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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행불자, 교도소 내부서 사망설 제기

5·18조사위, 사망 경위 조사 중
당시 군부대서 숨졌을 가능성도
유골만 발견…이장 과정 밝혀야

2022년 10월 03일(월) 18:33
옛 광주교도소./전남매일 DB
최근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유골의 신원이 5·18 행방불명자 염경선(당시 23세) 씨로 밝혀진 이후 행적 조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당시 군부대의 증언에 따라 교도소 내부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유골의 흔적을 토대로 외부 유입 가능성도 염두하고 있다.

3일 조사위에 따르면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염씨의 사망 경위 분석을 위해 5·18민주화운동 당시 이곳에 주둔했던 3공수여단과 20사단 62연대 장병 등을 조사하고 있다.

조사위는 염씨가 군부대의 가혹행위 과정에서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조사위는 계엄군 양심 고백·트라우마 극복 사업인 ‘증언과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해당 부대 소속 장병들의 증언 등을 확보하고 있다.

3공수여단은 1980년 5월 21일 전남대 정문에서 진행된 시위 과정에서 학생과 시민들을 무력 진압, 오후 4시께 광주교도소로 주둔지를 옮기며 시민 120~150여 명을 지붕이 있는 트럭 수 대에 태워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짐칸에 최루탄을 던져넣어 시민 일부가 질식해 숨졌다는 다수 증언이 나오면서 3공수가 이러한 시신 처리를 위해 교도소 내 암매장을 주도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3공수가 교도소에서 시민들을 학대해 수많은 시민이 죽었다’, ‘교도소 주변을 지나는 시민들을 사살하고 시신을 헬기로 옮겼다’는 무수한 증언이 42년 동안 이어졌다.

행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20사단 62연대도 조사 대상이다.

20사단 62연대는 같은해 5월 24일 정오께 송정리 비행장으로 철수하는 3공수와 교대해 5월 27일 새벽까지 교도소에 주둔했다.

조사위는 20사단이 3공수 교대 이후에도 가혹행위를 이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교도관들이 기록한 ‘광주 사태 시 소요 체포자 치료현황’ 문건에는 20사단 주둔 과정에서도 부상자가 속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해당 문건에는 5월 25일 체포자 중 부상자 58명을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음날 부상자 치료 건수가 84명으로 부쩍 늘었다가 20사단이 떠난 27일에는 109명으로 기록됐다.

염씨가 교도소 외부에서 숨진 뒤 유입됐을 수 있다는 가설도 제기된다.

염씨가 발견됐을 당시 옷가지나 장신구 등이 없어 이미 다른 곳에서 숨진 뒤 유골만이 넘어왔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교도소 내부 시설 건축으로 인해 암매장지가 옮겨지면서 유해가 뒤섞였을 가능성도 떠오른다.

당시 교도소에 주둔했던 3공수 출신 장교들이 ‘교도소 남서쪽 등지에 암매장·가매장했다’고 증언한 데 따라 A씨는 최초 이들이 증언한 곳에 묻혔을 수 있다.

이들이 지목한 암매장지가 1986년 교도소 서쪽에 들어선 오수처리장 시설이라면, 공사 도중 출토된 유골이 지난 2019년 발견됐던 곳으로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다.

정수만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80년대 사람들이 입던 의복은 합성섬유로 만들어져 쉽게 썩지 않아 타지에서 숨진 뒤 발견된 유골만이 훗날 교도소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외부에서 시신을 싣고 온 차량 등을 파악하거나 교도관들을 집중 탐문해 교도소 내 이장 과정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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