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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장] 전통 제작 방식 고집하며 명맥 잇는 이춘봉 악기장

석상오동·쌍골죽 등 인고 견딘 나무가 으뜸
‘백년금’ 천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음색 특허

2021년 10월 28일(목) 16:26
이춘봉 악기장(광주시무형문화재 제 12호)
[한국의 명장] 전통 제작 방식 고집하며 명맥 잇는 이춘봉 악기장

석상오동·쌍골죽 등 인고 견딘 나무가 으뜸
‘백년금’ 천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음색 특허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궁중에 독립된 기관을 설립해 전문성을 살린 악기를 사용했다. 해방 이후에는 자취를 감춰 명맥이 끊어질 뻔했으나, 고유의 소리를 살리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으로 자긍심은 물론 기량 또한 높아지고 있다.
악기 제작에 필요한 기계는 물론, 천년이 가도 변치 않는 악기 ‘백년금’을 탄생시켜 세간을 놀라게 한 이춘봉 악기장을 만나본다.

글 민슬기 기자 사진 김생훈 기자

◇50년 넘는 세월 동안 함께한 국악기

이춘봉 악기장(74)은 지난 1995년 광주에서 처음으로 악기장 부문 시(市)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장인이다. 가야금과 거문고, 해금·대금 등 전통악기에 대한 특성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제작 기능이 매우 숙련됐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악기장들 사이에서 그의 명맥과 평판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78년부터 1984년까지 무형문화재 전승공예전에 출전해 거문고와 가야금, 아쟁, 해금 부문에서 수상한 실력자다.
그의 손에서 탄생한 국악기는 말 그대로 잘 ‘운다’. 청아한 음색이 고르게 울려퍼지는 것은 물론,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해외에서 악기를 구매하러 오는 이들도 많다.
악기의 소리를 결정하는 것은 재료라지만, 그의 하루를 살펴보면 좋은 국악기의 조건은 그뿐만이 아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새벽 4시부터 작업에 몰두하는 집념과 성실함도 바탕이 됐다. 이 악기장이 본래 악기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해 서양음악과 악기에 익숙했다. 하지만 군 복무 시절 형을 여의고 슬픔에 빠져있을 때 우연히 들은 가야금 소리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당시 들었던 가야금 소리를 잊을 수 없다. 내 통곡만큼이나 구슬펐지만 아름다웠다”며 국악기에 일평생을 바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또, 서양악기와는 비교되는 특유의 농현(소리를 떨어 표현하는 것)에 대해 예찬하며, 연주자나 듣는 이의 기분에 따라 신명이 나기도, 한없이 슬프기도 한 매력적인 악기라는 찬사도 빼놓지 않았다.

◇악기장 대가 김광주 선생이 인정한 실력

음악을 듣고 즐기는데 그칠 수 있었으나 국악기 제작에 몰두하고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의 한 마디 덕분이다. 이 악기장의 스승은 우리나라 최초의 악기장인 국가무형문화재 故김광주(1906~1984)선생으로, 현존하는 무형문화재 악기장들을 다수 배출한 대가다. 김광주 선생은 평소에는 제자들을 친아들처럼 대하다가도 악기 제작에만 들어가면 호랑이처럼 매섭게 대하던 엄한 스승이었다. 이 악기장은 “이제 쓰것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자들이 선보이는 악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만히 밀어놓고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선생이었으나 그가 만든 악기 소리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악기 제작을 배우던 사람들 중 실제 연주를 할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며 “연주를 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를 알았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소리를 정확히 재현할줄 아는 그를 유난히 아꼈던 김광주 선생은 “너에게 국가무형문화재 자리를 넘겨주고 싶다”는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악기장은 초록빛의 인도사과가 국내 처음 유통 됐을 때, 어렵게 구한 과일을 고향에 계신 어머니보다 먼저 사다드릴 정도로 존경했다며 각별한 사이를 자랑했다.

◇우리나라 재료 사용해야 전통 국악기

낙동법(인두로 오동나무 겉면을 그스는 행위)중인 이 악기장
대다수의 악기사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값싼 재료를 가공하거나 조립해 판매하고 있다. 부르는게 값일 정도로 고가인 전통국악기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층에 맞춰 변화한 것이다. 전통국악기가 고가의 몸값을 자랑하는 이유는 재료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보통 국악기에 사용되는 나무는 밤나무와 오동나무, 대나무 등이다. 관악기와 현악기, 타악기 등 쓰임에 따라 사용되는 나무가 나뉜다. 단단해야 좋은 소리가 나는 특성상 조건에 부합하는 원목을 찾아 건조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매끈한 나무에서 고운 소리가 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자갈밭이나 바위틈에서 더디게 자란 석상오동(石上枯桐)이 으뜸이다. 무른 성질을 가진 오동은 돌틈에 뿌리를 내리고 힘겹게 자라면 나이테가 촘촘해지며 단단해진다. 최상급 악기를 만들기 더없이 좋은 재료가 된다.
속이 텅 비어 쑥쑥 자라는 대나무와 달리 마디 양쪽에 골이 패여 속이 차오르는 병죽(病竹)은 대금의 최상급 재료다. 희귀한 탓에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공급량도 일정치 않아 가격은 늘 예상을 뛰어넘지만, 고난과 역경을 딛고 자란만큼 고유의 음색이 옹골차게 뽑아져 나온다.
이 악기장은 남다른 눈썰미와 외골수 같은 강단으로 품귀상태의 원목들을 많이 확보해두었다.또, 나무에서 승부를 보더라도 가야금 제작시 사용되는 머리 위 장식은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악기장이 있지만 여전히 소뼈를 구해 전통 제작 방식을 실현한다. 그는 “우리나라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것이 전통 국악기”라며 중국 제품을 사용해 만든 것은 국악기라 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제작하기 수월한 편을 추구하거나 부귀를 누리려 했다면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며 여건이 어려워질지라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 말했다.

◇예리함과 직관으로 200여 공정 소화

가야금은 오동나무가 주재료다. 이 악기장은 좋은 원목을 구하게 되면 바깥에서 3년 이상 눈과 비, 바람과 햇살 속에 두고 다시 한번 인고의 세월을 견디게 둔다. 하지만 희귀한 석상오동라도 모두 악기가 될 수 없다. 삭히는 과정에서 대부분 썩거나 비틀어져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재료가 될 원목을 건지고 나면, 나무를 재단하고 대패로 다듬는다. 특히 울림판이자 상판이 되는 오동나무는 두께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대패질의 강도는 섬세하기 그지없다. 이 상판은 일정한 두께로 오목하게 깎아내야하기에 예리함과 직관이 필수다. 뒤판은 밤나무를 가공한 뒤 그늘에서 또 말려야 한다. 악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200여 가지의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빠질 수 없는 작업 중 하나가 인두질이다. 오동나무 속살은 희고 습기로 인한 부식 가능성이 큰데, 자연스럽게 나무의 결을 되살림과 동시에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고르고 예쁜 색을 위해 칠만 하면 결 안으로 흡수 돼 탄성에 변화를 일으키고, 소리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 악기장은 더 수고롭고 번거로운 공정이라도 전통 국악기는 정성과 혼을 담아야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현(줄)으로 사용되는 명주실을 손수 꼬고, 잘 보이지 않는 가야금의 안족, 심지어 장식용 매듭까지 직접 꾸민다는 그는 고령의 나이임에도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변치 않는 형태와 소리 ‘백년금’

이 악기장은 70년대부터 현재까지 필요한 도구들을 개발해 사용 중이다. 특허를 받은 전기인두가 가장 대표적이고, 절단기를 비롯한 목공기계 등도 납품을 원하는 이가 줄을 섰다. 그가 설계하고 직접 제작한 기계들은 숙련된 손기술과 예민한 청각을 가진 그에게 전통의 소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악기를 가능케 했다.
그로인해 천년이 가도 변치 않는 ‘백년금’이 탄생했다.보통 가야금은 상판과 뒷판을 따로 제작한 뒤 접붙여 완성 시킨다. 팽팽한 줄을 뜯어 연주하다보면 몇 년, 혹은 몇십년이 지나 몸통이 뒤틀리거나 음색이 둔탁해지는 일이 생긴다. 이 악기장은 이러한 변형을 막고자 연구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오동나무를 통째로 파내 상판과 뒷판을 없앤 가야금을 만들었다. 몸통 자체가 울림통이기에 소리가 훨씬 힘 있고 깊게 울려 퍼지는 강점이 있다. 손쉬운 조율을 위해 12현에 지시등을 장착해 사용자 편의를 우선으로 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 악기장만이 만들 수 있는 ‘백년금’은 그의 걸작이자 대표작으로, 또 한번의 도약을 맞이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백년이 아닌 천년의 시간이 흐르더라도 지금과 같은 모습과 음색을 지닐 것이다”고 자부하면서도 여전히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마이크나 스피커 연결 없이 넓은 공간에서도 선명하게 들을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뛰어나게 만들겠다는 포부다. 서양악기는 널리 울려퍼지지만, 국악기의 경우 줄을 뜯거나 문질러 소리 내기에 한정적인 공간에서 즐기게 되어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이 악기장은 “백년금의 소리를 키워 향후 넓은 공간에서 즐길 수 있게 만들겠다”며 국악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 전했다.
민슬기 기자         민슬기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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