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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 건강하고 안전한 관계맺기 교육

안경주 전남여성가족재단 원장

2021년 10월 12일(화) 17:23
최근 몇 가지 뉴스를 접하다 보면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참 많다. 20개월된 딸을 성폭행하고 살해하고 배우자에 대한 무차별 폭력을 일상적으로 가했을 뿐 아니라 장모에게까지 성폭력 협박을 한 악마의 모습을 한 가해자,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두 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인분까지 먹이며 폭력을 일삼았던 아동학대폭력 가해자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그리고 어린 소녀와 여성을 성노예로 만들어 불법촬영하고 유포했을 뿐 아니라 이 영상물을 함께 소비한 수많은 사람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페미사이드, 즉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해를 일삼는 페미사이드 현상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폭력이 근본적으로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대상에게로 가해지는 것, 그리고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에 근거하여 폭력이 자행되는 것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정, 자유와 평등을 누릴 권리, 행복을 누릴 기본적 권리 등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이러한 경종을 뼈아프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에 대한 정중한 가치를 기반으로 하여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할 사회적 가치는 협력하고 존중하는 관계맺기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건강하게 발화될 수 있다.

어그러진 가족관계, 소통되지 못하는 세대 간 동상이몽, 성별 간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관계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도민을 대상으로 한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관계를 맺는 교육을 실시하고 초중고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양성평등교육을 전방위적으로 해나가는 것과 함께 아주 어릴 때부터 좀 더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독일의 경우 그룬트슐레와 김나지움, 즉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 간의 대화와 토론중심의 관계맺기 교육을 실시하여 ‘협력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배우게 한다.

사실상 민주적인 관계맺기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오랫동안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문화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 즉 한 세대를 바라보며 진행될 지속성이 생명이다.

학생들 간의 대화와 토론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교사는 수업시간에 20퍼센트 이내로 말하라는 주문도 권고된다. 영국 역시, 작년 9월부터 ‘관계 맺기' 수업을 필수 교과과정에 도입하고 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가족관계, 친구관계에서 배려하고 존중하는 법, 온라인에서의 관계, 안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등에 대해 배우게 된다.

중등학교에서는 여러형태의 가족에 대한 이해, 존중하는 관계, 안전하고 건강한 성관계와 성 건강에 대해서 교육을 하고 있다.

‘안전하고 건강한 관계'를 위해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안전하지 않은 신체 접촉에 대해서는 거부 의사를 표현하고, 필요에 따라 도움을 요청하고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바른 가치에 따른 옳은 행동방식을 배우고 훈련해야 내적 힘으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매우 필요한 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교육이 더욱 절실한 이유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더 이상 오프라인의 세상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는 최근 문자중심으로 사고했던 세대에서 영상을 중심으로 소통하는 세대로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기술이 열어놓은 사이버 세계는 예전의 문법과 소통방식을 완전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사이버세상과 맺는 관계범주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 언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요. 통용될 문법과 윤리에 대해 합의하고 준비하지 못한 채 새로운 세계가 열려버린 것과 같다.

어릴 때부터 교육받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회적 가치로 어떤 윤리로 이러한 세계에서 관계를 맺어야하는지 오염된 정보를 판단할 아무런 가치와 근거를 갖지 못하고, 무방비 상태에서 수많은 가스라이팅 또는 그루밍범죄에 노출되는 위험성이 매우 높아질 것이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소통하는 힘과 근력을 키울 수가 없다.

개인이 탄탄한 가치와 옳은 행동방식을 훈련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옳은 가치에 따른 개인의 판단력을 훈련하지 않으면 모든 정보가 혼재하는 속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처구니없는, 있을 수 없는 뉴스를 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인간됨을 잃어버리는 이 탁한 오염이 결국은 사회를 잠식하게 될 수 있다. 사회적 가치와 윤리를 배우고 건강하고 안전한 관계맺기 교육이 조속히 준비되고 실시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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