는 충족이다. 굳 윌 헌팅도 죄책감에 대한 영화적 승화 과정인 셈이다.

영화 속 윌이 꼭 끌어안은 것은 교수 숀이 아니다. 어린 시절 죄책감에 휩싸여 살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자신을 안아준 것이다. 가짜 이유를 진짜 이유로 착각하는 방어기제가 아닌, 나를 찾아가는 것이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사진 출처 : ㈜영화사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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